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루시아 Dec 13. 2020

인테리어? 당신이 알아서 해!

집짓기 6:  편한 색! 쉬고 싶은 집!

2017년 3월 집 기본 설계 후 디자이너는 3차원 입면도를 보냈다. 집 외관을 어떤 재료로 결정할지는 쉽지 않았다. 보내준 두 가지 안 모두 나쁘지 않았지만 차가운 인상이 들었다. '좀 더 부드러운 색상이면 어떨까?' 싶었다. 디자이너가 제시한 처음 안은 일층과 이층 사이를 징크로 마감하여 일층과 이층 경계를 넣고 아이보리와 청록색 세라믹 사이딩으로 전면을 처리하는 안이었다.   


1차 시안 1안: 전면은 아이보리와 짙은 청록색 세라믹 사이딩1
1차 시안 2안: 전면의 아이보리 세라믹 사이딩과 우측 방의 청록색 세라믹 사이딩

일단 보자마자 창을 추가하자 했다. 유사한 크기의 유리창이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집이 딱딱해 보였다. 긴 새로 창을 추가하여 불규칙 느낌을 추가하고 채광을 확대했다. 다음으로 이층 안방 베란다에 사용된 합성 목제를 다른 외벽 공간에 사용하면 어떨까 싶었다. 집의 느낌을 따스하고 부드럽게 하고 싶어 남쪽 아들방에 합성 목제를 쓰면 어떻겠냐 했다.


사실 설계하면서 남쪽 방을 아들방이라 부르니 남자 디자이너가 "아드님을 예뻐하시는가 봐요." 했다. 내가 웃으며 "딸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대전 아파트(누리)에서 남쪽 큰 방을 썼고 아들은 작은 방을 썼는데 그게 늘 불만 이어서  새로 집을 지으면 남쪽 방을 아들에게 주겠다 약속했다."니 디자이너가 크게 웃으며 "사연이 있으셨군요. 제가 괜한 선입견을 가졌군요." 했다. 여하간 남쪽의 햇살이 듬뿍 들어오는 방이 아들방이 되었고 그 당시 타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던 딸은 북쪽 방을 줬더랬다. 딸이 올 6월 결혼해 분가했으니 자식이란 오래 데리고 있을 듯해도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아 훌쩍 떠나가는 존재인가 보다.   


1차  1, 2시안 모두 일층과 이층을 징크로 나누었는데 그래서 집은 옆으로 더 길어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징크는 그때나 지금이나 많이 사용하는 재료인데 개인적으로 징크 표면을 좋아하지 않았다. 징크 표면의 햇빛 반사는 다른 외벽 소재와는 달리 빛의 흔들림이 작고 지나치게 깔끔하여 포근함이나 자연스러움과는 다른 차가움, 모던함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2차 시안: 우측 방에 합성목재로 집의 색상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들고 안방과 아들방의 징크 테두리를 청록색 세라믹 사이딩으로 바꿈

2차 시안은 거실 정면 세로 긴 창문이 추가되었고 안방 외벽과 아들방 윗 부위는 징크로 마감되어 있었다. 색상은 좋은데 징크 소재를 없애달라 했더니 어떤 소재를 쓰면 되겠냐 하여 청록색 세라믹 사이딩으로 부탁했다. 여기에 더해 아들방 동쪽 벽면과 딸방 북쪽 벽면에 가로로 긴 채광창을 더 내달라 했다. 디자이너는 합성목재는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자연목재의 느낌과 다르고 브라운 계열의 목재라서 색상이 조금 더 다운된다 알려줬다. 그래도 브라운 색상이 내 눈엔 좋아 보였다.


내가 천연 목재를 사용하면 어떠냐 물으니 디자이너는 천연목재는 일이 년은 좋은데 색상이 바래기도 하고 혹여 잘못 말려진 나무목재를 만나면 뒤틀림 현상이 발생하니 추천하고 싶지 않다 했다. 합성목재는 그럼 믿을 만하냐고 물으니 합성목재는 목재의 느낌을 살리지만 잘 제작된 것은 좋은 외장재라 일러주었는데 나중에 자재 가격을 뽑아놓은 자제 명세서 BOM(Bill of  Material)을 본 남편이 합성목재 가격이 정말 비싸다며 놀라워했었다.

확정안: 아들방과 딸방의 가로 채광창을 만들고 현관 입구의 합성 목재로 빗살을 만듦
입면 최종안과 실내 인테리어 가안: https://www.coone.co.kr/portfolio/read.do?num=307

어떤 소재가 좋은지 나쁜지는 잘 모르겠다. 벽돌집은 조금 더 무게감 있고, 세라믹 사이딩 소재는 조금 더 가볍고 모던한 효과를 내고, 스타코도 깔끔한 소재임이 분명하다. 자신이 원하는 색으로 집을 지으면 그만이지만 나는 가능한 인공적이 않은, 딱딱하지 않은 집을 원했다. 입면도를 최종 확정해야 하는 시점에 나는 현관을 다시 봤다. 집의 입구라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인데 현관이 너무 열려있어 현관문을 열면 중문이 있지만 도로에서 집안이 그냥 들여다 보일 수 있는 구조였다. 막은 듯 막혀있지 않은 구조물을 찾다 빗살처럼 합성목재로 처리를 해달라 하니 현관을 30cm가량 넓혀야 한다 했다. 그 정도 넓혀 여유 있게 작업해 달라했다.


