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은 여행

코로나-19 시국에 미국 여행

코로나-19 시국에 미국 여행 1: 딸과 출발

by 정루시아

주말도 없이 2년간 직장생활을 했던 딸이 10월 중순에 사표를 내고 막 휴식에 들어간 상태였다. 11월 중순 딸에게 전화를 걸어 "너도 동생 보러 갈래?" 물었더니 "미국요? 가 볼까요~?" 하며 흔쾌히 가겠단다. 11월 중순 비행 편을 예약하니 남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 가려고? 이 시국에?" 했다. 출발 3주 전에 숙소를 예약했다. 준비할게 많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여태껏 항공편과 숙소만 정해지면 여행의 반은 끝났다 생각하며 살았으니 말이다. 막상 여행 일주일 전 무엇이 필요한지 챙겨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1. 비행 티켓

2. 숙소 예약

3. ESTA 비자 신청

4. 백신 접종 증명서

5. COVID-19 음성 확인서(종이 또는 전자 사본)

6. 미국 질병통제센터 요구 서약서

7. 로스앤젤레스 Traveler Form 작성

8. 국제 운전면허증

9. 렌터카 예약

10. 달러 환전

11. 유심칩(데이터 무제한 유심칩)

12. 여행자보험


미국 입국 시 필요한 서류는 ESTA 비자 신청, 백신 접종 증명서, COVID-19 음성 확인서(종이 또는 전자 사본), 미국 질병통제센터 요구 서약서, 로스앤젤레스 Traveler Form 등이었다. 2015년 미국을 가던 때는 없었던 서류들을 준비하고 작성해야 했다. 사실 준비해야 할 목록을 만들고 준비한 게 아니라 항공 예약 후 항공사가 보내준 탑승자 준비 서류 이메일을 보고 준비해야 함을 알았다. 영어문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 서류들을 작성할까 싶으니 한숨이 나왔다. 종강을 하고, 성적을 내고, 학생상담을 기록하니 딱 출발 삼 일 전에 학교 일이 정리됐다. 숨이 찼다. 출발 이틀 전 코로나-19 PCR 검사를 하고 딸과 짐을 쌌다. 큰 가방에 옷과 화장품, 책을 넣고 작은 가방에 아들이 먹고 싶다는 컵라면과 한국 과자를 넣었다. 아들에게 "뭐 필요한 것 없니?" 하고 물었을 때 아들은 싱글거리며 "김치 왕뚜껑 컵라면요" 하길래 웃음이 나왔다. 오후 8시 비행기라 오전에 PCR 음성 확인서를 찾아 남편이 환전한 달러와 데이터 무제한 유심칩을 받아 들고 공항에 출발했다.


남편은 딸과 나를 공항에 내려놓고 해지기 전에 집에 들어간다며 쌩하고 떠났다. 공항은 한산했다. 너무도 한산했다. 내 평생 이렇게 한산한 공항을 본 적이 없다. 아들이 유학 가던 2021년 8월만 해도 출국하려는 유학생과 부모들로 붐볐는데 겨울방학이 짧아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여행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실감했다. 사람들이 거의 없는 면세점을 한가로이 걷다 에어 라이드 차량(air ride: 무인 승객 운반)과 AI 카트 로봇(캐리어 운반 기기), 에어스타(air star: AI 승객 도우미)를 만났다. 낯선 기기들의 기능을 보니 노약자 이동도움 서비스, 짐 운반 서비스, 안내 서비스 등이었다. 딸과 함께 에어스타에 말을 붙였다. "칼 라운지가 어디 있니?"하고 물었더니 얼마나 친절하게 대답을 하던지... 웃음이 났다. 교양수업에 참고하려 동영상을 찍었다. 검정 얼굴에 눈을 깜박이는 모습이 귀여웠다. 미래 세대는 이런 기기들과 함께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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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라이드 차량(air ride: 무인 승객 운반)과 AI 카트 로봇(캐리어 운반 기기), 에어스타(air star: AI 승객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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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나는 에어스타(AI 도우미)가 알려준 길로 칼 라운지를 달팽이처럼 걸어갔다. 한산한 대한항공 칼 라운지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멍하니 사람들을 보니 피곤이 밀려왔다.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었지만 코로나-19가 전 지구를 감염시킨 시국이라 그런지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설렘을 찾을 수 없었다. 들고 온 책(떠도는 땅, 김숨 작)을 읽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야 여행자 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사실이 생각났다. 나이 들어보니 잊어버리는 일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음을 자꾸 배운다. 화도 안 난다. 석연찮은 감정이 마음속에 있는데 그 정체를 몰라 찜찜할 뿐이다. 요즈음은 무엇을 해야 하나?, 뭘 빠뜨렸나?, 뭘 잊어버렸나? 하며 스스로 자꾸 되묻는다. 당연시하던 것이 당연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있다. 당연한, 분명한, 확실한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에 들어서고 있다. 인간이 자연으로 귀속되려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머리를 믿지 말아야 할 때가 됐다. 나이 듦도 적응하고 노력해야 한다. 늙음은 자랑이 될 수 없으나 적응하고 노력하는 늙음은 최소한 존중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이 든 사람의 여유와 완숙, 지혜와 포용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한국으로 돌아와 메모장을 챙겼다.


