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는

출간작 <아내는 잠자는 이불속 공주> 중에서

by 정이흔

“당신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나 만나지 마라.”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아내가 불쑥 한마디 던진다. 나는 순간 아내 말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무슨 말이냐는 듯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내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웃으면서 말한다. “아, 그냥 당신이 너무 힘들고 불쌍한 것 같아서 그래.” 그제야 나도 함께 웃었다.



아내는 항상 나를 부른다. 부르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부분 습관적이다. 아내에게 “여보” 이 한마디는 마법을 부르는 호칭이다. 아내가 하기 힘든 일부터 아내가 하기 귀찮은 일까지 모든 일을 해결해 주는 유일무이한 단어라고나 할까? 오죽 아내의 입에서 “여보”가 떨어지지 않으면, 옆에서 딸이 웃으며 말한다. “만약 엄마에게 앞으로 ‘여보’ 금지령을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말하곤 딸도 웃는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아내는 나를 유난스럽게 자주 부른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나도 귀찮아질 때도 있지만, 요즘 같으면 아내도 어쩔 수 없이 부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내가 나를 더욱 자주 부르기 시작한 것은 아내의 무릎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난 때부터이기 때문이다. 원래부터도 걷다가 잘 넘어지곤 하는 아내였는데, 나이가 들게 되면 대부분 누구나 그렇듯 무릎 연골이 상하면서 걷는 것은 물론이고 앉았다가 일어서는 것조차 힘에 부칠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내는 이미 수년 전에 관절경 시술까지 받은 상태에, 최근 무리를 조금 한 일까지 있어서 더욱 무릎을 잘 쓰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그렇지 않아도 나를 잘 부르던 아내가 나를 얼마나 더 잘 부르겠는가? 그런 사정을 잘 아는 나는 아내가 부르면, 그저 불평 한마디 없이 아내가 요청하는 일들을 해줄 뿐이다. 아마 아내가 보기에 비록 자기가 시킨 일이긴 해도, 그런 내가 보기에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음 생에서라는 말도 나왔을 것이고.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하던 일이 순조롭지 않아, 일을 정리하고 거의 실업자 신세에 놓인 적이 있었다. 그래도 남자는 모름지기 아침에 일어나면 나갈 곳이 있어야 한다면서, 친구의 사무실로 나가서 종일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오곤 했다. 물론 친구와 새로운 일거리를 찾느라 그런 것도 있지만, 맞벌이하던 아내와 집에서 아이들을 보아주시던 부모님을 보기에 민망했던 이유도 있었다. 아내는 그래도 나에게 아무런 타박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가 밖을 나돌려면 주머니가 든든해야 하는 법이라며 텅 빈 지갑을 채워주곤 했다. 그뿐인가? 나중에 바빠지면 시간이 없을 테니 차라리 지금이라도 시간이 날 때 미리 배워두자면서 골프 연습장으로 나를 이끈 사람도 아내였다. 아이들을 재우고 컴컴한 밤에 동네 놀이터에서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별빛 하나 보이지 않던, 마치 그 시절 나의 앞날처럼 컴컴하던 하늘을 보며 조금만 참고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저 하늘에도 별이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던 아내였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분명 내가 전생에 나라를 한 번도 아닌 몇 번은 구했기 때문에 지금의 아내를 만날 수 있었음이 틀림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물론 그랬던 아내이기에 내가 지금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남편이 된 것은 아니다. 원래부터 그랬고, 아내도 그 사실에는 공감하고 있다. 사실 가진 것이 없다 뿐이지 자기는 나와 결혼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주위의 동료나 친구들도 그랬다. 누군가 남편 흉을 볼 때 아내도 한자리 끼려고 하면 “넌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 네 남편이 잘해 주잖아.” 하면서 아예 이야기에 끼워주지 않을 정도로 처음부터 아내에게 잘해 주었다. 오히려 아내 친구들 사이에는 내가 아닌 아내가 전생에 나라를 몇 번 구해서 나 같은 남편을 만난 것이 분명하다며 부러워했다. 그러니 요즘에 와서 아내의 무릎이 더 약화되었기에 내가 아내에게 잘해 준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한때 그런 유행이 있었다. 아내와 남편에게 각각 다음 생에도 남편과 아내를 만나서 결혼하겠냐고 묻는 것이다. 그러면 대답은 물론 예, 혹은 아니오. 그렇게 둘 중 하나지만 이유는 천차만별로 나온다. 우리도 서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종종 다시 태어나서 내 앞에 아내가 나타난다고 해도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내가 나를 너무 귀찮게 하고, 힘들게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당연하다는 듯 나와 몇 번이고 결혼하겠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아내 대신 옆에 있던 딸이 웃으며 말한다. “아빠 같으면 안 그러겠어? ‘여보’ 한마디면 모든 일이 해결되는데, 왜 결혼하지 않겠어?” 이야기인즉 내가 자초한 결혼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언제나 그런 대답을 하던 아내였는데, 요즘 들어서는 예전의 당당함은 어디론가 슬며시 사라지고, 대신 미안한 마음이 조금씩 드는 것 같았다. 다음 생에서 나에게 결혼하자고 하기에는, 내가 피곤할 것 같다는 거다. 그래서 아마 오늘 아침에도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말을 듣다 보니 공연히 아내가 가엾어 보였다. 무릎이 편찮아진 것이 아내만의 잘못은 아님에도, 공연히 나에게 이런저런 일을 요청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은연중에 그렇게 부탁하는 일도 자기의 본의는 아니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않으냐는 무언의 항변이기는 하나, 사실 아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내가 어찌 아내의 마음을 모를까? 그러니 아내가 요청하는 일을 내가 군말 없이 들어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원래 옛말에도 그렇지 않은가? 남편이 차려주는 밥은 앉아서 먹어도 자식이 차려주는 밥은 서서 먹는다고, 그만큼 남편이 편하다고 말이다. 그러니 몸이 불편해서 누군가를 부르려고 하면 자기도 모르게 “여보”가 먼저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만큼 나는 아내에게 있어서 누구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내의 미안함이 어린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냐, 힘들기는 무슨. 그냥 다시 태어나도 당신이랑 결혼할래. 알았지?”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아내는 그저 미안하고 민망한 듯하면서도 당연히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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