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에 낳은 둘째는 물놀이를 좋아했다. 신생아 전용 목욕 대야에 따스한 물을 받아놓고 아들을 뉘이면 눈을 빛내며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따스하게 흐르는 물 알갱이를 느끼듯 허우적대고 방실댔다. 동생을 씻긴다며 거즈 손수건에 물을 묻혀 동생의 몸통을 문지르던 딸은 작은 거북처럼 버둥거리는 동생을 보곤 “엄마 괜찮은 거야? 닦아도 돼?” 하며 놀란 사슴 같은 눈망울로 나를 보던 기억이 아련하다.
딸이 6살, 아들이 3개월 즈음부터 우리 셋은 함께 목욕을 했다. 가족 모두가 들어가기엔 욕조가 좁았고 남편이 함께 하기엔 딸이 쑤욱 자라버렸다. 딸이 신생아 때부터 좋아하던 거북 장난감은 목욕탕 바닥을 특유의 멜로디와 함께 기어 다녔는데, 배구공을 반으로 잘라 엎어 논 것 같은 엄마 거북은 늘 새끼 거북들을 달고 다녔다. 엄마에 연결된 새끼 거북은 어미와 연결된 줄을 당기면 엄마를 따라 살곰살곰 따라다녔다. 노란 머리와 큰 초록 등의 거북 가족은 단순한 멜로디를 따라 이미터 가량을 사랑스럽게 기어 다녔다. 딸이 뒤집기를 할 때부터 아장아장 걸을 때까지 거실과 안방을 누비던 거북 가족은 아들이 태어나고선 욕실 바닥을 기어 다녔다. 딸이 6살이라 더 이상 거북 가족과 놀일이 없었고 딸과 아들이 함께 하는 목욕탕에서 거북 가족을 풀어주면 딸의 어린 기억과 아들의 새 기억이 마주하여 새로운 장난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거북 가족이 목욕탕 바닥을 누비며 띵~잉, 동~옹, 띠이~잉 노래하는 소리와 플라스틱 바퀴가 욕실 바닥과 부딪혀 삐걱이는 소리는 욕실에 가득 찬 수증기 속을 떠돌며 두 아이의 물장난 소리와 한참을 뒤섞였다.
두 아이 손바닥이 조물조물 하얗게 불어나면 목욕 정리를 하였다. "자 이제 고래가 숨 쉰다고 나가라네". 목욕을 끝낼 때마다 나는 작은 바가지를 엎어 물속 풍선을 만들었고 물속에 들어간 갇힌 공기는 물 밖으로 솟구치며 '푸웅, 쑝오옹~, 풍우웅' 소리를 만들었다. 내가 천연덕스럽게 “고래가 숨 쉬네, 여긴 좁아서 고래 숨쉬기 어려우니 이제 나가야지”하며 말도 안 되는 얘기에도 딸은 이미 알고 있는 고래 숨 놀이를 동생에게 설명했다. 딸은 고래 숨을 만들려 언제나 내 손 위를 함께 눌렀고 아들은 내 가슴에 안겨 물이 내는 소리에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실룩거리며 방실댔다. 바가지 위에 아들을 앉혀 공기를 내보내면 방귀 같은 공기 소리에 팔다리를 새끼 거북처럼 내두르던 모습에 딸과 내가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모른다. 고래가 다섯 번 숨을 쉰 후 목욕은 끝났다.
딸과 아들이 바가지를 누를 힘이 생기고, 아들이 오리를 눌러 냅다 물에 던지기까지 참 오랜 시간, 딸과 아들은 겨울엔 욕실이 온통 뿌연 수증기가 찰 때까지 놀고, 여름이면 거북 가족의 노랫소리에 작은 물총으로 서로 물을 뿌리며 더위를 피해 놀았다.
목욕탕 놀이가 끝나면 두 아인 투정 없이 잤다. 그걸 아는 남편은 애들을 재우기 위해서라도 얼른 목욕탕 놀이를 하라 했다. 아들이 4살 되던 때까지 함께 목욕을 했으니 두 아이는 크는 내내 다툼이 없었고, 서로 사이가 좋아 어릴 적 함께 목욕을 하며 즐겁게 지냈던 무의식의 세계가 연결되어 그런 게 아닌가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따스하던 목욕탕 온기는 집안을 가득 채우고 곤히 잠자는 아이들의 가슴속에 행복주머니처럼 대롱대롱 매달리지 않았나 한다. 집안의 가장 작은 공간인 목욕탕이 따스한 수증기를 뿜어내며 온 집안에 '물방울 행복주머니'를 곳곳에 맺어 주었음을 그땐 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