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잠자는 이불속 공주

출간작 <아내는 잠자는 이불속 공주> 중에서

by 정이흔

내 아내는 공주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아닌, 잠자는 이불속 공주다. 아내는 내가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쓰겠다고 하면 어지간해서는 말릴 법도 한데, 이제는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란다. 아무러면야 내가 아내 흉보는 글을 쓰기야 하겠냐는 거다. 그런 아내를 보면 이제 우리도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물레바늘에 손가락을 찔려서 깊은 잠에 빠졌다고 하는데, 아내에게는 그런 사연도 없다. 단지 아내가 잠자는 이불속 공주가 된 데에는 나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어쩌면 내가 아내를 잠자는 이불속 공주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내와 나는 이른바 맞벌이 부부였다. 아침에도 나란히 함께 식사하고 출근하는 생활을 보냈다. 그러다가 칠이 년 전 아내가 퇴직하고 난 이후부터는 나 혼자 일어나서 식사하고 출근하는 처지가 되었다. 물론 아내가 일을 하러 나가지 않는다고 해도 아침에 나와 함께 일어나서 출근하는 나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내가 식사하는 동안 식탁에 함께 앉아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렸다. 아침밥 정도야 내가 차려 먹고 나갈 수 있으니, 아내에게 일부러 일찍 일어날 것 없이 그냥 조금이라도 더 잠을 자라고 했다. 그동안 대학을 졸업한 이래 나와 결혼하고 퇴직할 때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해 온 아내가 안쓰러워 내가 베푼 배려였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뜻으로 시작된 나 혼자만의 아침이었다.



물론 아침을 혼자 차려 먹고 출근하는 일은 그다지 힘든 일도 아니다. 그냥 전기밥통에서 밥 푸고 끓여 놓은 국 데우고 냉장고에서 반찬 몇 가지 꺼내서 아침밥 먹고 출근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 데다가 아침 밥상을 차리는 일이야 아내가 직장에 다니고 있을 때도 원래부터 내 담당이었으므로, 아내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별반 나의 생활에 색다른 변화가 있을 것도 없었다. 그런 일상이 계속되다 보니 처음에는 약간 미안해하던 아내도 어느새인가 편안한 생활에 적응하여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일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그야 뭐 아내도 사람인 이상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원래 직장인에게는 아침에 일어나는 일만큼 고역이 어디 있으랴? 어떤 날은 정말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기가 죽기보다 싫은 날도 있다고 할 것인데, 아내는 그런 아침에서 해방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 기쁨을 만끽하라고 아내가 점점 더 아침에 일찍 일어날 건수를 만들지 않았다.



그런 날이 계속되다가 나의 아침 업무가 늘어나는 일이 생겼다.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난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늘어난 것은 아니고 원래부터 있었는데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인원은 바로 딸이다. 딸도 언젠가부터 아침에 정시 출근하는 직장인 신분이 된 것이다. 그것도 나의 출근 시간보다 이르게 출근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이 정도면 한동안 편하게 늦잠을 자던 아내가 일어나서 함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출근하는 딸과 남편을 배웅해 줄 만도 한데, 아내는 그동안의 편안함에서 빠져나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서운할 일도 없었다. 하긴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어차피 차리는 아침 밥상에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에 딸 수저만 더 얹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나도 그냥 이불속 왕자로 남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딸과 나의 출근 시간이 다르다 보니 아침 밥상을 차리는 일은 그렇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고, 결국 아침 밥상을 두 번 차리는 결과가 되었다. 딸의 밥상을 먼저 차려 주면, 딸은 밥을 먹고 먼저 출근한다. 그리고 그 후에 조금 쉬었다가 나도 아침밥을 차려 먹고 출근하는 일상이 된 것이다. 그러니 나의 아침 업무만 늘어난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희한한 일은, 딸도 아침마다 아내가 이불속 잠자는 공주가 되는 것에 전혀 불만을 토로한다든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불만은커녕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엄마가 차려 주든 아빠가 차려 주든 일정한 시각에 자기 앞에 아침 밥상이 차려져 있기만 하면 되므로, 굳이 엄마가 늦잠을 자는 것에 대해 왈가불가 불만을 토로할 일도 없었다. 그런 데다가 아침마다 딸의 밥상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반찬인 계란프라이도 내가 해준 것이 더 입에 맞는다는 핑계로 은근히 엄마보다는 아빠가 아침 밥상 차리는 것을 종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더욱 아내를 깨울 명분이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 보니 이제 나도 그런 아침 일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처음 내가 아내에게 아침은 내가 알아서 차려 먹고 출근할 테니 당신은 신경 쓰지 말고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잠이나 푹 자라고 호의를 베풀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일이 이렇게 될 줄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인제 와서 아내에게 불만을 토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오롯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빚어낸 결과였을 뿐이다. 이 말 또한 언젠가 이 글을 읽을 아내의 시선이 두려워서 하는 말은 전혀 아님을 밝힌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나는 아내를 영원한 이불속 공주로 남기고 싶다. 까짓 아침을 내가 차려 먹든 말든 그런 일이야 뭐 대단한 일도 아니고, 어차피 몇 년 후에 나도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나면 아침에 아내처럼 느긋하고 잠자리에서 일어날 날도 올 것이다. 그렇게 몇 년 후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을 공연히 지금 불만을 토로해서 지금까지 쌓아온 덕을 내 손으로 무너트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제는 물론 아내가 인식조차 하지 않고 있기는 할 테지만, 그래도 이불 속에서까지 항상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잠에 빠져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 그러는 일이 뭐 어렵겠는가?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아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얼마든지 감사할 일이다.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그 마음을 받쳐줄 기력이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나에게는 불행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일상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그렇게 오늘도 아내는 잠자는 이불속 공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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