다양한 각도에서 본 집 모습

집의 전면과 현관 쪽인 동쪽은 세라믹 사이딩과 합성목재로 하고 집의 후면과 서쪽면은 스타코를 아이보리 세라믹 사이딩과 같은 색으로 통일감 있게 정했다. 스타코는 보온도 좋고 시공도 제법 편리하지만 몇 년 지나면 유리창틀 부위 빗물이 흐르며 회색 오염이 쉽게 생기는 단점이 있다. 봄, 가을에는 필히 긴 호수로 외벽을 닦아주는 수고를 해줘야 한다. 물론 이 수고는 전적으로 내가 한다. 내가 사방에 물을 뿌리면 남편은 집안에서 창문을 닫고 열고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날 내려다본다. 사실 긴 호수를 들고 햇볕 좋은 봄날 물보라가 생기는 걸 보는 낙이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세라믹 사이딩은 물을 뿌려주면 사이사이 먼지도 잘 닦이고 코팅이 되어 있어 쉽게 물청소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마치 항아리를 닦아 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최근 읽은 소설책에 이런 구절이 나와 잠시 책을 덮고 집 짓던 생각을 했더랬다.



벽이 사방을 틀어막아 공간이 생겨야 비로소 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벽에 갇힌 공간이야말로 집의 영혼이다.  p126 [태고의 시간들, 저자:올라 토카르추크, 은행나무]



집의 영혼이란 말이 보기도 듣기도 좋았다. 내가 집의 입면도를 결정하고, 실내 인테리어를 결정할 때 집의 영혼이 닮길 곳이란 생각을 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했다. 여하간 집이 따스한 느낌이길 원했다. 내가 이 책을 집짓기 전에 읽었더라면 집의 영혼과 나와 우리 가족의 영혼을 생각하며 좀 더 따스한 시각으로 집을 짓지 않았을까 싶다. 혹여 지금 집을 설계하거나, 집을 짓고 계시거나, 조만간 집을 지을 분들이라면 사물인 집도 네 귀퉁이가 막히고 공간을 만들면 집도 영혼을 갖게 됨을 생각하며 집을 지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리 형성된 공간 안에서 살고 있는 나의 삶과 영혼이 더해진다면 집과 함께 성장하는 한 무더기의 영혼이라니 상상 만으로도 행복을 불러오지 않을까 싶다.  


남편은 진행되는 사항을 알려주면 "내가 뭘 알아 디자인은 당신이 알아서 해." 하며 모든 결정을 일임했다. 내가 "당신이 원하는 느낌이 있지 않냐?" 했더니 "설계의 기본은 내가 정했지만 입면도와 인테리어는 당신 맘대로 해." 하며 모든 일을 내게 줬다. 내가 "당신 집이라며? 명의를 그리 주장하더니?" 하니 남편은 "내 명의 집이니까? 예뻐야지! 인테리어는 당신이 해줘~." 했다. 참 현명한 남편이다. 집 입면도를 결정할 때 디자이너가 PPT 8장을 보내주면 나는 PPT를 수정하며 검토했다. 창을 넣어보고 외벽 표면 재료를 바꿔보고 말이다. 디자이너에게 생각나는 데로 다 보여달라 하면 내가 얼마나 얄밉겠나 싶어 몇 번을 수정하고선 수정된 자료를  담당 디자이너에게 보내주고 의견을 묻고는 수정해 달라 했다.


설계도면을 보고 그렇게 바득바득 우기며 동선과 보온을 걱정하던 남편은 명의를 획득한 이후는 매사가 건성이었다. 입면도를 수정한 시안을 보고서는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를 연발해서 "아니 정말 좋은 게 뭐예요?" 하고 물으니 자기는 "뭐 든 좋단다." 남편은 쓰윽 건성으로 보곤 "내가 뭘 알아, 당신이 알지~. 당신만 믿어." 했다. 남자들의 목적의식을 쉽게 봐선 안된다.


요즘 우리 집 주변에 집 몇 채가 동시에 지어지고 있어 저녁식사 후 살살 산책을 하며 집 구경을 할라치면 남편은 다음 집은 이런 재료로 저런 구조로 집을 짓겠다며 침을 튀기며 말한다. 내가 웃으며 "아니 지금 살고 있는 집 팔아서 짓는 집은 오롯이 내 생각으로 지을 건데 뭘 그렇게 열심히 생각을 해~. 생각을 하지 마요. 내 땅에, 내 집으로, 내 생각으로 질건대~." 하니 남편이 웃으며 한마디 한다. "알았어. 알았어. 생각 안 해, 그냥 말하는 거야. 심심해서. 당신 맘대로 지어." 하며 웃는다. 내가 "그럼 그래야지. 내 맘대로 지라며. 그때 당신이 분명 그랬잖아. 꽈배기처럼 꼬인 집을 짓는데도 당신은 뭐라 하지 마." 하니 남편이 잠시 얼굴이 굳으며 "설마 날 빼고 이사 갈 건 아니지? 집에 방은 있는 거지? " 했다. 내가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내다니. 늘 배운다.

 


 

 


작가의 이전글 집은 내 명의로 하면 안 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