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일 라스베이거스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하며 커피를 마시기 위해 휴게소를 들렸다. 휴게소 이곳저곳을 볼 때 딸이 "엄마 이것 봐요" 하길래 다가가 살펴보니 BTS와 블랙핑크 얼굴이 보였다. 우리나라 20대 들이 어린 나이에 지옥 같은 아이돌 경쟁을 이겨내고 세계의 걸 & 보이 그룹이 된 것을 확인하니 대견했다. 노래는 잘 몰라도 대견했다. 운전으로 어깨가 굳어 있었는데 기분이 좋았다. 내 딸도 내 아들도 아닌데... 그냥...
숙소는 로스앤젤레스의 외곽에 위치한 조용한 곳이었다. 내가 예약한 숙소였지만 아이들이 도착하자마자 좋다 하니 마음이 놓였다. 집주인 그레이스가 환영의 쿠키와 음료수, 초콜릿, 메모를 작성해 놓았는데 마음이 푸근해졌다. 소소한 배려를 보며 그 소소함을 배워야겠다 생각했다. 침대도 편안하고 거실도 주방도 있으니 며칠 호텔 생활로 답답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airbnb LA 숙소로 조용하고 편안했다
로스 엔젤레스 숙소에 짐을 풀고 한인 마켓에서 시장을 봤다. 아들 생일상을 차려주겠다 했으니 말이다. 1월 2일, 참 추울 때 애를 낳았다. 미역국에 불고기를 하겠다니 딸이나 아들이나 시장을 보기도 전인데 입맛을 다셨다. 시장을 보는 내내 딸과 아들은 즐거워했다. 군산에 있는 어느 마트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1999년 처음 미국에 방문했을 때는 세계 최강국이란 생각에 온갖 곳이 휘황찬란해 보였는데 2022년의 미국 마트는 뭐랄까 낡은 듯했다. 속도감을 잘 모를 때 외국에 나와보면 한국인이 얼마나 빠른 시간,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1월 2일 아침 미역국과 불고기로 아침 생일상을 차렸다. 딸이 가볍게 식전 기도를 하니 아들 입이 귀에 걸렸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 낯선 집이지만 가족이 함께 식탁에 앉아 있으니 어느 한 귀퉁이에서도 낯섦을 찾을 수 없었다. 가족이란 자식이란 알 수 없는 만족감, 측량할 수 없는 안정감을 주는 존재다. 둘이 미소를 지으니 마음이 꽉 찼다.
남편이 코로나 상황에 무슨 미국 자유여행을 하냐고 날 구박했을 때 나는 웃었다. 사실 작년 8월 아들이 짐을 챙겨 미국에 들어갈 때 지나가듯 "코로나가 계속 발생하면 엄마가 종강하고 미국에 들어갈게. 겨울방학이 워낙 짧잖니. 한 달 방학에 한국 와서 열흘 격리하고 혹여 미국이 방역으로 입국 허락을 안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엄마가 갈 수 있으면 가서 생일도 함께 보내고 살살 돌아다니고 할게" 말했었다. 남편은 옆에서 듣고만 있었고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이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내게 페이스톡으로 "미국에 정말 오세요?" 하고 물었는데 물러날 것 같은 코로나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미국은 오미크론이 심상치 않은 기세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한국에 오고 싶은 아들 마음이 단박에 느껴졌다. 왜 안 그러겠나?
가족일수록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가깝지 않은 사람이야 그 약속이 대수롭지 않거나 아예 듣고 잊어버리지만 가까운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은 그 약속을 마음속에 쟁여놓으니 피치 못할 때를 제외하곤 약속은 지켜야 한다. 가깝기에 양해가 쉽게 될 것이란 생각은 대부분 자기 착각이다. 대체로 깊은 상처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서로 주고받으니 말이다. 가깝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생일상을 차려놓고 오길 잘했다 싶었다.
아침을 먹고 LA 산타 모니카 해변을 둘러봤다. 해변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했다. 젊은 청춘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요가를 하고 다양한 체조를 하고 있었다.
자유로움이 가득한 LA 해변을 세 시간가량 걸었다. 길도 길었지만 찬란한 태양빛이 그리 좋을 수 없었다. 홈리스가 많아도 총기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도 이래서 미국이구나 싶었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어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인종과 문화적 차별의 선을 긋지 않는 사람이라면 발상과 행동, 융합과 창작, 시도와 조화가 마구 이루어질 수 있으니 아름다운 해변만큼 그곳에서 숨 쉬며 사는 사람들이 찬란했다.
그날 저녁 아들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셋이 둘러앉아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세네 살 때의 아들 얼굴이 스물한 살 아들 얼굴에 스몄다. 단것을 유독 좋아하는 아들은 어릴 적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면 반짝이는 눈빛으로 입맛을 다셨다. 침이 고여 얼른 촛불을 껐던 아들이다. 케이크를 먹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이는 아들! 그런 아들이 느긋하게 앉아 케이크를 바라보니 지난 시간이, 지금의 시간이 감사했다. 케이크 앞에서 소원을 빌 수 있으니 감사하고, 두 아이들이 건강하니 감사하고, 먼 이국에서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으니 감사하고, 조촐한 우리들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감사했다. 코로나 시국 오느라 고생했고 PCR 검사 후 갈 것이 또 고생이겠지만 먼길 오길 잘했다 싶었고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