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시간 6: 난 막둥이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추석 전 아들방을 치웠다. 유학을 간지 한 달이 넘도록 방을 치우지 않았다. 그냥 가끔 아들방을 열고 쳐다봤다. 침대와 피아노가 전부인 아들방엔 아들이 좋아해 사다 놓은 작은 물품들이 침대 밑과 피아노 위, 작은 탁자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침대 위에 놓여있는 정육면체 쿠션들과 피아노 위에 놓여있는 게임 피규어들, 탁에 옆에 놓인 헤드셋과 작은 포터블 잭들을 쳐다보며 결정을 해야 했다. 버릴 것인지 붙박이 장 안에 놓아둘 것인지...
남편과 종이상자를 들고 아들방을 치웠다. 여러 개의 헤드셋을 박스에 넣어 옷장 안에 넣고 컴퓨터 조립과 납땜 도구들은 신발장 한편에 놓았다. 어수선했던 방이 단색의 심심한 방으로 바뀌었다. 작은 쿠션도, 피규어도 쓰레기봉투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자라며 만들어놓은 흔적들을 정리하며 '사실 내 인생의 흔적을 정리한다' 생각한다.
토요일 오전 페이스톡 알람이 떴다. 모닝커피와 사과를 먹다 전화를 받으니 아들이 화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카고 시간으로 저녁 7시경이었는데 어둑한 뒷배경 속에 아들이 환한 얼굴로 잘 계시냐 물었다. 좀처럼 먼저 전화를 하지 않는 아들인데 "과제하던 건물에 화재경보가 떠 잠시 건물 밖 벤치에 나와있어요"라며 생글거렸다. "어찌 지내니?" 하고 물으니 "몇 과목 중간고사를 무난히 봤어요. 뭐 과제도 하고요. 한국 학생들 모임도 나가서 만났고요. 엄마 책도 받아서 조금 읽었어요" 했다.
"너는 책 금방 보잖아. 다 읽고도 남을 시간인데. 일 주 전에 받았다며."
"한 단락씩 끊어 있고 있어요. 뭐 급한 것도 없고요."
그렇게 책 읽기와 독후감 쓰기가 싫다 하던 어린 아들이 스쳤다. 쓰기 싫어하던 아들이 책상에 엎드려 울던 모습도, 방바닥에 엎어져 머리를 바닥에 대고는 눈물을 떨구며 연필을 부르르 잡고 꾸욱 꾸욱 눌러쓰던 아들 모습이 핸드폰 화면 속 아들과 오버랩됐다. 춥지 않으냐 물으니 춥지는 않다 하고 카페테리아에 김밥도 나오고 라면 같은 국수도 있으니 걱정 말라하며 날 안심시켰다.
아들과 십여분 통화를 끝내며 할아버지, 할머니가 궁금해하시니 안부전화를 하렴 했다. 양가 모든 부모님이 책으로 인해 약간은 불편해하신다 전하니 아들이 웃으며 "그럴 수 있죠" 했다. 아들과 페이스톡을 하니 마음이 넉넉해졌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 통화할까 싶게 통화를 했는데 개강을 하고 내가 바빠져 지금은 십여일 지나서야 통화를 하나 했는데 아들이 전화를 주다니... 부모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남편이 두어 시간 후 천안 시아버님께 안부 인사겸 상의할 일이 있어 전화를 드리니 시아버님이 손자와 페이스톡을 했다며 그리 자랑을 하시더란다. 아들이 나의 마음도, 조부의 마음도 함께 헤아려 전화를 했지 싶다.
아들방을 치웠고 아들방은 비었다. 그렇지만 아들이 행동으로 내 마음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니 참 고마울 뿐이다. 아들이 남편을 닮았다.
천하장사 막둥이 2009년 9월 27일 일요일
막둥이는 씨름에서도 맨날 이기고, 나무도 들고, 힘세다고 덜렁거리다가
친구들도 없어져서 고양으로 가는데, 쉬고 있다가
머릿니를 죽이려고 집체만 한 돌을 집어던졌다.
난 막둥이가 웃기다. 그 조그만 걸 가지고 집체만 한 돌을 던졌을까?
머릿니는 돌을 맞고도 죽지 않았다.
막둥이는 지혜가 없어서 작은 머릿니도 죽이지 못한다.
난 막둥이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쓴 천하장사 막둥이 독후감을 보며 막둥이는 지혜가 없다며 막둥이처럼 되지 않겠다 하였는데.. 아들은 너무도 지혜롭게 조부모도, 부모도 사랑하는 행동을 하였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