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 세 개가 봉기를 일으켰다. 오른발 두 번째 발가락 발톱이 허옇게 들떴고 양쪽 새끼발가락은 서로 말을 맞춘 듯 벌겋게 성을 내며 아우성을 쳤다. 어제저녁 열심히 발을 만져주며 얘들아 이것도 경험이니 좀 참아라 했는데 아침에 첫 발을 내디디니 오늘도 걸어요? 하며 서서히 반란 준비를 하는 듯했다. 오늘 아침 길을 나서며 새끼발가락들의 아우성을 외면했다. 경치를 즐기며 일단 걸었다. 10km를 걸을 때까지만 해도 할만하네 했는데 이런 내 생각을 새끼발가락이 알아챈 듯 발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참 영민한 것들... 눈은 한없이 즐거운데 발가락들이 아우성이다. 발의 고통을 딛고 눈과 마음의 즐거움을 얻는 게 순례길인가?허~~ 등가교환의 세계다.
15km를 지나니 새끼발가락이 조용해졌다. 간단했다. 발바닥이 더 아프니 새끼발가락의 외침은 얼굴도 디밀지 못했다.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아픔인데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마사지를 하니 마사지겔의 약기운에 발바닥이 환호를 했다. 그냥 이렇게 쉬어주세요. 하고 말이다. 걷기에 길들여지는 것인지 고통에 길들여지는 것인지 눈의 호강에 길들여지는 것인지!!! 순례길은 오묘하다.
팜플로냐 대성당도 까스티요 광장도 가야 하는데 두어 시간 발에게 휴식을 안겨 준 후 나가볼 참이다. 발이 아프니 내 생애 언제 이렇게 발가락과 발바닥의 소리를 경청하겠나 싶다. 소중한 발가락들을 당연한 것으로만 여겼는데 고마움이 절로 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마음을 비우는 사람도 짐을 버리는 사람도 버거운 몸무게를 줄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우선 발의 고통을 버리고 싶은데 그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버리고 싶다고 다 버려지면 얼마나 좋을까? 버릴 수 없는 것을 버릴 수 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순례자의 길인지도 모르겠다. 길을 걸어가면 모두 좋아지리라는 환상을 버리는 것! 그것이 순례길의 진정한 의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