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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루시아 Jan 09. 2021

스페인 집 구경 중 내 집도 지어지고

집짓기 10: 경량식 목구조의 집짓기 기록

 집이 지어지는 시기인  2017년  7월 13일, 나는 딸과 아들을 데리고 스페인 자유여행을 떠났다. 세 달이면 집이 지어진다 했는데 한 달이 지난 후 3주 동안 배낭여행을 간다 하니 남편은 입을 내밀었다. 시작은 이랬다. 2017년 봄방학, 중3이 되는 아들이 저녁을 먹다 말을 뚝 던졌다. "엄마! 누나는 초등학교(초3학년) 때 엄마랑 유럽 자유여행을 2주 넘게 다녀왔는데 저는 어려서(4살) 못 갔잖아요. 저도 가보고 싶어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공부만 하게 될 텐데~ 이번 여름 방학에 저랑 유럽여행 가시면 안 될까요?" 했다. 내가 "유럽 여행을 가자고? 고등학교 때에 공부해야 하니~"말을 받아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시험기간마다 과다 숙면을 취하던 아들이 고등학교에 가면 공부를 해야 하니 중3에 유럽 배낭여행을 가고 싶다 나를 꼬시니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렇지, 고등학생이 되면 공부를 해야지. 그러고 보니 여행을 가려면 지금이 딱이네. 좋은 생각이구나. 그런데 어디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 하고 물었다. 속으로 내가 좋았다. 아들 덕에 유럽여행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뼛속까지 잔 미소가 흘렀다. 지금 생각해도 효자다. 아들은 "엄마 시간 되면  스페인 가우디 건축 작품을 보러 가고 싶어요. 그 특이한 건물을 보고 싶어요." 했다. 아들이 2009년 남편과 내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여행한 후 사진첩을 만들어 놓은걸 9살에 보았으니 그럴 만도 했고 딸과 배낭여행을 하던 때는 아들이 네 살이었으니 언제 즈음 엄마가 자신과 유럽여행을 할까 기대가 있었을 터였다. 남편이 아들 말을 듣고 있다 "대학 가서 친구들과 자유여행으로 가면 되지 바쁜 엄마가 갈 수 있겠냐?" 했다. 내가 "아들이 정 그렇다면 한번 시간을 내봐?" 했다.


포클레인이 땅을 파고 있을 때 비행기 티켓팅을 했고, 에어비엔비(Airbnb)로 숙소를 예약했다. 그 당시 대학생이던 딸에게 너도 가려니? 하고 물으니 일초의 틈도 없이 간다 해 집 명의를 주장하던 남편만 집 짓는 현장을 지키게 되었다. 딸이 스페인 도시들을 미리 검색하고, 숙소와 기차, 비행기, 버스 편은 내가 구글맵을 이용하여 검색하고 확정했다. 아이들과 2주 스페인 여러 도시를 보고 1주는 나 홀로 시칠리아 섬에 들어가 돌아다니는 일정을 짰다. 남편은 2주만 아이들과 여행하고 들어오지 시칠리아 섬은 왜 혼자 일주일씩이나 있느냐 골을 부렸다. "도둑들이 눈 앞에서 코를 베 간다는 도시라는데.. 다음에 나랑 같이 가면 안되나?" 하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놀 때 놀아야지 다음은 없지 않은가? 


막 더위가 시작된 한국에서 두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기를 탔다. 언제나 여행은 설렘을 주었지만 그 당시는 에어비엔비로 숙소를 잡아 스페인의 가정집을 구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여서 더 좋았다. 내 집을 떠나 남의 집을 배회하는 시간들이라니! 그게 뭐 설렐까 싶지만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첫 번째가 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불만이 가득한 남편에게 "집 잘 짓고 있어요. 뭐 할 일이 크게 있지는 않겠지만.  얘네들을 데리고 2주를 꼬박 가이드해야 하는데, 패키지로 가는 것도 아니고, 일정을 챙겨서 데리고 다니며 먹여야 하는데~ 당신 고생하는 것만큼 나도 고생할 터이니 너무 날 미워하지 말고요" 하니 남편은 "알지, 당신이 고생하겠지. 다 챙겨야 하니. 그래도 그냥 샘이나서 그렇지, 나도 가고 싶은데." 했다. 내가 "당신은 내가 2009년에 모시고 갔었잖아요. 둘이서 신나게 돌아다녔으니 요번에는 당신 명의 집에 집중하세요!" 했다.

