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은 여행

샌디에고 발보아 공원과 씨포트 주변을 걷다가

코로나-19 시국에 미국 여행 2: 홈리스!!

by 정루시아

LA이 공항에 도착해 렌터카에 짐을 싣고 운전을 막 시작해 한 블록을 지날 때였다. 때에 찌든 옷을 여러 겹 걸친 사람이 눈에 들어왔고 모퉁이를 돌았을 때 초라한 일인용 텐트 서너 개가 건물 모퉁이에 있었다. 뭔가 이상했지만 해가 지고 있어 길을 재촉했다.


샌디에고 숙소에 도착한 다음날 브런치를 먹고 발보아 공원을 향했다. 딸이 운전면허증을 딴 이후 아들과 나는 딸이 운전하는 차를 처음 타본 터라 세 사람 모두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목적지를 찾아갔다. 발보아 공원은 사람과 차량으로 붐벼 딸은 30분 넘게 세 개의 주차장을 헤맨 끝에 주차를 했다. 딸이 결혼 후 운전을 시작했으니 운전하는 딸의 차를 탄 적이 없었다. 무던한 성격이지만 운전대를 잡은 딸은 초보자가 대부분 그렇듯 핸들을 조작하느라 애를 썼다. 그런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 운전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지. 낯선 미국에서 모르는 길을 운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경험해 봐야 하지' 했다. 무사히 주차를 한 딸에게 나와 아들은 번갈아 칭찬을 했다.


우리 모두 손소독제를 한 움큼 바르고 차에서 내렸다. 공원을 천천히 걸으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미국인들은 좀체로 길가는 사람들을 주시하며 쳐다보지 않는데 왜 그렇지?' 잠시 의문이 들었다가 '아 모자 때문이구나!' 싶었다. 여행 준비를 하며 일주일 전 베레모 세 개를 샀더랬다. 셋이 빨간, 초록, 파란 베레모를 비스듬히 쓰고 있으니 눈에 확 띄었겠구나 싶었다. 우리도 마주 보며 웃었다.


아침에 발보아 공원에 오기 전 베레모 세 개를 여행가방에서 꺼내니 아들이 배시시 웃었다.

"엄마가 함께 쓰려고 사 왔어. 어떠니?"

"야 이거 우리 쓰고 나가면 완전 신호등이겠지? 눈에 확 띄겠어. 그렇지?" 한국에서 짐을 쌀 때 딸이 신호등 모자라 했는데 딸은 목소리에 장난기를 뭉쳐 동생에게 던지듯 말했다.

"그러겠는데요." 아들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쓰기 싫어? 쓰기 싫으면 엄마만 쓰고."

"뭐 어때요. 써요. 서로 찾느라 헤맬 일은 없겠어요." 딸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 오셨는데. 써야죠." 아들도 파란색 베레모를 집어 들고 맞장구를 쳤다.

"추억 별거 없어. 좀 유별나다 싶어도 어떠니? 샌디에고 신호등 되어보자."

"아빠도 오셔서 주황색 모자를 썼으면 정말 재밌을 텐데. 아빠가 못 오셔서 아쉽네요."아들이 아빠를 소환했다.


별것 아닌 것을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이 여행의 핵심이다. 함께 걷던지, 함께 먹던지, 함께 입던지, 함께 추억을 소환하던지 말이다.


공원을 한참 돌아다니다 샌디에고 미술관(The San Diego Museum of Art)에 들어갔다. 규모가 크지 않은 미술관이지만 18, 19세기 유럽, 미국 작품과 아시아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천천히 걸으며 피카소, 모네, 드가, 바스티다, 마그리트 작품을 발견하곤 사진을 찍었다. 아들이 "이건 모네 작품이 아닌 것 같은데요?" 하기에 내가 "이건 초기 작품이겠지. 그러니 빛과 감정보다는 사물에 주의해서 그림을 그렸겠지." 했다. 아들이 작품 연도를 보고는 "그러네요. 초기 작품이네요." 많은 관람자들이 조용히 산책하듯 걸으며 감상을 하는 모습이 좋았다. 인생을 달관한 듯한 노년의 사람들, 여유로운 미소를 품은 중년의 사람들, 젊은 학생들이지만 차분이 미술품을 관람하는 모습은 한국 미술관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이들을 키울 때 대전 시립미술관을 자주 갔다. 미술관에 새로운 전시가 열리면 들렀다. 아들은 "엄마 난 보기 싫어요. 왜 봐야 해요" 하며 투정을 부렸다. 딸은 언제나 미술 관람을 좋아했다. 성향이 다른 두 아이지만 어찌하겠는가? 아들을 아이스크림으로 유혹하며 그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전시가 없으면 미술관 옆 공원에서 뛰어놀았다. 인라인 스케이트, 자전거, 배드민턴, 축구, 연날리기 등 온 가족이 함께 놀았다. 그 시절 미술관을 가면 항상 아이들 소리가 났다. 정작 나는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미술관을 간 적이 없었다. 가족 모두가 공원을 나가 김밥을 먹거나 과일을 까먹거나 엄마, 아빠와 함께 산책과 놀이를 한 기억이 없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고 부모는 돈 벌기 바쁜 시대였다. 돈 벌기 바쁜 부모가 돈을 벌어 우리 세대에 미술관, 과학관, 수목원, 도서관을 만들어 줬는데 불쑥 샌디에고 미술관에서 나이 든 미국인들이 미술작품을 관람하는 모습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지나가듯 말했다. "엄마! 여기 미술관에도 유명한 사람들의 작품이 걸려있네요. 이름만 들어도 아는 사람들의 작품이 있다니 조금 놀랍네요." "예술품도 자본의 흐름과 함께 머무를 곳을 찾으니 당연히 근현대 자본을 따라 유럽 유명 작품이 미국으로 흘러들어왔겠지. 자연스러운 궤적이지. 샌디에고 역사가 어떤지는 몰라도 이 도시의 느낌을 보렴. 잘 갖춰진 도로와 집들, 세련된 공원을 보면 유럽인의 느낌을 미국식으로 재해석해서 놓았는데 당연히 미술품도 따라 들어왔겠지." 딸이 생글거리며 "야 너는 옛날에 그림 관람 죽도록 싫어하더니 많이 컸다." 했고 아들은 "그런가?" 하며 웃었다.


