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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루시아 May 01. 2022

13/40-단순함이 주는 행복-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위해? 아니 일상의 단조로움이 주는 행복-2022.4.30.

1.벨로라도(BELORADO)~아헤스 (AGES) 27.7KM

2.알베르게: EL PAJAR DE AGES 알베르게


해가 뜨기 전에 걷는다. 무거운 발걸음이다. 10일이 지나니 적응할 만도 하지만 적응이 쉽지 않다. 생각의 속도와 몸의 속도는 늘 다르다. 바람과 현실의 간극은 인간이 죽을 때까지 져야 할 일이다. 걷고 또 걸으며 걷는 것에 진심으로 행복한가? 하는 질문이 든다. 걷는 것이 행복하여 이곳에 온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른발을 절며 가는 사람, 왼발을 절며 가는 사람, 두발이 모두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 지나간다. 불편한 걷기에도 그들의 표정은 밝다. 그러나 그 밝은 표정 속에도 불편함은 얼굴 곳곳에 스며있다. 걷는 것이 그저 행복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 긴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은 무엇을 얻고자 이 길을 걸을까? 내 두 발도 불편하고 발바닥은 몇 킬로를 걷자마자 불덩이처럼 뜨겁다. 그러나 한 걸음 한 걸 딛고 가는 수밖에 없으니 고생을 돈 주고 하는 신세다. 나만 이런 지경이 아닐터인데 왜 사람들은 이 힘 길을 걷고 있을까?



바람처럼 지나가는 외국청년도, 무거운 짐을 지고 달 듯 걷는 젊은 여인도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걸을까? 걷는 이 행위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할까? 남의 일이 아니다. 남의 사정이 궁금하지도 않다. 다만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는 이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다 보니 걷는 행위가 주는 위로가 아닌 단순함이 주는 일상이 순례길의 핵심임을 깨닫는다.


아침에 일어나 발가락 곳곳에 테이핑을 하고 무릎과 발목에 테이핑을 하면서 한 가지만 생각한다. 오늘은 28킬로를 잘 걸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길을 나서고 나서는 휴식 카페를 찾는다. 휴식을 취하고서는 다음 휴식 장소를 챙겨보고 걷고 또 걸으며 다가오는 길과 풍경을 즐길 뿐이다. 그러니 순례자에게 걷기는 단순함을 즐기기 위한 기본 뿐이다. 5시간에서 6시간을 걸으며 기력을 소진한 순례자에게 남겨진 하루는 휴식과 간단한 식사와 알베르게의 침낭 속 수면뿐이다. 그러니 복잡한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시간은 널려 있지만 생각할 자리가 없다.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생각 자리가 없고 생각 자리가 없으니 생각이 없다. 걷고, 먹고, 휴식을 취하고, 자는 것이 전부인 순례길은 그 단순함에서 오는 행복을 그 자체로 안겨준다.



오늘도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한 시간 반을 기다려 점심을 먹었다. 기다림이 일상인 이곳은 모든 시간을 엿가락처럼 질질 늘린다. 절대 시간을 생각하 화가 나고 조바심이 나서 환장할 일이지만 순례길의 시간은 느림이다. 걷기의 미학처럼 느림을 통해 단순함을 얻는 다. 단순함을 통해 행복을 얻고자 한다면 어디든 걸어라! 굳이 이 먼 타국에서 걸을 필요도 없다. 그냥 주어진 시간을 걷고 생각을 비우고 삶에 여유를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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