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나는 내 딸이 이기적으로 살기 바란다] 책의 마지막 교정을 보다 아들과 점심으로 쌈밥을 먹으러 나가던 때였다. 몇 달 동안 글을 쓰고 수정하고 다시 교정하기를 반복하니 머리가 멍했다. 무엇보다 힘든 건 돋보기를 쓰고 교정을 봐 눈이 너무 아팠다는 점이었다. 돋보기를 벗으면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쌈밥집을 운전하고 가다 신호를 기다리며 에세이를 내는 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푸념처럼 말하니 아들이 살포시 웃으며 말했었다.
"천천히 하세요."
"정해진 시간이 있는데 그럴 수 있니? 시간을 지켜야지. 무엇보다 멀쩡한 종이를 낭비하는 게 아닌지 싶어서 걱정이고."
아들은 그때 목소리에 힘을 주고 운전하는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엄마! 확신을 가지세요. 그게 중요해요."
눈이 아파 사물이 온통 뿌연 하고 머릿속은 멍한 상태였는데 아들이 그리 말하니 눈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건물과 길이 밝게 보였다. 순간 아들이 심봉사 눈을 뜨게 한 심청인가 했다. 뿌옇게 보이던 사물이 분명하게 보였으니 말이다. 아들이 어찌나 환하게 웃으며 확신에 차서 말하던지.... 책이 출간된 지금 생각하면 너무 고맙다.
내가 "뭐라고? 확신을 가지라고? 넌 뭘 갖고 그렇게 말하는 건데?" 하고 물었을 때 아들은 차분히 대답했었다.
"고등학교 때 영어 지문에서 읽은 글인데요. 정치인들은 자신의 생각과 철학, 정치적 견해에 대해 무한정의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대요. 그런 확신을 갖고 있지 않으면, 그래서 자신 조차 그 생각을 믿지 않으면 절대 남을 설득해 낼 수 없다네요. 완벽한 자기 확신을 갖고 있어야 상대방을 설득하고 상대 정당 사람들이 집요하게 자신을 공격해도 철저하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대요. 그래서 자기 확신이 엄청 중요하데요. 정치는 행동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확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러니 엄마도 그냥 엄마를 믿고 확신을 가지세요. 그게 중요해요."
막 대학에 들어간 아들이 내게 내 글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 충고하니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그리곤 그날 저녁 남편에게 아들이 든든하게 말해줘 너무 좋았다며 자랑을 하니 남편은 입을 삐죽거리며 "고놈 옳은 말을 했네" 했었다. 그리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출간된 책을 추석 연휴 전에 친정엄마 드리고 추석 연휴 때 시어머니께 드리니 두 엄마들은 책을 한달음에 읽고 나선 두 분 모두 볼멘소리를 하셨다. 친정엄마는 "너 잘못한 것은 싹 빼고 가난해 고생한 얘기만 썼더구나" 했고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전화하여 "친정엄마는 세상 따스한 분으로 쓰고 나는 나쁜 사람이 됐다"며 남편에게 서운한 감정을 비추었단다. 사실 그 정도인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도 마음이 불편했다.
추석 연휴가 끝난 목요일 오후 허리가 아파 군산 청암산 호수를 세 시간 걸었다. 두 시간을 넘게 혼자 걸으며 두 엄마들의 맘이 편해지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왜 책을 냈을까 싶었다. 황금빛 저녁노을이 호숫물을 비췄고 찰랑이는 물소리가 바람과 함께 지나갔다. 무수한 노란 황금빛 햇살이 나뭇가지들을 어루만지고 호숫물을 만지다 내 얼굴에 다다를 때 아들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엄마! 확신을 가지세요" 했던 분홍빛 볼을 갖고 미소를 한껏 지으며 눈빛에 결의를 갖고 말하던 아들이 떠올랐다.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들이 말한 "엄마! 확신을 가지세요"란 말이 그때는 '엄마, 저는 엄마를 믿어요. 엄마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거예요'라고 이해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미움받을 용기에 대한 확신인 거구나' 깨달아졌다. 불편한 얘기들을 할 땐 결국 '미움받을 용기'가 먼저 있어야 하고 그 용기 위에 변화에 대한 의지를 쌓아야 함을, 그리고 그 의지 위에 행동을 다시 얹어야 함을 말이다. 아들은 어쩌면 내가 미움받을 용기를 갖고 있으니 그 이상으로 치고 나갈 나만의 확신을 믿으라 말한 것 같다.
쌈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아들이 그리 말했을 때 내가 아들에게 대답했었다.
"아들. 고맙네 그렇게 말해줘서. 그렇지만 그건 정치인들 얘기고 엄마는 정치를 하자고 하는 게 아니잖니? 그냥 엄마가 살면서 힘들었던 얘기들 속의 폭력성과 차별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말하고자 한 것인데... 뭐 정치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 않니?"
"엄마, 책을 쓰는 건 의견을 내놓는 거고 결국 생각을 교류하는 일이잖아요. 그건 정치와도 같죠. 전 엄마 생각이 옳다고 봐요. 차별은 옳지 않고 그런 문화도 개선돼야죠. 그냥 엄마를 믿으세요. 확신을 가지세요."
그날처럼 쌈밥이 맛 난적 없었다.
"아들! 고맙구나. 엄마를 믿어줘서. 엄마가 확신을 더 확실하게 가져야겠구나! 미움받을 용기와 그늘에 숨겨진 사실을 드러내는 용기를 말이다."
아들이 보내준 사진: 시카고 앞 미시간 호
아들이 보내준 사진: John Timothy Stone Chapel
아들이 보내준 사진: 밀레니엄 파크
아들이 보내준 사진: 2015년 여름 함께 구경했던 공원에 다시 갔구나..
아들이 보내준 사진: 하늘이 좋다며 보낸 사진
다시 확신을 가지며...
아들이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며 사랑과 고마움을 전한다. 타국에서 공부하는 일이 힘들겠지만 아들! 확신을 가지고 꿈을 펼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