그래서일까? 문득 미국인들, 선진국이라는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런 문화를 너나없이 흔하디 흔하게 누리며 살았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미술관 곳곳에 차분이 서 있는 노인의 모습이 그들의 어린 시절 모습과 겹쳐 보였다. 부모 손을 잡고 미술관을 어려서부터 온 그들의 추억과 시간이 미술관 속에 꽉 채워진 듯했다. 우리 세대가 이제 막 시작한 관람의 역사를 그들은 이미 몇 세대를 통해 학습하고 역사를 만들고 있음을 생각하니 여러 감정이 들었다. 내가 부모님과 함께 이런 문화시설을 함께 하지 못한 경험의 부재를 생각할 때 우리 아이들은 미술관의 내용, 그 알맹이를 품평하니 나와 아이들과의 간극도 이미 발생했음을 느꼈다.


미술관을 천천히 이동할 때 관리인이 우릴 보며 "모자가 참 멋지다" 칭찬했다. 딸과 아들은 반갑게 "고마워요"라고 여유롭게 대답했다. 미국인의 여유와 유머를 보며 부러워하다 우리 후세대들도 그들처럼 유머와 여유를 한가득 갖게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문화를 누리고 느낀 아이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창조해 가리라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아이들의 가능성이 더 큼을 확신하며 미술관을 나왔다.


미국 내 오미크론 환자가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지만 미국인들은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조심스러움과 함께 피로가 몰려왔다. 해 지기 전 숙소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저녁을 했다. 아들이 스테이크를 하겠다 나섰고 둘이 이렇게 하는 거야, 저렇게 하는 거야 하며 저녁상을 차렸다. 이국의 빌린 집에서 딸과 아들이 정성껏 만든 스테이크를 먹다니! 행복한 일이다.


이튿날 씨포트 빌리지를 찾아갔다. 부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람 부는 해변을 걸으니 시원했다. 쌀쌀한데 시원했고 햇볕이 따가운데 따스했다. 그런데 길을 걷다 몇 겹의 옷을 잔뜩 껴입고 소소한 짐 뭉치를 옆에 놓아둔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전에 가랑비가 와서 그랬는지 때 뭍은 옷 색깔은 더 짙고 사람은 추워 보였다. 비 맞은 생쥐를 몇십 배 확대한 것 같았다. 오후 한 시 가량 되니 해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긴 길을 걷는 동안 노숙인들을 마주해야 했다. 한껏 잘 차려입은 여행객, 현지인, 건장한 체구의 조깅족 속에 홈리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나갔다.


출렁이는 바다가, 거대한 전함과 배들이, 깔끔하게 정비된 부두가,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햇살을 받으며 모두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찬란한 항구 속에 빛을 빨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어 순간 마음이 차가워졌다.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이란 나라에서 홈리스를 이리 쉽게 볼 것이라 예상치 못했기에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이들은 어떤 시간을 떠돌다 바람 부는 이곳 부두의 한 귀퉁이까지 뭉쳐진 잡동산이와 함께 다다른 것인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발보아 공원
모네와 피카소

모네: Haystacks at chailly (1865), The church at Varegeville, Morning(1882)

피카소:Portrait of Jacqueline with a Blue Ribbon(1959)

마그리트와 마티즈

마그리트: The Shadows(1966)

마티즈: Bouquet(1916-1917)

바스티다와 드가

바스티다: Maria at La Granja(1907)

드가: The Ballerina (1876)

모자를 쓰고 걸으며: 아들과 나, 딸과 아들...


노숙인(露宿人) 또는 홈리스(영어: homeless)의 사전적 의미: "이슬을 맞으며 자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주로 경제적 빈곤 등의 이유로 정해진 일정한 주거 없이 공원, 길거리, 지하철역, 대합실, 도서관 등을 거처로 삼는, 도시에서 생활환경이 나쁜 상태의 사람을 말한다. 노숙자라고도 한다.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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