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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루시아 Dec 20. 2020

인테리어! 집의 얼굴? 아니 내 마음!

집짓기 7: 집의 영혼에 표정을 만드는 일!

3차원 입면도가 정리될 때 인테리어 디자이너로부터 인테리어 시안 (Interior Proposal)를 받았다. 각 구역 느낌을 알 수 있는 참조 콘셉트 사진과 함께 디자이너가 최근의 트렌드를 고려하여 제안해 준 자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테리어를 결정하는 작업은 디자이너의 감각에 나의 생각과 속마음을 넣는 시간이지 않나 싶다. 디자이너 감각을 바탕으로 나는 어떤 집 얼굴을 꾸밀 것인지 말이다. 쉽지 않았다. 디자인 분야 공부를 하였지만 통일감과 함께 포인트를 주는 작업, 넓은 공간에 스스로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라 쉽지 않았다.


사람은 옷이 고루해도 사람이 세련되고 예쁘면 그 고루함이 보이지 않지만 정적인 공간은 그 자체가 말을 하니 어렵다. 또한 색채 선정과 재료 선정 등에 의해 건축주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니 신중해야 하겠지만 생각보다 결정의 시간은 짧았다. 미리 시안을 보내주고 이삼주 정도의 수정과정(상상의 수정과정임)을 거친 후 서울 사무실에서 만나 총 4시간에 의해 모든 인테리어 마감재를 결정했으니 웨딩드레스 고르기보다 시간상으론 순식간이었다. 웨딩드레스야 입어보기라도 하고 만져 보기라도 하고 이리저리 둘러보기라도 하지, 인테리어 재료는 그냥 보고 내가 상상하는 것이니 난감했다.


그 당시 내가 가진 생각은 이랬다. '보내준 인테리어 디자인 시안은 현재 대세 트렌드를 따른 것이 분명할 것이니 크게 흔들지 말자. 가능하면 깔끔하고 넓어 보이도록 따스한 흰색 계열(warm ivory or warm white)을 바탕으로 사용하고 강한 색을 사용하지 말자. 포인트 색상은 브라운 계열(natural brown)의 편안한 나무 색을 사용하며 톤 다운을 위해선 회색을 가끔 사용하자. 따스한 회색(warm gray)은 모던하며 차분한 분위기를 내니 그 정도 색상 선에서 결정하자.' 정도였다.  


나의 이런 생각과 결이 같았는지 처음 보내준 시안은 맘에 들었다. 웜 아이보리 바탕에 나뭇결과 회색의 아트월이 좋았다. 그러나 TV 화면 속 공간이 커 보여도 실제 현장은 작아 보이듯 우리 집 거실과 부엌 크기는 그리 넓지 않기에 거실과 부엌을 조금 더 열린 구조(겨울엔 닫고 여름에 열고 하는 구조)로 하면 어떨까 싶었다.

1차: 디자이너가 처음 보내준 거실과 식당의 공간 시안

현관은 심플한 구조로 회색으로 차분한 색을 쓰고 이층 서재는 책을 읽는 공간이니 집에 있던 오크 6인용 테이블과 어울리도록 하면 좋을 듯했는데 디자이너가 석가래 구조를 제안했다. 큰 독서 테이블이 있는 곳에 조명 세 개를 넣어 집의 단조로움을 없앤 구조는 맘에 들었다. 특히 이층 서재는 부엌에서나 거실에서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서재가 보이는 구조로 별도 장식이 없어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공간일 듯 보였다.

1차: 이층 서재와 현관 시안

1차 시안 중 하늘에서 바라본 각 층의 단면도는 각 공간이 어떤 구조로 어떤 느낌으로 들어갈 것인지 예측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는데 사실 공간의 동선이며 각 방의 느낌을 쉽게 알 수 있어 좋았다.

