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9: 집의 눈? 아니 집의 눈빛을 정해요
인테리어는 2017년 5월 23일 확정하였고 2017년 6월 17일 포클레인이 땅을 팠으니 인테리어의 결정은 이제 끝났나? 할 때 다시 전기배선과 조명 관련 메일이 왔다. 기본 전기 배선은 기본적인 것이니 문제가 없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조명(포인트 등)을 달 것인지와 콘센트 위치였다.
이 도면을 받고는 두뇌를 총동원해 상상의 나래를 펴며 전기배선과 조명을 생각했다. 각 부호를 살피며 각 위치에 설정된 것이 간접등인지, 매립등인지, 포인트 등인지 말이다. 지금 봐도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은데 그 당시는 아무것도 모르다 전기배선도 및 조명 결정사항을 알려달라 하니 당혹스러웠다.
물론 인테리어 디자이너 분이 각 방의 조명과 외벽의 조명을 보내주셔서 참조를 하였지만 사진 속 조명을 상상하며 공간에 그려 넣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하간 1, 2층 전기 배선도를 보며 작은 탄성을 냈다. 이렇게 전기 배선도를 그리는구나! 남편에게 전달하며 콘센트 위치, 에어컨 콘센트 위치를 살펴봐달라 했다. 조명은 내가 결정할 터이니 그 이외의 것을 결정하면 될 것이라 했다.
3년 살아보니 꼭 필요한 콘센트들이 있다. 일단 현관에 덮개가 달린 콘센트가 있으면 크리스마스 트리나 현관을 장식하는데, 청소하는데 유리하다. 현관 콘센트는 진공청소기를 돌릴 때나 작은 불빛 장신구를 놓는데도 좋으니 꼭 만들길 권한다. 같은 이유로 데크가 있는 공간과 뒤꼍 같은 공간에도 콘센트는 필요하다. 있으면 쓰게 되지만 없으면 긴 익스텐션 전선이 집 안팎을 돌아다닐 터이니 말이다. 집을 짓는 분이거나, 혹 인테리어 작업으로 집 리모델링한다면 적당한 곳에 미리 콘센트를 만들어 놓길 권한다. 전기 배선 결정 시 도면이 정신 사나워도 서로서로 교차 검토가 필수다. 노동이 다르면 보는 것도 다르며 상상력도 다르니 말이다.
집을 지으면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필요는 노동과 가까운 사람이 느낀다는 것이다. 드레스 룸 창가에 컨센트를 달아달라 하니 남편이 욕실 근처에 있는데 뭐하러 만드냐 했다. 내가 그럼 다림질은 화장대 앞이나 욕실에서 하려고요? 하니 바로 수긍하며 알았다 했다. 지금 그 콘센트는 진공청소기 충전을 위해 주로 사용한다. 일층과 이층으로 나뉜 공간에서 살면 청소기를 들고 위아래층을 오르내리는 것도 낭비다. 물론 충전시간 안에 작업이 끝나지도 않기에 각 층에 진공청소기를 각각 사용한다. 청소도 일층과 이층에서 각각 한다. 내가 주로 이층을 담당하고 남편이 일층을 담당하는데 서로 불만이 없다. 사람들이 집에 놀러 와 큰 집을 청소하는데 힘들지 않으냐 하는데 함께 나눠하면 스트레스가 없다. 나눠진 공간의 청소시간이 길지 않으니 말이다.
전기 배선도는 그럭저럭 결정이 쉬웠는데 조명은 힘들었다. 조명은 집의 눈을 결정하는 일 아닌가? 조명의 색깔에 따라 집의 빛이 달라지니 조명은 한 달 정도 여유를 갖고 결정했다. 집이 지어지고 있었지만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문 00 과장님께 전화를 걸어 "과장님. 조명이 중요한 것 같은데 바로 결정해야 하나요? 조금 시간을 갖고 결정해도 되나요?" 하고 물으니 과장님은 "건축주님, 매립 조명이 아닌 펜던트 조명은 천천히 결정하셔도 돼요. 제가 초안을 보내드리지만 맘에 드시지 않으면 인터넷을 찾아 보내주세요. 그럼 제가 구해보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했다. "아니 지금 막 집이 지어져서 얼른 결정해야 하나 싶어서요. 그리고 거실 천장에 실링팬을 하나 달고 싶은데 알아봐 주실 수 있는지" 하니 "펜던트 등은 천천히 찾아보시고 천장 실링팬은 가격도 있고 하니 제가 좋은 것으로 추천드리겠습니다. 연락 주세요." 했다.