2017년 7월 21일 :  내가 스페인으로 아이들과 출발할 때도 빈 콘크리트였는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여행 내내 남편은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밴드에 올렸다. 내가 사진을 받아 아이들에게 보여줘도 얘들은 시큰둥했다. 그나마 딸은 몇 마디라도 했지만 아들은 슬쩍 보곤 모두 패스했다. 마드리드(Madrid)로부터 세비야(Sevilla), 그라나다(Granada)를 에어비엔비로(Airbnb), 바르셀로나(Barcelona)는 호텔을 잡아 여행을 하며 남의 나라에서 그들이 사는 집들을 구경하는 동안 내 집은 성큼성큼 지어지고 있었다.   


그라나다 대성당(Granada Cathedral)을 거닐던 때 우리 집은 경량식 목구조의 일층 기초가 세워지고 있었다. 콘크리트에 수평을 맞춰 기초를 잡고 그 위에 목재가 자리를 잡고 올라갔다. 앞마당에 수북이 쌓여있던 목재들이 잘려 하나둘씩 제 자리를 찾아 퍼즐 맞추어지듯 형태를 만들어 가는 것이 신기했다.

2017년 7월 22일: 점점 복잡해지는 목조 구조

그라나다의 헤네렐리페(Generalife) 정원을 돌아다니며 참 아름답다 탄성을 지를 무렵 집은 성큼성큼 지어지고 있었다. 구조물이 올라가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사실 스페인 정원의 아름다움에 흠씬 취하여 아이들과 물병을 들고 하루 종일 재잘거리며 돌아다녔다.  

2017년 7월 24일: 며칠 사이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구조. 아이들과 탄성을 질렀다. 이때 우린 바르셀로나에 있었다.

 2017년 7월 24일에 우리는 바르셀로나로 들어갔는데 군산 집은 지붕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는 볼 것이 많아 하루 종일 걷고, 트람을 타고, 버스를 는데, 나는 2003년 혼자, 2009년 남편과 둘이 와서 보았던 곳이 많아 카사 밀라(Casa Mila), 카사 바트요(Casa Batlló), 구엘 파크(Park Guell) 등은 아이들을 들여보내 놓고 두어 시간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글을 끄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커피와 탄산수를 시켜놓고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길을 지나가는 수많은 관광객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잘 지어진 건축물로 수많은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먹고 사는구나! 조상들의 고뇌와 창의성이, 역사란 이름으로 현재에 남아 후손의 먹거리로 끝없이 재 탄생하다니! 스페니쉬들의 감성이 가우디를 탄생시키고 그로부터 다시 먹고사는 순환이라! 건축물은 사물이지만 그 속에 담긴 삶과 사상과 문화가 빛을 발하며 다시 살아나는 도시는 아름답구나!' 했다. 건축이던, 사람이던, 문화던, 한나라의 흥망성쇠던, 현재는 늘 과거의 축적된 시간의 결과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2017년 7월 26일: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2017년 7월 28일

2017년 7월 27일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을 오전에 둘러보고 아이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로마를 거쳐 시칠리아로 들어선 7월 28일, 집은 형태를 거의 다 잡았다. 정말 오랜만에 혼자 배낭여행을 했다. 두 아이들과 2주를 지내고 아이들을 귀국시키니 행복했다. 아이들 출국 터미널과 내가 이탈리아로 들어가는 터미널이 달라 두 아이를 공항버스에 태우며 잠시 걱정에 휩싸였었지만 두 눈에서 아이들이 사라지니 그리 행복할 수가 없었다. 혼자여서 좋았다. 2주 얘들과 지내는 동안 남편은 전화도 잘 안 하더니 아이들을 공항에 보냈다 하니 남편이 아이들과 엄청난 카톡을 했더랬다.    


