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시작하며

<아내는 잠자는 이불속 공주(부크크)>의 작가의 말

by 정이흔

작년 10월쯤인가? 그동안 쓴 글을 모아서 출판사에 투고한 적이 있었다. 물론 죄다 거절이었다. 혹자는 겨우 백여 군데 투고한 것으로 원고가 채택될 것을 기대하였다면, 그건 오산이라 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정도 출판사에서 모두 출간을 거절한 수준의 원고라면 내가 자비로 돈을 들여서 출간해 봐야 그냥 헛돈을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원고를 사장시킬 수 없어 POD 출간을 결심했다. 그냥 몇 권 책으로 인쇄하여 책장에 보관할 심산이었다. 그래서 157쪽 원고는 책으로 태어났고, 아래의 글은 책의 서두에 적었던 이른바 '작가의 말'인 셈의 글이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한동안 글을 못 쓰다가 요즘 들어서 간단한 일상 산문 형식의 글을 몇 편 써 보았다. 글의 소재야 나는 언제나 비슷하다. 일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즐겨 써왔기 때문이다. 원래 수필은 경험담이라고 한다.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수필의 기본이라고 하는데, 그런 기준에는 나도 공감한다. 그래서 나는 일상 수필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편이다. 특별한 글감을 찾느라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므로 좋았는데, 언젠가부터는 그런 일상 이야기조차 글로 쓰는 것에 버벅거리곤 했다. 남들이 말하는 슬럼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공모전에서인가 수필을 공모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하긴 시나 수필이나 소설을 공모한다는 소식은 하루가 멀게 쏟아져 나오므로 별반 특별한 일도 아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공모전에는 한 번 응모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요즘의 주눅이 든 필력으로 당선은 언감생심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목표가 있으면 글을 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공모전에서 요구하는 글을 세 편 써서 던져 놓았는데, 그 세 편 글의 공통적인 소재가 바로 ‘아내’였다. 원래는 단순히 가정적인 소재로 글을 써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뿐, 특별히 아내 이야기를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세 편 모두 아내가 등장하는 글이 되어 버렸다.



아내도 많이 변한 것 같았다. 예전 같으면 왜 자기 이야기를 썼냐는 등의 항의가 들어왔을 법도 한데 이번에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잘 써 보라는 일종의 격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내가 이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그래, 이참에 아내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써 보자. 그렇게 생각보다 아내가 이야기 소재의 보고(寶庫)라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지난 기억을 되살리며 이야기를 한 편 쓸 때마다 아내에게 보여주었더니, 아내도 그 시절들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우리 부부가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고 회상하는 시간을 가진 것도 나름 뜻깊은 일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혹자는 그렇게 아내 이야기를 까발리듯 글로 쓰면 나중에 후환이 두렵지 않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걱정은 없다. 아내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이 유한 성격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아내와 관련한 이야기는 거의 국가 기밀 수준의 극비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립학교 한 곳에서 수십 년 교직 생활을 한 아내는 동네에서 나가면 여기저기에서 제자들과 마주쳤고, 심지어는 제자의 자녀들도 제자로 만나는 판국이었으니 자연 매사에 조심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본인 이야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내가 환갑도 훌쩍 넘긴 나이에 그런 주변의 시선에 민감할 필요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나의 이런 글쓰기가 아내에게도 지난 추억을 회상하게 해 주는 그런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작업인지라, 아내도 과연 자신을 소재로 어떤 내용의 글까지 나올 것인가에 은근히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내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낸다고 해서 그것이 꼭 아내를 흉보거나 놀리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도 아울러 밝히고 싶다. 나중에 글이 뒤로 갈수록 내가 이런 글을 시작한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동갑내기 부부인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서로에 대한 사랑을 새삼 확인하면서, 아울러 글을 읽는 많은 부부에게도 그들의 행복했던 기억을 한 번쯤 떠올리며 웃음 짓게 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이 글을 시작한다. 환갑도 넘긴 동갑내기 부부의 아웅다웅하는 삶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아내와 좀 더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남편과, 다른 아내는 남편에게 보통 집에서 어떻게 대하는지 알고 싶은 또 다른 아내들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누구는 읽다 보면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른 부부가 살아가는 삶을 엿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아주 작으나마 흥미를 안겨줄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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