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루시아 Sep 12. 2021

브런치에서 책으로....

책이 출간되다니!!!

첫 에세이가 나오다니...

책이 배송됐다. 비대면 수업 준비로 학교 실습실서 동영상으로 수업을 찍은 후 집에 오니 현관 앞에 제법 묵직한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며칠 전 책이 배송될 것이란 메시지를 받았지만 눈으로 택배 상자를 확인하니  마음이 솜사탕 같아졌다.


거실에서 상자를 여니 책은 수줍은 듯 초록색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남편이 거실 테이블에 책들을 올려놓으며 싱글벙글했고 나는 편집자가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책을 들었다.

책의 크기도, 글자의 크기도, 표지의 색깔도, 딱 기대하던 그대로라 감동이었다. 소파에 눌러앉아 내가 쓰고, 고치고, 바꾸고 했던 글자들의 얼굴과, 행간의 마음과, 문단의 감정과, 단락의 목적을 다시 살폈다. 행복한 마음과 슬픈 과거와 벅차오르던 때와 고단했던 일들, 시간이 모두 몰려왔다.  남편도 맞은편 의자에 앉아 책을 폈다.


 책을 읽느라.. 한동안 우린 조용했다. 돋보기를 쓰고 있던 내가 눈만 치켜뜨고 남편에게 말을 던졌다.

"여보 자전거 타러 가자! 날이 좋네. 그냥 한 시간만 금강하구둑 달리다 오지 뭐."

"그럴까? 그러자. 잠깐 바람 좀 쐬고 와서 축하하자."


남편이 나와 책을 번갈아 보다 벌떡 일어났다.


금강하구둑을 달렸다.  둘이 왕복 28km를 달렸다. 가는 길에 외출한 풀뱀도 만나고 쑤욱 자란 풀과도 인사했다. 금강물은 천천히 하구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잔잔한 듯 반짝이며 출렁이는 풍광을 보며 '모두 지나가고 있구나' 했다. 남편이 앞서 달렸다.


추운 1월 초 출판사의 출간 제의가  9월 출판으로 현실이 됐으니 내가 그 시간을 참 잘 지나왔구나 싶었다.

출간 제의에 얼마나 기뻤던지...


2021년 1월 6일 내가 출판사 기획 담당자에게 보낸 첫 메일


안녕하세요.   


어제저녁의 상황입니다.


저녁에 5인 이하 모임으로 삼겹살에 소주 한 병 마시고 집에 오는 길이었습니다.

아주 친한 교수들과 저녁을 먹은 게죠. 교수 채용을 위한 강의 심사로 하루 종일 고생했거든요.

9시까지만 모임을 허락하니 딱 8시 59분에 잔을 비우고

9시 5분에 콜택시가 와서 기사분께 집 주소를 알려드리고

브런치를 켰답니다. 습관이지요..


무슨 알림 메시지가 왔더라고요.


저는 올해 55세입니다.

그런지라 노안이 왔지요.

흔들리는 차 안에서 소주를 한 병 이상 마시고

흔들리는 글자를 보려니 도통 잘 모르겠더라고요.

길게 글이 있는데 라이킷도 아니고 무슨 일이지? 싶었어요.

메일을 열어 들어갔더니 이 00님이 출간을 준비 중인가요? 하고 묻더군요.  


제가 술 마시러 나가기 전 꺼내놓은 냉동상태 오징어를

고3 아들이 뜨거운 물에 데쳐 잘 잘라놓아

당직 후 쉬던 남편이 흡족하게 먹은 후 저를 기다리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제가 "여보 허밍버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하니

허겁지겁 허밍버드 출판사를 찾아보더니...


남편이

오... 하는 감탄사를 보냈더랍니다.


감성적인 글과 다양한 글을 출판한다고 말이죠...

참고로 저는 지금 한 병 이상 소주를 마신 상태입니다만...

이 00 님의 글에 행복했고

남편의 탄성에 행복했고

술에 행복한 상태입니다.

제 인생에 이런 날이 며칠이나 있겠어요?


질문: 출간을 준비 중인가요?

답변: 없습니다. 그냥 저의 글을 공유하고만 있습니다.

질문: 허밍버드 회사가 저와 함께  트라이를 해보고 싶다면?

답변: 감사합니다.  쌩유지요.


언제든 연락 주세요.

술 먹은 답변이라 더 이상 진행하고 싶지 않아도 좋습니다.

제 인생에 이런 날이 있었겠어요? ㅎㅎㅎ.

왜냐면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서요.

이 00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주신 연락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정 루시아 교수


어제 술기운에 이리 글을 써서 답장을 날렸는데 오전 업무를 마치고 메일을 다시 들어가 봤더니

발신 전용 메일이라 하니... 정말 한참 웃었습니다.


다 술 탓이지요. ㅎㅎ


지금 보내드리는 메일이 학교 메일입니다. 연락을 주신다면 이곳으로 연락 주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지금 다시 봐도 웃긴 메일에 이 00 팀장은 유쾌한 답장이라 했고 그렇게 우리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모두 감사한 일이다. 금강하구둑의 수많은 물 알갱이가 모여 흐르듯 저의 이야기도 소소한 것들이 모여 책으로 탄생하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또한 다 지나가리란 것을 알기에 이제는 그걸 잘 지켜보고 싶다.


책을 탄생시켰으나 책은 책의 인생이 있겠으니. 잘 살아가길...

http://aladin.kr/p/64RCc

작가의 이전글 10살 아들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