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닦아, 등? 내가~!”

목욕은 사랑의 대화 2

by 정루시아


복도식 아파트에서 3년을 살고, 33평 아파트로 이사를 가니 욕실이 두 개였다. 하나는 아이용으로, 하나는 부부용으로 쓰도록 안방에 욕실이 달려있어, ‘아파트야말로 부부 중심 삶의 전형을 보여 주는구나’생각했다. 집은 넓어졌지만 정작 부부욕실은 딸과 나의 전용 욕실이 되었다. 남편이 레지던트 2년 차라 딸은 아빠를 거의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이틀을 오면 많이 오는 것이니 안방과 안방에 딸려있는 부부 욕실은 딸과 나의 공간이 되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회색같은 생활이었다. 7시 30분 딸을 아파트 앞동의 아이 돌봄 집에 맡기고 8시까지 출근을 하고, 저녁 7시 30분에 딸을 찾는 생활은 백미터를 전력으로 달리는 것 같은 힘든 생활이었다. 잠들어 일어나기 싫어하는 딸을 깨워 눈도 안떠진 딸을 돌봄 집에 맡기고 직장에 출근하면 하루종일 밀려오는 일로 정신없었다. 야근을 하던 직장동료의 눈치를 보며 7시에 퇴근하여 딸을 만나는 일은 숨이찼다. 돌봄집 현관에서 딸 이름을 부르면 딸은 꽹한 눈동자를 빛내며 달려와 안겼다. 딸의 간식과 옷가지가 든 가방을 메고 가슴가득 딸을 안고는 늘 놀이터를 들렸다. 내가 너무 지쳐 그냥 집에 가고 싶어도 늘 놀이터를 들려 미끄럼을 타게 했다. 하루 종일 돌봄 집에 있던 터라 자유롭게 밖에서 놀고 싶은 그 바람은 당연하고 소중했다. 해가 길어지면 집에 들려 모래놀이 장난감을 들고 나갔으며 해가 짧으면 저녁식사를 미루고 놀이터를 먼저 찾았다. 모래놀이, 그네 타기, 미끄럼 놀이를 했다. "그만 들어가자"해도 딸이 들은 척을 안 하면 난 그저 벤치에 앉아 딸을 바라봤다. 딸은 놀다가도 어깨가 쳐진 나를 보면 자연스레 놀이를 정리하고는 내게 왔고 우린 늦은 저녁을 먹고 목욕을 했다.


딸은 낮에 돌봄 선생님에게 배운 노래를 하기도 하고 "오늘 뭐했어? 딸!" 하고 내가 물으면 단어 토막을 연결해 말을 했다. 내가 샤워볼에 거품을 한 가득 만들어 팔과 다리, 몸통을 문질러 주면 복숭아 빛 볼에 웃음을 한 가득 먹고 좋아했다. 딸은 노란 오리와 놀다가 플라스틱 공을 물에 띄우고 모래놀이 국자와 삽을 이용해 물장난을 쳤다. 딸이 물속에서 제법 잘 놀고 팔다리 균형이 잡히고선 내가 딸의 팔을 잡고 닦으며 오른쪽 팔, 왼 팔 하면 그 말들을 따라 하며 팔과 다리를 순서대로 내주곤 신나 했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날인가 그 작은 손으로 샤워볼을 받아 들곤 내게 물었다. “엄마! 닦아, 등? 내가~!”하더니 살금살금 내 등에 가선 간지럼이 나게 등을 조물조물 닦았다. 딸이 “등~, 모오옥, 파~알~” 하며 내가 하듯 엉거주춤 내 몸을 닦아 줄 때 참 행복했다. 남편이 전문의 과정으로 집에 들어오지 않는 그 많은 날, 딸은 나와 목욕을 하며 서로 등을 닦아주었다. 그때는 그 위로가 얼마나 큰 위로였지는 알지 못했다. 목욕이 끝난 후 우린 블록을 조금 하고 '패트와 매트'를 보곤 침대에서 그림책을 봤다. 딸이 하품을 할 때까지 책을 읽었으니 하루하루가 모두 같아 보이던 회색시절 딸은 차곡차곡 성장의 나이테를 챙기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녀를 키운다고 생각하며 ‘내가 널 어찌 키웠는데’ 한다. 난 딸을 보살피긴 했지만 그 아인 내 삶의 가장 외롭고 힘든 날들을 지켜봐 주고 함께하며 내 등을 닦고 위로해 주었다. 자식 손에 위로받는 시간을 미래로 미루지 않았음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른다. 딸이 할 효도는 일찌감치 나의 젊은 시절, 직장생활과 남편의 부재 속에 아이를 키우는 그 시절 다 받았음을 요즘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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