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8: 포클레인이 첫 삽을 뜨고
2017년 5월 말(공사 시작 3주일 전) 현장 소장님과 집터 근처 커피숍에서 만나 작업일정을 상의했다. 소장님은 전북 근방에서 4채의 집을 짓고 있다 했고 우리 집까지 도합 다섯 채의 집을 동시에 짓게 될 것이라 알려주었다. 키가 크고 날씬한 소장님은 경기도에 가족을 두고 전주에서 숙식을 하며 지내는 중이었고 고객 집을 짓느라 본인 집은 가끔 가신다 했다. 내가 "소장님은 집을 져서 살고 계시나요?" 하고 물을니 배시시 웃으며 "아파트에 살죠. 저도 언젠가는 제 집을 지어야죠!" 했다. 소장님은 일정 및 자재 배급, 노무관리 등 집 짓는 전반을 책임지니 혹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달라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만큼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
내가 "저희가 아파트를 9월 30일에 빼줘야 해서 그때까지 집이 지어질까요? 일정이 여의치 않으면 아파트 집주인에게 미리 사정을 해서 일정을 조율해야 하는데.... 몇 개월 안 남았는데 이사가 가능할까요?" 하고 물으니, 소장님은 쓸데없는 걱정이란 듯 남편을 바라보며 "건축주님, 걱정 마세요. 3개월이면 지어지고 넉넉잡고 2주 정도면 완공 검사하고 입주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공사는 제가 책임질 터이니 가끔 오셔서 작업자들 커피와 음료, 간식 챙겨주시고 구경하시면 됩니다." 했다. 내가 "그리 빨리 지어져요?" 하며 근방의 넓은 택지에 자란 초록 잡초들을 보니, 소장님은 "사모님, 걱정 마세요. 땅만 파기 시작하면 뚝딱 지어집니다." 했다. 사실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2017년 6월 17일 집짓기 공사가 시작됐다. 점심시간 때 잠시 들러 보니 포클레인 기사와 소장님, 다른 두어 분이 함께 작업을 하고 있었다. 길을 가던 사람들도 차를 세우고 구경을 했고 나도 구경 대열에 합류했다. 사실 공사가 시작된다 하여 많은 사람이 우르르 와서 뭔가를 계획적으로 하나? 싶었는데 설렁설렁 땅을 파고 있었다. 시작은 조용을 넘어 썰렁했다. 속으로 '땅만 파기 시작하면 바로 지어진다는데 믿어도 되나? 정말 그럴까?'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포클레인 첫 삽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작업일정을 정리해놓은 밴드 자료를 확인해 보니 심한 장맛비와 콘크리트 굳는 시간을 제외하곤 공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으니 말이다. 포클레인의 첫 삽을 뜨고 딱 3개월인 9월 20일경 집이 완성되었고 시청의 준공 허가서를 받아 이사를 한 날이 9월 30일이니 말이다.
모든 삽질이 별거 없이 보여도 결국은 우물을 파거나,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내거나 하는 첫 작업이니 첫 삽질은 중요하다. 생각이 현실이 되는 순간! 설계 도면이 구체화되는 순간!이니 말이다. 지나가는 말로 우린 수없이 "삽질하네! 참 삽질도 엄청한다." 하며 삽질을 비웃었는데 정작 무언가 만들어지는 그 행위의 첫 번째가 삽질이니 글을 쓰며 다시금 삽질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포클레인으로 땅을 판 다음날 오후 퇴근을 하며 택지에 가보니 전기 및 오하수 관들이 설치돼 있었다. '이렇게 설치해서 작업을 하는구나!' 싶었지만 한편으론 잘못 묻으면 어찌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뭘 알랴?' 생각하며 프로들의 작업이겠거니 하고 믿었다. 여하간 하루가 다르게 집짓기 작업이 진행됐다.
