손자는 3월부터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닐 계획이다. 어린이집은 작년에 아들과 함께 방문해서 상담한 후에 가족들 모두 의논해서 결정한 곳이다. 보통 통학버스가 운영되는 것이라면 집 앞에서 태워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곳은 시립인지라 통학버스 운영이 되지 않으므로 내가 아침에 데려다주고 오후에 데리고 와야 한다.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어떻게 보면 아이에게는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이집 선생님 인솔하에 차를 타고 가는 것도 좋겠지만, 엄마와 할아버지, 그리고 가끔 할머니도 동행해서 어린이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것도 아이에게는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린이집은 그렇게 결정되었고, 우리 가족 최대의 관심사는 손자가 무사히 어린이집에 적응해서 잘 지낼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우선 아직은 엄마를 찾는 손자와 며느리가 서로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냥 울든 말든 어린이집 차에 태워 보내기만 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잠시 떨어지는 것도 아이에게는 불안감만 안겨줄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그저 무엇보다 좋은 방법은 손자가 며느리와 떨어지면서도 어린이집 시간이 끝날 때면 엄마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마음 편하게 어린이집으로 들어가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 우리는 자연스럽게 손자와 며느리가 같은 공간에서 잠시 떨어져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계획상으로는 며느리도 손자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부터 한국어 공부를 하러 다녀야 하므로 어차피 손자가 집에 있을 때 며느리가 집을 나서야 하는 상황이 곧 닥친다. 그때 손자가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빠이빠이’를 하고 집에서 우리와 놀고 있게 만드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손자와 우리가 모두 집에 있는 시간에 며느리가 혼자 외출해 보는 것이다. 물론 처음은 10분, 다음은 20분, 다음은 30분…… 그렇게 점점 길게 시도할 예정인데, 손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첫날은 성공이었다. 내 어깨에 올라탄 손자가 현관을 나서는 며느리에게 손을 흔들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리고 계획대로 며느리는 밖에서 10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물론 그때까지 손자는 나와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정도면 10분이 아니라 20분, 30분도 거뜬할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며느리가 외출하려 하자 이번에는 손자도 함께 나가겠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함께 집을 나섰다.
우리의 산책 코스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아파트 단지 내, 혹은 밖으로 크게 한 바퀴 도는 코스이고, 그렇지 않으면 버스 타고 가까운 전철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크게 한 바퀴 도는 코스이다. 그런데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으로 향하다 생각하니, 기왕 나선 김에 어린이집에 가서 어린이집 외양이라도 손자 눈에 익숙해지게 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마침 집 앞 정류장에서 어린이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기에 일단 며느리에게 그렇게 다녀오자고 했다. 버스가 오고 우리는 유모차를 통째로 버스에 실었다. 다행스럽게 저상버스라 이전에 일반 버스에 오를 때보다 한결 오르고 내리기가 좋았다.
버스 정거장 6개째 거리, 불과 3km도 안 되는 거리인지라 버스에 오른 지 10분도 안 되어 어린이집 앞에 도착했다. 이 정도라면 내가 차로 데려다주지 않아도 며느리 혼자 다녀도 충분할 것 같았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밖에서 어린이집을 눈에 익혔다. 그렇게 잠시 밖에 걸린 사진들을 보고 있는데, 창문이 열리더니 어린이집 선생님 한 분이 얼굴을 내밀며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어머, 네가 OO이구나?” 며느리가 깜짝 놀랐다. 어떻게 본 적도 없는 선생님이 손자의 이름까지 알까? 하지만, 목소리를 들어 보니 내가 오리엔테이션 관계로 통화했던 선생님이었기에 나도 반갑게 인사했다. 통화할 때 이미 내가 오리엔테이션 전에라도 미리 방문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알고 있었을 거라고 내가 옆에서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선생님과도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길을 건너서 버스를 타는 것이 아니고 어린이집 뒤로 한참 돌아서 걷다가 나중에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래야 며느리와 손자도 이런저런 길거리 풍경을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걷는 동안 며느리는 잉어빵도 먹어 보고, 근처의 초등학교 운동장도 들어가 보고, 자동차를 좋아하는 손자는 다양한 차도 실컷 보면서 걸었다. 집에만 있으면 가끔 엉뚱한 일로 떼를 쓰는 손자도 일단 밖에 나오면 아주 점잖아진다. 그저 유모차에 앉아 지나는 차를 보기에도 바쁘다. 그래서 집안에서 손자를 돌보는 것보다 집 밖에서 손자를 돌보는 편이 한결 수월하다. 조금 더 걷다가는 인도와 차도 구별이 없는 마을 진입로를 걸어야 할 판이라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정류장으로는 고작 두 개 거리지만, 유모차를 밀고 지나기 곤란한 길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 마을 진입로만이라도 확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솟았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들어오니 손자도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며느리와 내 다리만 힘들었을 뿐이다. 이제 시간만 나면 몇 번 더 가보려 한다. 어쩌다가는 차를 타고 가서 내려주는 연습도 하고, 아무튼 어차피 갈 어린이집이므로 조금이라도 손자가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연습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