위에서 바라본 일층 거실, 부엌, 아이들방, 화장실, 다용도실의 모습


위에서 바라본 이층 안방, 드레스 룸, 화장실, 서재의 모습


인테리어 시안은 거실, 부엌, 안방, 딸방, 아들방, 드레스 룸, 화장실 1, 화장실 2, 현관, 다용도실 등으로 모든 바닥재, 벽지, 문, 손잡이, 손스침, 욕조, 세면대, 수전 등 통일감 있으면서도 나만의 색을 갖는 것을 골라야 했다.   


1차 시안을 받고 서울에서 디자이너와 미팅을 한 후 수정된 2차 시안을 받았다.  사실 처음 것이 좋은지 내가 결정한 것이 좋은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결정하였으니 진행했다. 원래 인생이 그런 것이니 말이다.

2차 시안: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만나 수정한 거실과 부엌


2차 시안: 부엌, 현관, 현관문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파일들을 열어보고 나서도 뭐가 더 좋았을까 싶기도 하다. 언제나 과거는 회한의 영역에 남는 것인가란 생각을 했다. 인생을 살며 우리는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과거를 되돌아보며 그때 최선의 결정을 내린 걸까 하고 잠시 되묻는 순간들이 있다. 크게는 사람을 선택하거나, 작게는 소소한 물건을 사거나 할 때 말이다. 사실 인생은, 삶은 수많은 작은 순간의 결정에 의해 만들어 짐을 잊고 크고 힘든 결정에 의해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다 생각할 수도 있다. 작은 결정들이 모여 내가 있고 그 과거의 누적된 수많은 결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망각이 축복인 건 내 탓을 피해 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인 듯하다. 여하간 그 많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들이 합쳐져 지금의 내가 있으니 과거 인테리어 결정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도 그리 결정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테리어를 결정할 당시는 바쁘기도 했지만 깔끔하고 편안한 집을 생각했다. 집 밖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서면 따스한 느낌을 주는, 나를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번거롭게 많은 물건이 없지만 휑하지 않은 그런 집을 생각했다. 가능하면 돌출 색을 쓰지 않고 천연 나무색을 써서 눈과 맘의 피로를 풀 수 있길 바랬었다. 그런 생각이었기에 지금도 집은 편안하다. 뭐 별개 없어서 편안하고 벽이 비어있어서 편안하다. 남편이 "저 넓은 빈 벽이 너무 썰렁하지 않냐!" 해서 앞으로 여행을 다녀올 때 기념품을 사서 적당한 공간에 걸어보자 했다.


혹 지금 집을 지을 계획이 있거나 인테리어를 할 분이라면 는 이리 권해주고 싶다. 살던 집이건, 새로 짓는 집이건, 여백을 크게 만드시길... 살면서 그 여백을 채워가는 재미도 있거니와 그 여백 자체가 머릿속을 비우는 공간이 되니 말이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지만 정작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은 공간의 지배를 받는다. 내가 만든 공간이 내 속 마음이고, 내 속마음이 내 공간을 만들지 않을까?   



인테리어를 결정하며 이메일을 주고받던 인테리어 디자이너 과장은 세 살 남자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는 육아 맘이었다. 메일로만 서로 생각을 논하다 서울 사무실에 가 직접 만나보니 보통 단단한 커리어 우먼이 아니었다. 자신의 주관이 뚜렷함에도 모든 사항에서 건축주의 생각과 감성을 고려한 디자인을 하고자 했다. 건축주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부드럽게 설명하며 자칫 기능을 망각하여 범할 수 있는 사항들을 최대한 설명하며 자재 선택을 도왔다. 프로 디자이너의 모습은 인상 깊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의견을 들었을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문 00 과장은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심리적 압박(직장 생활하는 게 잘하는 것인지? 하는 의문을 던졌었다.)이 크다 지나가듯 말했었다. 집이 지어진 후 연락할 일이 없었지만 인테리어 디자이너 문 00 과장님이 건강한 아이와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시길 기원해 본다. 이제는 승진하셨을까? 아직도 그 회사에 다니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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