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토 도밍고 St. domingo de la Calzada ~ 벨로라도 Belorado ( 24km )
2. 알베르게: QUATRO CANTONES(사설 알베르게)
날이 좋다. 해뜨기 전 출발하니 날이 점점 밝아 온다.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단순한 일상에 단순한 바람과 단순한 한 발걸음이 좋다. 큰 바람도 큰 소원도 없이 그저 하루가 시작하니 좋고 도착할 곳이 있어 그곳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니 좋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아픔은 일상이다. 특별한 고통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익숙한 아픔이고 그 아픔을 하루하루 딛고 나아가는 것도 좋다. 어쩌겠는가? 걸으려 왔고 걸으니 아프고 그러니 아픔을 참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고통도 일상이 되면 동료가 된다! 순례길은 기쁨도 주지만 고통도 주고 그것을 인내할 힘도 주니 좋은 길이다.
어제 종일 비가 오는 길을 걸으며 빗소리에 맞춰 누군가 내 옆을 걷는 듯한 착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카톡 진동이 울렸다. 빗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여다보니 남편이 랜선 걷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멀리 있지만 남편은 군산 어딘가를 걷고 있는가 보다. 가족 카톡으로 비가 온다는 메시지를 보내니 딸이 "비가 온다니 ㅠㅠ" 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의 메시지를 받으니 비가 와도 행복했다. 몸이 무겁고 발이 진흙에 발 디디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카톡 메시지 때문이었을까? 어제는 남편, 딸과 함께 걸었다. 우비를 입고 있어 시야가 좁아진 상태라서마치 남편이 한발 뒤에서 날 따라 걷는듯했다. 오른쪽엔 남편이 왼편은 딸이 걸으며 엄마 날씨가 왜 이래? 하며 투정을 부리는듯했다. 혼자 비 오는 긴 길을 걷고 있지만 난 혼자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지원을 받으며 이 긴 길을 걸으면서 사랑하는 사람만 있으면 혼자 걸어도 혼자 걷은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혼자 걸었지만 함께 걸어서 행복했다. 남편의 표정과 딸아이의 생생한 표정이 빗속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해가 뜨기 전 출발한 길은 점점 밝아지며 온갖 색을 펼쳐줬다. 솜사탕이 한가득 내려앉은 듯한 마을을 지나며 모두들 들떠 사진을 찍었다. 솜사탕 일리가 있는가? 안개다. 안개가 솜사탕처럼 마을을 한가득 품어 안고 있으니 손에 든 핸드폰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사진으로 그것을 제대로 담을 수가 있겠나? 인간의 오만함을 부지불식간에 깨닫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이지....
오늘은 화창했고 햇볕이 따가웠다. 등 뒤로 햇볕을 받으며 내 그림자를 보며 걸었다.
혼자 몇 Km를 걸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바삐 걸음을 옮긴 듯 하지만 긴 길에는 이름 모를 동료들이 가득했다. 함께 걷는 길이다. 나만 이 길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지만 이 길은 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순례자들이 걸었고 걷고 있다. 그러니 그 걸음들이 모두 달라도 시간이 모두 달라도 함께 걷는 길이다. 혼자 걷는다 생각하지만 우린 모두 함께 걷고 있고 다른 날씨, 환경, 처지라 생각하지만 모두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일 뿐이다. 그러니 혼자 걸어도 함께 걷고 있고 함께 걸어도 혼자 걷는 길이다. 순례자의 길은 혼자 여서도 행복하고 함께 여도 행복하다. 순례자의 길은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