포클레인이 땅을 퍼놓은 이틀 후인 "2017년 6월 19일에 버림 콘크리트를 친다." 했다. 남편이 "버림 콘크리트"라 말할 때 '뭘 버려?' 했던 생각과 함께 '왜 굳이 버림 콘크리트라 했지?' 했는데 현장에서 보니 정말 '버린 콘크리트'였다. 집터 주변의 터를 굴착기로 파곤 콘크리트를 적당히 버려둔 것이었다. 너무 설렁설렁한 작업이라서 '집을 이렇게 짓나?' 했다. 내가 '뭘 알랴?' 하며 '버릴만하니 버린 콘크리트겠지.' 했다. 인생에서도 버린 것 같은 시간들이 있지 않나! 그렇지만 사실 버린 게 버린 것이 아닌 란 걸 깨달으려면 스스로 버린 것처럼 보이는 속에서 의미와 배움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버려진 시간이 되니 말이다. (지금 집짓기 사진들을 보며 버림의 의미를 새삼 찾았으니 브런치 글쓰기를 통해, 버림 콘크리트 사진을 통해, 자칫 버려질 것 같던 순간들을 의미 있는 순간으로 만들고 있구나 생각하니 즐겁기 그지없다. 그 시간들을 지금 찾아서 나름의 의미를 헤아리니 말이다.)
버림 콘크리트를 하곤 한동안 작업 진행이 안됐다. 굳는 시간이 필요했지 싶다. 그래도 날마다 현장을 퇴근하며 지나갔고 저녁을 먹고 나서도 남편과 산책하며 둘러봤다. 내가 살 곳이니 넓게 뻥 뚫린 택지를 바라보며 "언제 즈음 이곳에 이웃이 생길까?" 했다. 남편은 "천천히 생기는 게 더 좋지 않겠어? 우리 맘대로 실컷 떠들고 소란스럽게 살아도 누가 뭐라 하겠어." 하며 생글거렸다.
2017년 6월 24일 출근하며 공사현장에 가보니 두 분이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이른 시간이어서 가볍게 인사하곤 점심 먹고 냉커피와 간식을 챙겨 다시 현장에 갔다. 두 분이 소년 같은 미소를 지었다. 커피를 받아 들고 바로 마시지 않기에 꾸벅 인사만 하고 학교로 왔다. 두 분 다 얼굴이 까맣게 탔고 뒷목이 붉게 타 있었다. 늘 햇볕을 받으며 작업하시니 뒷목이 새까맣게 탔었다. 나의 집을 짓고 있는 그분들은 어떤 집에서 살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궁금함이 들었다.
며칠 후 철근 작업 후 거푸집 작업이 시작됐다. 콘크리트를 붓기 위해 거푸집을 만드는 작업은 흥미로왔다. 각을 맞추고 철사로 묶고 하는 작업들의 연속을 보며 "이런 틀로 콘크리트를 가두다니! 얇은 나무판으로도 콘크리트 반고체 상태의 물질을 턱 하니 가둘 수 있다니!' 그런 생각을 하며 '사람은 어떤 힘으로 타인을 잡아당겨 콘크리트 같은 믿음을 만들까? 콘크리트 같은 믿음을 만드는데 얇은 막 같은 무엇으로도 가능하겠구나!' 스치듯 생각했더랬다. 집 짓는 현장을 오가며, 집을 지으며, 거푸집을 보며 '정작 무언가를 가두는 데는 그리 큰 힘이 필요치 않을 수도 있겠구나!' 했다.
콘크리트를 치고 난 후 사진을 찍으며 '드넓은 초원이구나' 했다. 주변은 걷는 사람도 없고 근처 아파트 주민의 차만 도로에 가끔 주차될 뿐이었다.
거푸집을 떼고 한참 시일이 지나도 작업은 진행되지 않았다. 콘크리트 계단을 밝고 올라가는 발걸음이 신기했다. 약 2주 전, 맨 땅이었던 이곳에 이런 구조물이 생기다니! 알 수 없는 배관들이 불쑥 솟아있는 이곳에 집이 지어지다니 신기했다. 2015년 여름, 군산 도로에 붙어있던 택지 분양 현수막을 보고 집을 짓자 했던 때가 생각났다. 그 생각이, 그 결심이, 2017년 7월 현실이 되어 내 발밑에 있었다. 굳은 콘크리트로 말이다.
남편과 콘크리트 위를 걸으며 여기가 거실이고, 여기가 화장실이고, 여기가 딸방이구나 했다. 아무것도 없는 넓은 콘크리트 바닥을 걸으며 궁금했다. 콘크리트가 굳는 시간이었는지, 다른 작업들과 겹쳐서인지 몰라도 하루가 다르게 날이 더워지던 7월 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부터 전기배선도 및 조명 관련 메일이 왔다. 기본 전기배선도는 확정됐지만 혹 추가할 곳은 없는지 살펴달라는 것과 중요한 조명(등)을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조명이라! 집의 눈을 결정할 때가 다가왔다. 조명은 집의 눈, 집의 눈빛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