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은 여행

라스베이거스를 거닐며

코로나-19 시국에 미국 여행 7: 지인을 만나고

by 정루시아

불의 계곡을 둘러보고 라스베이거스로 들어서니 차들이 마구 달렸다. 어느 나라든 대도시 운전은 빠르고 거칠다.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람 간의 경쟁이 속도로 표현된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뒷좌석에 앉은 딸은 눈이 커졌고 운전 보조석에 앉은 아들도 내비게이션을 보며 긴장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삼겹살에 소주 마시면 어떨까?" 란 말에 두 아이들이 대찬성을 했다. 인근 삼겹살집(코리안 바비큐)을 우버 택시로 찾아갔다. 입구에서부터 놀랐다. 많은 미국인들이 삼겹살에 소주,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삼겹살, 계란탕, 갈비, 불고기를 연이어 주문했다. 두툼한 삼겹살, 잘 재워진 갈비, 불고기가 순식간에 불판에서 사라졌다. 소주가 어찌나 그리 달던지... 장시간 운전의 피곤이 가셨다.


다음날 저녁 라스베이거스에 살고 있는 지인을 만났다. 2014년 늦가을 그랜드 캐년 패키지여행 때 만난 분으로 막 가이드일을 시작한 상태였다. 난생처음으로 3박 4일 장기 가이드를 시작한 가이드님은 단박에 우리 가족과 정이 들었다. 이런 인연으로 미국 연수가 끝나는 2015년 여름 우리는 귀국 전 라스베이거스를 들러 가이드님을 뵈었고 가이드님은 2016년 한국에 오셔 군산 집에 놀러 와 인연을 계속 맺고 있었다.


작은 식당에서 5년 만에 만난 가이드님은 얼굴이 맑았다. 7년 전에도 맑았지만 더 맑아져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했더니 좋은 짝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단다. 미국 시민인 가이드님은 코로나로 가이드 일을 접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단다. 여자 친구 자랑에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니 딸이 생글거리며 "아저씨 정말 축하드려요"했고 가이드님은 "나도 축하해요. 결혼했다면서요" 하며 밝게 웃으셨다.


밥을 먹으며 가이드님은 담담하게 최근 상황을 말씀해주셨다. 코로나 지원금이 대대적으로 풀려 미국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고 가이드님은 아파트를 좋은 가격에 처분한 후 여자 친구 집으로 들어갔고 코로나로 여행업이 올 스톱되어 실직 상태가 되었지만 미국 정부의 후한 실업급여 덕분에 스트레스 없이 최근 새 사업을 시작하셨단다. 미국판 새옹지마랄까? 밝게 웃는 가이드님을 뵈며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코로나 대응 차이를 실감했다.


"일을 안 해요 사람들이. 무직으로 있어도 지원금이 잘 나오니 일할 필요가 있겠어요?" 저녁을 먹으며 전직 가이드님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서 홈리스가 많은 건가요? 2015년엔 많지 않았는데 여기도 그렇고 샌디에이고도 홈리스가 많더라고요." 로스엔젤리스, 샌디에이고를 거쳐 라스베이거스로 들어오며 본 모든 홈리스를 떠올리며 내가 말했다.

"뭐하러 힘들게 일하겠어요? 그냥 앉아 있어도 돈을 주는데. 시급보다 정부에서 주는 돈이 많아요. 그러니 일을 안 하는 게 당연하죠. 그 덕에 제 재정 상태는 좋지만요. 한국도 부동산이 많이 올랐죠? 2022년 상반기에 사업차 한국에 들어갈 예정이에요." 표정도 목소리도 밝았다.


딸과 아들이 대학생, 중학생일 때 보고 둘 다 성인이 돼서 보니 가이드님이 마음을 다해 반가워했다. 여행사 가이드를 하며 유일하게 연락하는 가족이 두 가족인데 그 한 가족이 우리 집이라 말씀하시며 특히 자녀가 없는 분으로 우리 집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 하셨다. 우리 가족을 가이드할 때는 미혼이었는데 이제 좋은 짝을 만나 너무 행복하다는 말씀을 할 때는 딸과 아들도 활짝 웃었다. 라스베이거스에 살고 있는 지인이 행복하다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며 딸과 아들이 "엄마 정말 잘됐네요. 아저씨가 옛날엔 쓸쓸해 보였는데 행복해 보여서 정말 좋네요" 하며 "아빠에게 얼른 알려줘야겠어요" 했다.


