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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루시아 Aug 29. 2021

이젠 마법의 설탕 한 조각

아들의시간 3:초등학교 2학년 독서일기

아들이 시카고에 간지 2주가 지났다. 카카오의 페이스톡으로 대화를 했다. 아들 얼굴을 보니 그저 좋다. 이리 가깝다니!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산다는 건 복이다. 그 먼 곳에 있는 아들을 이리 가까이 볼 수 있다니... 올해 서울서 대학을 다니던 아들이 주말마다 내려와 페이스톡을 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했어도 내가 먼저 전화를 하지도 않았다. 토요일이 되면 아들 학교 주차장에서 기다리면 됐으니 말이다. 정해진 시간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마음에 조급함과 그리움을 쌓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한 번 해본 적 없는 페이스톡으로 방안을 살짝 보니 기숙사는 서울에서 지내던 기숙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2015년 여름 캠핑 중 캐나다의 퀸즈 대학 기숙사와도 비슷했다. 아들에게 캐나다 퀸즈 대학 기숙사가 기억나냐고 물었더니 기억이 없단다. 아이들의 기억창고에서 부모와의 추억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작은 방에 있지 않을까 싶다.  


아들은 시카고 도착 이틀 후 얀센 백신을 맞아 아직도 그 기운이 남은 듯했다.  시차 적응도 덜 된 상태에서 백신을 맞았으니... 한국처럼 더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싸늘해서 몸이 적응하는데 힘든가 보다. 몸이 좋지 않다는 말에 맘이 편치 않았다. 뜨근한 국물 음식을 먹기 쉽지 않으니 컵라면을 아마존에서 배달시켜줬다. 남편은 자기가 아마존에 들어가 주문하면 되지 그걸 왜 우리가 하냐며 툴툴대다 내가 한번 째려보니 핸드폰을 들었었다. 


아들이 미국으로 가기 전 이층 서재 책상에 올려놓은 아들의 독서일기와 일기장을 이런저런 일을 하며 아무거나 잡아 읽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아들 글을 읽으면 너무도 어린 아들이 눈앞에 있는 듯하다. 어린 아들이 삐뚤빼뚤 써 내려간 글자들이 소리를 지르는 듯해서 말이다. 모든 글자들이 정말로 미치고 환장하게 쓰기 싫다는 아들 마음을 합창하듯 소리 내고 있다. 아들은 식탁에 앉아, 방바닥에 누워, 책상에 앉아 몸을 계속 뒤틀었다. 한 줄 쓰고 나선 한숨을 쉬고 살그머니 잡았던 연필은 점점 분노로 떨렸다. 안 쓰면 쓸 때까지 써오라는 학교 선생님의 성화에 너나 나나 방법이 없지 않냐 하면 아들은 한숨을 푹푹 쉬며 바르르 연필 잡은 손을 떨며 한 칸에 넘치도록 글씨를 썼다. 쓰기를 죽기처럼 싫어했던 아들은 한 번도 쉽게 글을 쓴 적이 없었다. 왜 써야 하냐?로 시작해서 도대체 뭘 쓰냐? 딱 다섯 줄만 써도 되냐를 반복하며 얼굴은 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아들이, 짜증을 잔뜩 풀어써놓은 독서 일기를 보니 아들이 더 보고프다.  


아들은 열 번 중 한 번에 해당할 때만 짜증 없이 독서 일기나 일기를 썼는데 그럴 땐 바른 자세로 앉아 입을 앙 다물고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며 연필이 춤을 추듯 글을 썼다. 가끔 글자를 잘 못 쓰면 지우개로 글자를 지우고는 입안 가득 공기를 머금고 후~ 하고 불며 눈가에 미소를 머금기도 했으니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얼마나 귀엽고 앙증맞은지....  



마법의 설탕 두 조각   2009년 1월 21일 수요일


텡켄은 착한 아이인데 엄마, 아빠가 원하는 걸 안 들어주었다. 

그래서 요정을 찾으러 가서 요정 내 집에 갔다. 

가서 그 사정을 말하였더니 각설탕을 줬다. 

차에 타서 먹였다. 

아빠가 잔소리를 하자 아빠의 몸은 작아졌다. 

엄마도 작아져서 다시 그곳에 가서 엄마, 아빠를 되돌렸다. 

나도 엄마가 그러는 것 싫지만 엄마, 아빠가 사라지는 것도 싫다.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읽고 독서일기를 쓴 내용을 보니 그 시절 내가 잔소리를 많이 했나? 궁금했다. 사실 많이 했을 리가 없다. 2009년이면 조교수에서 부교수 승진을 위해 학기 중뿐만 아니라 방학에도 논문을 쓰고 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뒤돌아 보면 난 친절한 엄마는 아니었다. 딸이나 아들에게 쩔쩔매는 엄마도, 그렇다고 아이들을 외면하는 엄마도, 엄청 무서운 엄마도 아니었다. 그냥 나는 나의 일을, 아이들은 아이들의 일을 하며 과하게 서로 몰입하지 않으며 산 것 같다. 딸이나 아들에게도 글자를 잘 쓰라거나 글을 잘 쓰라거나 하지 않았다. 하물며 성적은 말해서 무엇하랴... 배움이란 시간이 가며 스스로 익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잔소리는 고사하고 독서 일기나 일기장도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다. 읽긴 읽었겠지만 이제야 정독을 하니 참 우습다.  


여하간 아들이 엄마의 잔소리는 싫지만 그래도 사라지는 것도 싫다니 그 마음이 고맙다. 잔소리를 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인생이 어떻게 좋은 소리만 하고 살겠는가 말이다.  이젠 너무 멀어 잔소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딸도 결혼하여 다른 도시에 살고, 아들은 공부하러 한국을 떠났으니 이제 잔소리는 남편 차지다. 아침에 눈떠 저녁에 잠들 때까지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겠지 싶다. 얼마 안 있어 남편은 마법의 설탕 한 조각이 간절해 질지도 모른다.  


군산 채만식 문학관 정원-그 앞 자전거 길을 아들과 작년 추석에 달렸고 오늘은 남편과 살살 걸었다.


2020년 고3 아들과 달리던 군산 금강하구둑 자전거길
아들이 참 좋은 길이라며 감탄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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