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헤라 Najera ~ 산토 도밍고 St. domingo de la Calzada ( 21km )
2. 알베르게: CASA DEL SANTO(공립 알베르게)
얼마나 걸었을까? 길은 걷기 힘들었다. 뻘이라기 하기엔 얕고 그냥 진흙길이라고 하기엔 깊고 길었다. 5분, 10분 걸으면 될 진흙길이 아니었다. 순례자들은 최대한 길옆 풀길을 밟아 진흙과 풀잎을 반죽하듯 새로운 길을 내며 걸었다. 나도 그 길을 따라 미끄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길을 갔다.
거머리가 달라붙는 듯한 진흙길이라는 인솔자의 표현에 무릎이 쳐졌다. 신발에 수많은 거머리가 달라붙은 것처럼 발은 딛고 떼기가 힘들었다. 스틱으로 균형을 잡으며 온통 발 디딜 곳을 찾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거머리 같은 진흙을 조금이라도 적게 디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와 내 발이 함께 빗속에서 협주를 하듯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스틱이 박자를 맞춘다면 발은 디딜 때마다 빗물과 진흙이 함께 이겨지는 소리를 냈다. 자박자박 저벅저벅!
발의 무게가 나갈수록 생각의 무게는 가벼워지는구나! 진흙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있는 대로 신경을 쓰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오늘잘 걸을 수 있는지, 너무 뒤처지지는 않는지, 앞으로 얼마나 가야 휴식을 할 수 있는지, 며칠 전 봉기를 일으킨 새끼발가락들은 괜찮은지... 그 모든 게 생각나지 않았다. 참 신기한 일이다. 진흙으로 인해 발의 무게가 나갈수록 생각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졌으니 말이다. 순례의길에 나쁜 날씨란 없구나! 주어진 날에 주어진 깨달음만이 있는 게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