스페인을 얘들과 돌아다닐 때 혹 사고라도 나면 안 되지 싶어 차를 렌트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시칠리아 팔레르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작은 차를 렌트했다. 일주일 내내 시칠리아섬을 쏘다녔다.  

2017년 8월 12일: 창문이 설치되고 외장재 작업을 하고 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남편과 저녁마다 집을 둘러보았다. 외장재를 붙이는 작업은 흥미로왔다.  실컷 스페인 집을 구경하고 난 후 돌아와 내 집이 지어지는 것을 보며 '집이란 무엇일까? '싶었다. 도면이었던 설계가 집으로 지어지는 과정을 처음 경험하며 '아~ 이 구조의 크기가 이렇구나, 이 공간은 이렇게 구성되는구나, 생각보다 넓거나, 생각보다 좁거나, 모든 것이 새로'왔다. 처음 집을 지으며 '이 집은 몇 년이나 이 공간에 서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집을 지었더랬다. '이 집은 몇 년을 살까?' 하는 생각이 애당초 없다가 천재 가우디의 오래된 집들을 구경하다 돌아온 나는 '내 집은 얼마나 살까?' 했다.


가우디 집이 오래되었지만 늘 보는 사람 눈에 새롭게 인식되는 것은 최소 직선 속에 최대 곡선을 사용한 데서 오는 시각적 다채로움이었음을 우리 집을 보고 깨달았다. 짓고 있는 우리 집은 '각 잡는 집이구나! 참 각지다'란 생각을 했다. 각진 곳에서 산다고 인생이 각이 서지나? 좁은 집에 산다고 인생이 좁아지고, 넓은 곳에 산다고 삶이 넓고 풍요로워 지겠나? 터전과 삶은 다르지만 그냥 궁금했다. '곡선으로 지어진 카사 바트요(Casa Batlló)에서 살던 사람들은 곡선처럼 둥글게 살았을까?' 하고 말이다. 곡선 집이 인생을 둥글게 살게 한다면 우리 민족은 초가집 둥근 지붕 아래 살다, 죽어 둥근 봉분을 덮었으니, 생과 사 모두 둥글게 사는 민족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다 어찌하여 우린 지금 죽자고 아파트를 짓고 사려 하게 되었는지~


그런 생각을 할 때 "전후 세대 한국 사람들은 각진 아파트 건물에서 직선만 보고 자라 성마르지 않을 수 없다"는 디자인 전공자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2017년 8월 26일: 실내 인테리어 작업 중

흐르는 물처럼, 떠다니는 구름처럼, 가볍게, 곡선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휘어져도 반듯하지 않아도 제멋을 알고 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집이 너무 반듯했다. 집을 지으며 나중에 집의 어느 공간이던 사람들과 술 마실 둥근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작심했다. 집이 너무 반듯해서 말이다.

2017년 9월 13일: 집 내 외부의 마무리 공사

2017년 9월 13일 경에는 집 안의 벽지도 다 붙고 거실과 부엌, 이층의 바닥 등 안쪽의 공사도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었다. 과정이 모두 신기했다. 일하시는 분들이 오전에 와서 쓱싹 일을 하고 바람같이 사라지면 바닥이 생기고, 문이 달리고, 벽지가 붙여지고, 등이 달리고 했다.


내가 혼자 시칠리 배낭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니 남편은 혼자 집 짓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지 모른다며 온갖 생색을 냈다. 내가 없는 동안 여러 잔 업무를 봤단다. 가스 설치, 기타 전기, 오하수 설치 등 허가 받는 일을 했단다. 남편의 쑥 나왔던 입은 다시 잘 들어갔는데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너무 즐겁게 여행하고 돌아왔다며 100% 만족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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