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국에 미국 여행 5: 신성 뒤에 숨은 두려움은 아닌지..
세도나에서 오후 세 시경 모뉴먼트 벨리로 출발했다. 깊은 골짜기를 몇 번 돌고 나니 싸락 눈이 내렸다. 눈이 오니 더럭 겁이 났다. 스노체인을 준비했지만 미국에서 큰 눈이 오면 꼼작 없이 오도 가도 못하니 말이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빨리 목적지에 가는 수밖에... 끝없이 펼쳐진 직선도로를 내달렸다. 한 시간 반이 지났을까?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맑았다. 미국 대륙의 크기에 매번 놀랄 뿐이다.
날이 어두워서야 모뉴먼트 벨리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 후 방 앞에서 카드를 대니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들이 뛰어가 다른 방 키를 받아왔는 데 열어보니 사용 중인 방이었다. 아들이 다시 뛰어가 다른 방 키를 받아왔다. 일처리의 미숙함이 추위와 함께 허기로 다가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작은 실수들이 외국에선 우릴 당황하게 한다. 우리끼리 살 때는 모르지만 외국에 나가보면 한국인처럼 정확하고 빠른 일처리는 보기 힘들다. 그래서일까?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은 작은 실수를 포용하고 느긋하게 산다. 10여 년 전 선진국 사람들의 그런 태도가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미래의 어느 날 그들이 우릴 부러워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그런 세상이 온 듯하다. 주변이 깜깜 했다. 딸과 아들이 테이크 아웃해온 저녁을 먹고 각자 유튜브를 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 모두 피곤했다.
아침 9시경 짐을 정리해 모뉴먼트 벨리 비지팅 센터(visiting center)로 향했다. 2015년 4월 미국 연수기간 중 이곳 모뉴먼트 벨리를 와보긴 했지만 그때는 비지팅 센터에 오후 4시 40분에 도착해 사진만 찍었었다. 드넓은 대지에 높이 솟구쳐 오른 바위산들의 풍광은 압도적이었다. 그 당시 개인 차량으로 투어 신청을 하여 모뉴먼트 벨리 내부를 들어갈 수 있다는 소릴 들었으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와보리라 다짐했었다. 내가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한 시간이 너무 짧아 개인 자동차 투어는 이미 마감되어 있었기에 나바호 주민이 안내하는 투어를 했다.
순박하게 생긴 22살 나바호 청년이 우리 셋을 자신의 차량에 태우고 길을 나섰다. 한국인을 많이 가이드해본 경험이 있는 청년은 길을 나서며 간단한 당부를 했다. "상상력이 중요해요. 상상력을 갖고 설명을 들으시면 재미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상상하시면서 즐기세요." 당연한 말이다. 이 광대한 자연 앞에서 상상력이 없다면 드넓은 광대함과 높게 솟구친 바위산을 무엇으로 바라볼 것인가?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모뉴먼트 벨리는 상상 그 이상이다. 넓고 깊고 솟아오르고 무너지고 패인 공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절대 시간을 쓸림으로, 바위로, 모래로, 바람으로 말해 주기 때문이다. 지구의 종적 시간과 횡적 거대함을 그 자체로 보여주는 곳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그랬을까? 드넓은 광대함 속에 서 있는 바위산들을 보며 아름다움과 슬픔이 마음속에 교차되었다. 바람이 지나가며 한일, 비가 떨어지며 한일, 눈이 머무르며 한일, 햇볕이 쏟아지며 한일, 풀이 자라났다 시들며 한일, 수많은 동물들이 밟고 지나가며 한일들이 찰나처럼 지나가고 다가왔을 것을 생각하니 경외감이 들었다.
나바호 청년은 옆에 앉은 아들과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다 자기는 22살이라 말하였다. 아들보다 한 살 많았고 딸보다 네 살 아래였다. 청년은 나바호 국민이 코로나로 너무 많은 피해를 입고 힘든 시간을 보냈음을 슬프게 토로했다. 3천 명 이상 코로나로 생을 마감했다고 했을 때 우린 뭐라 대꾸하기 힘들었다. 그런 이유로 오랜 시간 관광객을 받을 수 없었다 말하는 청년은 그래도 자신의 정부(나바호 자치 정부)와 자신들을 대변하는 대통령(나바호 자치국 대통령)은 최선을 다해 국민을 지키고 있다 긍지를 갖고 말했다. 청년은 참 친절했다. 바위를 구경하는 장소에선 사진을 찍어 주겠다 나섰고 셋이 셀까만 찍다 남이 찍어준다니 멋쩍었다.
2시간을 넘게 함께 차를 타고 모뉴먼트 벨리의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청년은 눈과 비가 오면 차량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폭설과 폭우가 온다는 사실을 말할 때 모뉴먼트 벨리에 대한 경외심을 내비쳤다. 청년에겐 모뉴먼트 벨리는 조상들이 택한 신성한 공간이자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는 터전이자 후세에게 남겨줄 유산이기도 하니 경외심을 가질 만했다. 말을 너무 좋아해 40여 마리 말을 키운다는 나바호 청년은 우리에게 나바호족 언어와 나바호의 생활 특징을 말해주며 우리들에게 나바호의 자긍심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2시간의 여행이 끝나고 우린 커네브의 호텔로 길을 나섰다. 제법 큰 눈송이의 눈이 내렸다. 딸이 운전대를 잡았다. 딸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뒷좌석에 앉아 점점 눈이 덮여가는 광활한 지역을 지나며 나바호인들의 삶을 생각했다. 드넓은 대지를 누비며 살던 나바호인들이 왜 이곳 모뉴먼트 벨리를 중심으로 자치국을 만들었을까? 그들의 조상은 무엇 때문에 이곳을 선택했을까? 하고 말이다.
모뉴먼트 벨리는 자연의 광대함과 함께 시간의 무한함을 그 자체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러한 광대함과 무한함이 개인의 삶, 조직의 안정, 경제적 풍요를 담보하지 않을 터인데 왜 이들은 이 막막한 공간을 자신들의 울타리로 선택하였는지 궁금했다. 사실 나는 그들이 이 공간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선택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을까 한다. 숭고한 기가 흐르는 신성한 땅이라는 모뉴먼트 벨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신성한 공간은 대체로 인간에겐 척박한 공간이다. 광대함과 건조함은 인간에겐 살기 어려운 막막함과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일 년에 한두 번 찾아와 제를 지내고 조상과 미지의 신께 존재와 삶을 기도하는 장소라면 모르지만 그 공간이 일상의 삶이라니....나바호인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여행안내를 하는 젊은 청년에게 묻지 않았다. 조상들의 선택에 만족하는지 말이다.
조상들의 선택은 언제나 후대에 영향을 미친다. 크던 작던 역사의 수레바퀴에 흔적을 남긴다. 신성을 찾아 모여든 그들의 삶이 혹여 두려움에 의한 신성의 의탁은 아니었는지 묻고 싶었다. 변화하는 세계에 도전하기보다 수만 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절대 상징에의 믿음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친절한 22살 나바호 청년이 안내해준 모뉴먼트 벨리를 보고 나오며 문득 '인간이 두려움에 갇혀 사는 것보다 위험한 일은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