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은 여행

피닉스의 파파고 공원을 둘러보고

코로나-19 시국에 미국 여행 3:불사조 도시에서 삼겹살을 먹으며

by 정루시아

샌디에이고서 피닉스로 향했다. 도시를 벗어나 산악길로 들어서니 안개가 자욱했다. 심한 안개를 뚫고 30여분 산을 넘으니 안개는 고사하고 햇살이 쨍쨍했다. 이럴 수가! 보조 운전석에 앉은 아들이 창문을 열고는 "엄마 따스해요. 날이 너무 좋네요" 했고 딸은 "야! 히터 꺼도 되겠다. 조금 있으면 덥겠다" 했다. 날이 이렇게 따스해도 되나 싶게 화창하고 좋았다. 작은 산맥 하나 지나왔는데 날씨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유마(YUMA)에 들러 준비한 샌드위치를 먹었다. 다섯 시간 거리라 피곤하면 주유소에 들려 주유를 하고 커피를 테이크 아웃했다. 길이 단조로우니 마음껏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크루즈 기능을 사용하면 미국에서의 고속도로 운전은 쉽다. 70%가 산인 우리네 운전과는 180도 다른 운전이다. 가족과 함께 자연의 광대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겐 미국만 한 나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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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 운전하고 쉬기를 반복하여 오후 4시경 호텔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몰라도 나는 너무 피곤했다. 호텔 앞에서 딸에게 자동차 키를 넘겨줬다. 샌디에이고에 이틀 머무를 때도 시차 적응으로 고생했는데 피닉스에 일찍 도착하여 쉬니 몸이 풀렸다. 나이가 어릴 때는 시차 적응이라는 말이 왜 필요한지 모르게 어딜 가나 쉽게 적응했지만 점점 적응력이 떨어짐을 느낀다.


다음날 피닉스의 파파고 공원으로 향했다. 오전에 딸이 운전하는 차에서 깜박 졸았던듯하다. 차를 내리며 '이게 무슨 공원이지?' 했다. 작은 주차공간에 차를 내리니 시야에 작은 덤블들만 보였다. 멀리 파파고 공원의 명물인 구멍 뚫린 바위(hole in the rock)가 보였다. 길을 걸으며 발견한 사실은 주변에 소규모 주차장이 덤불 사이사이에 많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땅이 넓으니 거대한 주차장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지형을 활용해 작은 주차장을 곳곳에 만들어 놓아 공원에 도착했을 때 자연을 한껏 느끼도록 구성돼 있었다. 정감 있었다. 편리성보다는 공간의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기획자의 마음씀이 느껴졌다. 주차장이 사방에 분산되어 있어 사람들이 먹이를 찾아 길을 나선 개미들처럼 바위로 향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하늘은 파랗고 높았다. 우린 겨울옷을 입고 있었지만 반팔과 반바지, 노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섞여있는 동양인들만 마스크를 했는데 우리 셋의 KF 94 마스크는 눈에 확 띄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귀국하려면 출국 이틀 전 PCR 검사를 하여 다시 음성 확인서를 받아 들어야 하니 불편하고 갑갑해도 어찌할 수 없는 처지였다. 날이 더웠어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구멍 뚫린 바위에 오르고 나서 드넓은 평지를 바라보니 오아시스가 보였다. 일 년 내내 200ml의 비가 온다는 피닉스에 파란 하늘을 오롯이 담고 있는 호수를 보니 마음이 저절로 시원했다. 아이들과 발길을 돌려 오아시스를 찾아갔다. 낚시꾼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새들이 호수에 두둥실 떠다니며 자맥질하고 따스한 바람이 솔솔 불었다. 죽었던 불사조가 누워있다 떨쳐 일어설 곳이었다. 너무 아름답고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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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밴치에 앉아 하늘을 보고 호수를 보고 호수에 떠 있는 구름과 새를 봤다. 멍하니 하늘을 보다 새를 보곤 딸과 아들에게 점심 메뉴를 물었다.


"뭐 먹을래? 한국식당 있으면 찾아보고.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네?"

"엄마 여기에 한국식당이 두세 개 있네요. 삼겹살집이 있어요. 다른 것도 있고요. 뭐 드실래요?" 딸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식당들을 나와 아들에게 보여줬다.

