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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루시아 Apr 28. 2022

10/40-십자가를 남겨둔 산티아고 순례길

무슨 마음으로 십자가를 매달았을까?2022.4.27.

1. 로그로뇨 Logrono ~ 나헤라 Najera ( 29km )

2. 알베르게: PUERTA DE NAJERA


로그로뇨에서 나헤라로 향하는 길 29.4km! 아침부터 비장했다. 20km를 간신히 걷던 나였다.  며칠 전 28km를 걸을 수 없을 것처럼 느꼈었는데 29.4km라니? 겁이 몰려왔다. 한 걸음을 그저 내디디는 것으로 시작되고 종국엔 그 한걸음으로 마감됨을 알면서도 그랬다. 생각의 무게와 발걸음의 무게가 다르다. 생각으 30km도 한걸음에 내달릴 것 같지만 발걸음의 무게는 무겁고 고되다.


새벽부터 비가 왔다. 어스름한 새벽빛에 우비를 입고 길을 나선 일행 처음엔 옹기종기 모여 걷다 삼십 분이 지나면 앞서는 사람과 뒤처지는 사람으로 긴 행렬이 이뤄진다. 앞을 바라보면 멀고 뒤를 돌아보면 가깝다. 마음의 거리는 언제나 앞이 멀고 뒤는 가까우니 지나쳐 온 길은 쉽고 다 가오고 길은 고통스럽다. 발걸음 한 자국마다 고통이 스민다. 그러나 그것이 준비 안된 순례자인 나의 길이고 내가 짊어져야 할 일임을 알기에 발의 미안함을 마음으로 보상하며 걷는다.


두 시간마다 바에 들러 커피와 주스를 마  세계 각국에서 모여 온 순례자들과 가벼운 인사를 한다. 팜플로나로 들어갈 때 만난 거구의 독일인 스테판, 두 명의 건장한 남자와 함께 순례길에 나선 이태리 여인 사만다, 우리 모두가 친구라고 했던 프랑스 할아버지 알베르! 앞서거나 뒤처지지만 결국 카페에서 안부를 묻는다. 만나면 그저 반갑다.  너는 좀 어떠니? 하는 단순한 한마디에 그 모든 의미가 담겨있다. 잘 걷고 있구나! 마저 잘 걸으렴!


야트한 구릉을 올라가다 도로 옆 철조망을 바라보니 수많은 순례자들이 매달아 놓은 나무십자가가 보였다. 처음엔 누가 이런 장난을 했지? 했다가 길을 따라 철조망에 얼기설기 꽂아놓은 수많은 십자가를 보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도대체 어떤 순례객들이 이곳에 멈춰 십자가를 매달고 갔을까? 궁금했다. 무엇을 남겨두고 싶어 주변의 나뭇가지를 찾 철망 사이에 손을 넣어 십자가를 매달았을까? 어떤 마음으로 이리 하였을지...... 무엇을 내려놓고 싶었는지... 무엇을 소망하였는지...



긴 길을 걸으며 궁금했다.


나헤라는 아름다운 풍광의 휴양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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