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르치아노스 델 카미노 Bercianos del Camino ~ 만시야 Mansilla de las Mulas( 26km )
2. 알베르게: ALBERGUE GAIA(사설 알베르게)
6시 40분에 길을 나서는 일정. 이제 일상이 됐다. 뜨거운 태양빛을 피해 일찍 시작하는 순례길! 좋다. 1km를 걸으면 어김없이 해가 떠 오르고 햇살은 눈부시다.
떠오르는 해는 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오늘도 어제 같은 태양일뿐인데 감탄을 연발하며 길을 걷는다. 해가 등 뒤에서 비추니 걷는 내내 내 그림자를 보고 걷는다. 앞서기도 옆으로 살짝 비켜 서기도 하는 나의 단짝 그림자! 좋다.
인솔자가 출발 전 길 안내를 간단히 하며 어제와 같은 길이라 했다. 출발하자마자 말 뜻을 알 수 있었다. 굽이돌아도 똑같은 길이 나를 기다렸다. 양쪽 너른 들판은 파종을 하려 땅을 일궈놓거나 이삭이 달린 밀밭이 일렁였다.길은 심긴 곡식이 다르거나 같은 곡식이라도 이르고 늦을 뿐 양쪽 길옆에 심긴 작물과 나무는 비슷했고 5미터 높이의 차이가 있을까 싶게 잠깐 오르거나 내려올 뿐이었다. 먼 산이 멀리 있다 다가온 듯하다 다시 멀어졌고 심긴 나무들이 멀리 있다 다가왔다 다시 멀어졌다. 풍경이 눈을 미혹하기는커녕 다른 길을 같은 길로 만들었다. 가도 가도 그 길이었다.
사색하기에 이만한 길이 없고 이래서 명상의 길이란 이름이 붙겠구나 싶었다. 눈을 현혹하고 마음 빼앗는 길이 아닌 나와 그림자만이 도돌이표 같은 길을 걷고 있어 나는 아니 순례자는 부지불식간에 자신과의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26km를 도돌이표 같이 다른 듯 같은 길, 같은 듯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런 단순한 길을 걸으니 모든 게 감사했다. 묵묵히 내 몸을 옮겨주는 발이 감사하고, 먼 곳에서 잘 걸으라 세세하게 짐을 챙겨준 남편이 감사하고,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응원해주는 딸과 아들이 감사하고, 함께 걸으며 서로의 생각과 삶, 지혜를 나눠주는 순례 동료가 감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단순한 길, 눈과 마음을 빼앗지 않고 내 안으로 살며시 들어가도록 이끌어준 길이 감사했다. 길이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감사하고 사랑하게 26km 펼쳐주어 감사할 뿐이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만시야에서 잠시 장을 봤다. 장보기 이상의 걸음은 발에게 미안하여 만시야에 볼 것이 많다한들 그림에 떡일 뿐이다. 도시를 둘러서 흐르는 강가의 야경이 아름답다는데, 강에 헤엄치는 송어를 볼 수 있다는데 불가능하다. 좋은 풍경은 사랑하는 사람과 다음을 기약했다. 그저 무사히 나를 받아준 길에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