"너희들 먹고 싶은 것 먹어. 한국식당이면 한국사람들이 주로 있겠지. 피닉스에 한국사람이 많이 사는지 모르겠다. 오늘 열었는지 확인하고. 한국 관광객 대상으로 음식점을 열었으면 이미 문 닫지 않았겠어? 확인해 보고 가야지."


2015년 연수기간 대도시의 한국식당을 가면 늘 주요 고객이 동양인, 한국 관광객이었다. 아주 가끔 외국인이 보였었다. 그 기억을 기준 삼으면 LA이도 아닌 피닉스에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살까 싶어 아들을 보고 말했다.


"너 스테이크 먹고 싶으면 스테이크 집을 찾아봐도 되는데. 여기 한국식당이 어떨지 모르겠네"

"삼겹살 먹고 싶어요. 여러 명이 함께 삼겹살을 먹어야 맛있잖아요. 친구들과는 불고기는 사 먹는데 삼겹살은 안 사 먹어서요." 아들 친구들은 중국계 미국인, 베트남 친구들이라 한식당을 가도 단품으로 나오는 요리를 시켜먹는다 했다.

"오늘 이곳 오픈했대요. 그럼 삼겹살 먹어요. 4개월간 삼겹살을 못 먹었다니. 엄마도 괜찮죠?" 딸이 아들이 원하는 메뉴를 듣고 내게 동의를 구했다.

"그럼 좋지. 너희들 오늘 맘껏 먹어보렴."


나도 이태리 유학시절 삼겹살을 혼자 사 먹은 적이 있나 생각하니 없었다. 한인식당조차 혼자 간 적이 없었다. 스파게티를 해 먹거나 김치를 담아 볶음밥을 하거나 가져간 미역을 불려 미역국을 끓여 먹었지만 혼자 삼겹살을 식당에서 사 먹은 적이 없으니 아들처럼 기숙사에 사는 입장에서는 먹고 싶어도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분명했다.


딸이 운전해 Seoul BBQ집을 찾아간 시간이 오후 1시 30분경이었다. 놀라웠다. 사람이 많아서 외국인이 반 이상이어서 놀랐다. 2015년 LA, 워싱톤, 뉴욕, 시카고, 샌프란 시스코, 토론토, 몬트리올 등 들리는 큰 도시마다 한인 식당을 찾았을 때 늘 느끼는 인상은 주 고객이 한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언어의 장벽처럼 음식 장벽이 높게 쌓여있어 이 맛난 음식을 한국인들만, 한국인과 혈연관계를 갖고 있는 교포 2, 3 세대들이 즐기는 모습만 보다 미국인들이 모여 앉아 젓가락질을 하며 삼겹살을 먹는 모습은 낯설었다. 그래서일까? 피닉스라는 도시의 한국식당에서 음식 장벽이 허물어져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속에서 작은 탄성이 나왔다.


미국 식당은 양이 많다. 그걸 알면서도 삼겹살 3인분에 김치볶음밥과 계란탕까지 시켰다. 어찌 다 먹을까 걱정됐지만 아들은 쉬지 않고 맛나게 먹었다. 딸이나 나나 대식가는 아나라 적당량 먹고 아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우리 주변에는 서툴게 젓가락을 들고 반찬을 먹는 손님들이 가득했다. 옆 테이블은 불고기와 삼겹살, 냉면, 잡채, 공기밥을 시켜 맛나게 먹고 있었다. 6명의 가족이 불판에서 이글거리는 불고기를 먹으며 흐뭇한 미소를 보내는 모습은 보는 내내 흐뭇했다.


음식은 별것 아닌듯해도 사람 몸에 들어가는 양식이다. 음식을 먹는 방법, 음식이 주는 건강적 믿음, 음식을 함께 나누는 즐거움, 음식을 준비하는 정성과 청결 등이 확보되지 않으면 음식에 대한 확신을 타국인들로부터 얻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K-pop과 K-food, K-culture가 부상한 시기라서 그런지 우리네 삼겹살 식당이 피닉스에선 잘 차려진 고급식당처럼 보였다. 식욕을 돋우는 기름 냄새와 함께 말이다. 음식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닌데 그 일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며 젊은 딸과 아들이 살아갈 세상은 다른 세상이 되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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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식당: Seoul B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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