2021년의 마지막 날이자 라스베이거스 여행 마지막 날에 아들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 했다. 컴퓨터 관련 매장인데 시카고에는 없으니 꼭 들러 구경도 하고 살 것이 있으면 사겠다나? 아들이 무료주차장을 알아보곤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상점이 있다 했다. 무슨 상점인지 내가 알겠나? 이틀 뒤면 아들 생일이었다. 베네치아 호텔에 차를 주차하고 상점을 찾아 나섰다. 작은 상점에는 헤드셋, 키보드, 마우스 등 컴퓨터 관련 상품이 진열돼 있었는데 아들 눈이 반짝였다. 한참을 둘러본 아들에게 생일 선물을 사줬다. 비싸지 않은 용품을 들고 얼마나 행복해하던지...


작은 행복을 만드는 일, 작은 추억을 만드는 일이 좋은 여행, 좋은 삶으로 향하는 길이지 않을까? 인생은 슬픔과 좌절, 불행과 불운이 예측할 수 없는 때에 닥칠 터인데 삶의 여정에 작은 행복과 추억들이 촘촘히 짜여있으면 불운과 좌절이 홍수처럼 몰려와도 추억과 가족 관계가 그물처럼 마음을 지탱해주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성장하는 아이들에겐 하루하루의 작은 행복, 작은 추억, 작은 기쁨이 마음속 깊이 쌓여야 하는데 내가 얼마나 아이들에게 그런 시간을 주었는지 아들과 딸을 바라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걷다 잴리를 파는 상점에 들어가니 눈이 화려했다. 화려함 때문에 정작 맛을 기대하지 않았다. 보는 것이 먹는 것을 능가하는 샵이었다. 시각디자인이 전공인 딸이 젤리 샵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좋아했다. 구경하다 젤리와 초콜릿을 넉넉히 샀다. 정작 맛은 젤리는 젤리 맛 초콜릿은 달고 쓴맛일 뿐이었다. 화려함이 맛만 하지 못했지만.... 원래 그런 게다.


딸이 Bellagio Gallery of Fine Art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가자 했다. 디지털 아트 전시였다. 서아프리카에 영감을 받은 이미지와 음악, 관객이 만나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작가의 상상력과 관객의 현재가 만나 새로운 영상, 영감을 만드는 것이었다. 많지 않은 작품과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벨라지오 호텔 분수쇼를 보며 사진을 찍었다. 베네치아 호텔로 걸어가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쳤다. 오미크론이 급격하게 확산되는 상태였는데도 개인의 자유를 한껏 누리는 미국인들을 보며 라스베이거스와 미국인의 삶이 참 닮았다 싶었다. 하루를 살아도 찬란하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의지와 그 의지를 존중한 정부 말이다. 몇 차례 방문했던 라스베이거스는 오미크론 상황에도 늘 그대로라는 듯 반짝였고, 수많은 카지노 테이블에 올려진 칩도 그대로였고, 세상에 오늘 하루만은 행운이 철철 넘칠 것이라는 사람들의 열망도 그대로였다. 화려함과 꿈이 이루어질 것 같은 도시 라스베이거스! 라스베이거스를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와 쉬고 있으니 폭죽이 터졌다. 2021년이 지나가고 2022년이 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열망이 모여있는 라스베이거스는 올 때마다 느끼지만 반짝이지만 서늘하다. 한여름 찌는 저녁 불쇼를 구경할 때도, 선글라스 없이는 나설 수 없는 해가 쨍쨍한 여름 분수쇼를 볼 때도 덥기보다 서늘했다. 그건 아마 지나친 열망이 모여있는 도시라서 인간의 탐욕과 욕망을 사막 한가운데 풀어놓은 도시라서 그런 것 같다. 풀도 자라기 어려운 사막에 인간 욕망을 키우다니! 놀라운 역발상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2022년 새해 첫날 떠나 로스 엔젤레스로 향했다.

20211231_121811.jpg 컴퓨터 관련 상점.. 아직도 이름을 모르는데 유명한가?
20211231_123031.jpg I love sugar 젤리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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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31_131927.jpg Bellagio Gallery of Fine Art의 Ase: Afro Frequencies 전시
20211231_131726.jpg 작가가 만든 이미지와 나의 이미지가 합성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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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31_142502.jpg 늘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진을 찍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분수를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벨라지오 분수 쇼
20211231_150642.jpg 물의 도시 베니스를 옮겨다 놓은 듯한 호텔-사막에 물의 도시라? 역발상이 늘 사람을 불러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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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31_151020.jpg 천장을 가상 하늘로... 실내를 실외처럼 꾸미는 역발상
20211231_151103.jpg 라스베이거스의 성공요인은 역발상의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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