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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루시아 Sep 05. 2021

10살 아들의 '하루'

아들의시간 4:일기

아들이 떠난 지 3주가 됐다. 개강을 하여 학교를 잘 다닌단다. 며칠 전 보이스톡을 하니 친구랑 밥 먹으러 나가는 중이라며 답 톡이 떴다. 밥 먹은 후 [자동차 제작 동아리]에 회원 신청을 하러 갈 예정이라나?  며칠이 지났다. 잘 있는지 궁금했다. 먼저 궁금해하는 사람이 행동하기 마련이다. 내가 엄마이니 궁금도 행동도 내 몫이다. 엄마는 늘 자식에겐 약자다. 오늘 아침 통화를 했다. 


"아들. 잘 지내고 있니? 오늘 토요일 오후지... 밥은 먹었고?" 

"잘 지내고 있어요. 카페테리아도 먹을 만하고 저녁은 귀찮아서 조금 전 시켰어요. 이제 저녁 먹어야죠."

"집에서처럼 오늘은 기숙사에 누워 있었구나?" 

"네. 주말은 쉬어야죠."


아들의 누워 있는 모습이 스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수업은 잘 듣는지, 들을 만 한지 물으니 아들이 조곤조곤 대답했다.


"친구랑 자동차 조립 동아리에 잘 다녀왔어?" 

"네. 자동차 조립 동아리에 회원 신청도 했어요." 

"자동차를 분해하는 건가?"

"아니요. 분해하는 게 아니라 부품으로 조립해서 완성하는 거예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수업은 어떠니? 들을 만 해?"

"수학이나 다른 수업은 어렵지 않고 무난한데요. 인류학 수업이 조금 생소해요."

"뭐가?"

"책을 읽고 와서 토론을 하는 수업이라서요. 지난번에 창세기를 읽고 토론을 했는데~. 그 수업이 조금 어렵죠. 조금씩 말하고 있어요."

"인류학 수업이니 당연히 토론을 해야겠지. 교수가 자기 생각과 이론만 주욱 말하는 것은 재미없지." 

"창세기를 영어로 읽으니까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그렇지? 엄마도 창세기를 영어로 읽었을 때 그랬는데. 단어가 낯설기도 하고.. 느낌도 그렇고. 그래도 문장은 심플하지 않나. 토론이면 언어를 잘 구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논점이 필요하니 생각을 많이 하렴. 책도 많이 읽고." 

"네."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지금 배달한 음식 받으러 가야 해요." 

"알았다. 잘 지내라." 

미국 학교에 도착해 간단하게 빵을 사먹으며 보낸 사진

아들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나중에 커서 자동차를 만들겠다 했다. 어린 아들의 꿈같은 희망사항을 듣고는 그러렴 했는데 성장한 아들이 동아리 활동이지만 정말 자동차를 만들겠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토론 수업에 적응하려 애쓰는 아들이 대견했다. 자기 기준과 자기 생각이 명확한 아들이 새로운 공간에서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전화를 끊으며 마음속에 찼다. 통화가 끝났다. 뭐 별거 없는 대화에서 아들이 잘 지낸다니 그냥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딸이나 아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잘 모르겠다. 잊어버린 것인지 무관심했는지 모르겠는데 아이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잘 보내 감사하다. 두 아이가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 있으니 말이다. 10살이던 아들 일기장이 한 달째 서재 테이블에 펼쳐져 있다. 기억 없는 순간을 아들 일기장이 얘기해 주었다. 토요일 저녁 대전 누리아파트 근처 대형 마트에서 꼬막 한 자루를 사 가지고 일요일 아침에 꼬막 비빔밥을 했던 때다. 아침에 꼬막을 데치려 남편과 부산하게 꼬막을 씻고 끓는 물에 꼬막을 데친 후 남편과 수다를 떨며 꼬막 살을 떼어내던 생각이 몰려왔다. 밥상을 차리곤 큰 소리로 아이들을 불렀을 때 잠옷을 입은 딸과 아들이 식탁에 와서 "엄마 이게 뭐예요?" 하던 추억이 몰려왔다. 


(2010년 12월 12일) 제목: 하루


오늘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안방에 갔다. 그리고 엄마랑 끌어안고 잤다. 왜냐하면 내 방이 너무 차가웠기 때문이다. 또 일어나서 밥을 먹었다. 밥의 재료는 꼬막, 오이채, 당근채, 김치채, 야채, 참기름, 고추장이 들어갔다. 외식을 한 것이 아니라 직접 꼬막을 익히고 떼어내서 엄마가 직접 만들어 주셨다. 점심은 공복을 했다. 그때 누나가 엄마한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해서 사 왔다. 저녁은 엄마가 직접 칼국수를 해주셨다. 칼국수에는 바지락이 들어있었다. 달콤한 하루가 되었다.


딸방은 크고 넓은 남향에 아들방은 좁고 어두운 북향이라 아들은 자라며 내내 누나 방을 부러워했었다. 더군다나 아들방은 여름이면 더 덥고 겨울이면 더 추웠다. 아들은 주말이면 이른 아침 혼자 잠을 자다 안방으로 와 내 품에 안겨 "따스하다"를 연발하곤 곤히 잤었다. 엄마를 그리워하던 어린 아들이었으니 말이다. 아들의 일기를 읽으니 꼬막 비빔밥을 했던 나의 젊은 시절이, 아들의 어린 시절이 소환된 듯하다.  내가 정성껏 만들어 주던 음식을 먹으며 달콤한 하루가 되었다 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10살 아이의 행복이란 따스한 엄마품과 맛난 꼬막 비빔밥과 뜨거운 바지락 칼국수 한 그릇이면 그만이니 말이다. 사랑하는 아들이 내게 남겨준 아들의 꼬막 비빔밥 같은 글이 오늘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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