거실 천장에 달고 싶은 실링팬을 디자이너 분이 찾아 자료를 보내 주었다. 실링팬은 잘 사용하면 환기에 유리하고 여름 에어컨을 켤 때 넓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쿨링 할 때 좋아 천장에 하나를 꼭 달고 싶었다. 디자이너 분이 서재 등과 식탁 등을 보내 주어 상상 속 부엌과 서재를 그리며 인터넷 서치로 등을 결정했다.
여러 작업을 동시에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함에도 문 00 과장님은 건축주의 취향을 고려해 시간을 넉넉히 주었다. 인물화를 그릴 때 눈동자를 마지막에 그리듯 집의 조명도 집의 눈빛을 내는 것이니 서두를 필요 없지 않느냐는 말인 듯했다. "건축주님! 집이 완공되려면 두어 달은 있어야 하니 천천히 골라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조명이야 말로 느낌을 좌우하니까요." 서둘러 결정하라 하지 않아서 정말 고마웠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지금 와서 일처리가 완결되어야 속이 편함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생각에 생각을 더하여 결정해도 된다는 그 말이 너무 고마웠음을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더 느낀다.
문 00 과장님이 보내준 조명들은 대체로 모던했고 그 시절에 유행하던 것이었다. 보내준 거실 등은 너무 화려한 느낌이었데 나는 은은한 등, 너무 두드러지지 않는 등이었으면 했다. 지금 보니 화려하지도 않았는데 그 당시는 화려하다 생각했다. 몇 년 지나 등을 갈아야 할 때가 오면 과감한 등을 달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화려한 것은 잠시는 좋지만 오래 사용하기엔 유행을 탄다 생각했다. 옷도 화려한 옷은 구매해 그해 입으면 좋지만 두어해 지나고 나면 트렌드가 바뀌건, 내 분위기가 바뀌건, 내 몸이 바뀌건 하여 입을 수 없으니 조명은 더 그렇지 않을까 하여 조심스러웠는데 막상 삼 년을 살아보니 과감하게 결정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선택은 늘 여러 갈래의 생각을 낳는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3년을 살아왔다면 지금 조명에 대해 글을 쓰며 차분한 등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할지도 모른다. 차분한 등 아래서 3년을 살고 나선 조금 화려한 조명을 달 걸 그랬네 하는 소리를 하니 말이다. 인생은 그래서 늘 열려있는 선택의 공간이며 시간인 것 같다. 과거의 시간을 헤짚어 현재를 판단하고 새로운 미래를, 가능성을 꿈꾸고 탐색하니 말이다.
집이 쑥쑥 지어지는 시간 동안 등을 고민하여 결정했다. 그게 최선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쉽게 바꿀 수는 없지만 못 바꿀 것도 없는 게 등이란 생각을 그 당시 못했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벽지도, 바닥도, 타일도, 욕조도 아닌데, 그냥 돌리고 바꿔 끼기만 하면 그만인데 뭘 그리 조심스러웠을까 싶다.
지금 실내 인테리어를 고민하시는 분, 집을 지으며 조명을 고민하시는 분이라면, 너무 비싸지 않은 등이라면 조금 과감하게 시도해 보라 하고 싶다. 조심스러움이 늘 최선이 아니니 말이다. 내 마음속에 화려함이 숨어있다면 집의 한 공간에는 그런 맘속 욕망 같은 화려한 등을 달아도 좋고,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한 귀퉁이 공간에 그런 등을 달아도 되니 말이다. 다른 곳이 아닌 내 집이니 나의 욕망이 눈빛처럼 반짝이도록 허락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