비행기를 타니 승객은 반 정도였다. 세명 앉는 자리에 딸과 둘이 앉아 번갈아 가며 다리를 폈다. 딸은 배시시 웃으며 내게 두 자리를 모두 사용하시라 했다. 본인은 아직 젊으니 대충 구겨져 있겠단다. 언제 이리 자랐나 싶다. "수술한 무릎은 비행기를 탈 때마다 힘들게 한다"라고 지나가듯 한 말을 딸은 기억창고에 잘 저장해 두었다 꺼내서는 나를 배려했다. 책을 조금 읽다 장시간 운전을 위해 잠을 잤다. 아들은 미국에서 운전면허를 따지 않았으니 운전이 어렵고 딸은 일 년 넘게 시내 운전만 하였기에 LA에서 샌디에고로 가는 고속도로 운전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될 터였다.


공항에 도착해 출입국 심사를 받을 때 "LA에 왜 왔냐?" 하여 "여행도 하고 아들을 만나러 왔다" 하니 "아들이 어디서 공부하는데" 하고 물었다. "시카고에서 공부하고 있다' 하니 출입국 담당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런데 왜 여길 왔어" 하기에 "시카고는 너무 춥지 않냐. 아들과 따스한 이곳에서 지낼 예정인데" 하고 대답하니 담당자도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도장을 찍어줬다. 그들도 다 아는 거다. 미국 내륙의 추위를 말이다.


짐을 찾아 나가니 아들은 아침, 점심도 굶어가며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캐리어와 등에 짊어진 가방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워진 듯했다. 열 시간의 힘든 비행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 사랑은 그런 것 같다. 따져지지가 않는 것 말이다. 4개월 만에 만난 아들은 더 듬직해져 있었다. 아들은 딸과 나의 무거운 캐리어 가방을 챙기며 성큼성큼 렌터카 업체로 가는 리무진으로 우릴 안내했다.


빌린 SUV 차량에 짐을 넣고 샌디에고 숙소로 오후 4시 20분경 출발했다. 아들은 보조 운전석에서 구글맵을 확인하며 도로를 안내했고 딸은 뒷좌석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길을 바라봤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차들이 가득했다. 퇴근시간이라 왕복 차선 12개 라인 도로엔 차들이 거대한 물결처럼 머물다 움직였다. 딸과 아들은 오래간만에 만나 종알종알 재잘거렸다. 수많은 차들에 대해, 각자의 생활에 대해 물방울처럼 떠드는 소리는 음악 같았다. 도로 정체로 LA를 빠져나가지도 못한 채 해가 지고 있었다. 옅은 선홍색 노을이 가득한 도로에 차들의 붉은 후미등이 빛나니 크리스마스 전구가 켜진 축제장소에 온 것 같았다. 낯선 나라, 낯선 도로, 낯선 공간이지만 두 아이들과 있으니 가슴이 따스했다. 먼 길을 날아와 딸과 아들이 종알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했는지... 마스크를 벗고 소리 내 웃고 떠드는 얘들이 사랑스러웠다. 노을과 자동차 붉은 후미등 불빛에 반사된 두 아이들의 얼굴이 석류 알갱이처럼 빛났다.


시차 적응할 시간도 없이 바로 운전대를 잡으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아들은 "엄마 천천히 가요. 급한 거 없잖아요" 하며 내가 실수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위로의 말을 건넸다. 10여분 헤매다 제 고속도로를 들어서니 어깨가 뻐근했다. 샌디에고 숙소에 도착하고선 온몸에 기운이 빠졌다. 긴 길을 무사히 도착했으니 말이다. 짐을 옮기고 딸에게 차 키를 넘겼다. 인근 마켓에서 물, 음료, 과일, 빵을 사고 차를 무료 파킹이던 유료 파킹이던 주차하고 왔으면 한다 하니 딸과 아들은 한껏 긴장을 하며 나갔다. 물을 마시고 소파에 앉아 남편에게 카톡을 했다. 잘 도착했다고 걱정하지 말고 서로 깨어 있는 시간에 페이스톡을 하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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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들이 장을 봐 오고 수다스럽게 장 본 것을 냉장고에 챙겨 넣고 왕뚜껑 컵라면을 끓여 먹였다. 김치 왕뚜껑을 사 오라 했지만 그냥 왕뚜껑을 준비해 간 우리에게 아들은 김치 왕뚜껑은 아마존에서 살 수 없다나? 원래 살던 우리 집인양 라면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여행의 반이 지나간 듯했다. 며칠 지낼 샌디에고에 막 도착했을 뿐인데 일주일이 지난 것 같았다. 긴 비행과 운전으로 몸은 돌처럼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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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에 머물던 숙소: 지중해 느낌의 장식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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