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질문?!
"대홍수"는 재난 그 자체를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평이 어떤지 모르고 영화를 봤다.
대홍수라는 제목에서 한 번,
거대한 쓰나미가 고층 아파트를 밀고 들어오는 장면에서 한 번,
애띤 여주인공과 어린아이가 끌어안고 물 위를 걷는 장면에서 한 번,
그렇게 낚였기 때문이다.
감독이 누구인지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한국 영화라서 봤다라기보다는,
영화관에 걸리는 좋은 한국 영화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
'주목할 영화'라고 하니 봤다.
가벼운 마음에서 시작해
무거운 마음으로 끝났다.
영화의 스토리는 며칠 동안 머리와 가슴에 남았고, 질문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마음이겠구나.
사랑과 관계도 학습이 될까?
--관계를 통해 사랑이 형성될 뿐 아니라, 끝없는 상호작용이겠구나.
엄마가 인조 아이를 진정한 아이로 만든것일까?
--엄마가 6년의 시간 동안 아이를 아이답게 성장시켰구나.
신인류 아이가 엄마를 만든것일까?
--엄마의 귓속말을 마음에 새긴 아이가, 인조 엄마를 엄마로 성장시켰구나.
이 영화의 표면적 질문은
[인간은 대홍수라는 재난에서 신인류로 거듭날 수 있을까?]였다.
인간이 자신의 DNA가 아닌 3D 프린팅된 객체를 인간화 시킬 정성이 있다면, 그런 사랑이 있다면, 그건 인간이 유전적 한계를 넘어섰다는 뜻이고, 그러니 신인류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그 한계를 넘어설 인간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지만 여성이 아닌 모성은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지 않겠느냐는 감독의 바람이 아닐까 싶다. 영화 모성과, 그 모성를 받아 신인류로 거듭난 아이, 그런 신인류 아이의 엄마에 대한 끝없는 집념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것을 발견하고 며칠을 생각하며 가슴이 짠했다.
철부지 아이의 행태를 보고 짜증이나 고구마 몇천 개를 먹은 것 같다는 평들이 난무한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살짝 옆으로 밀어놓을 평이다.
두 아이를 키워본 나로서는 그 정도 가지고 고구마를 운운하다니..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느낀 것은
아이는 이미 수천 번 이상 엄마가 말한 그 작은 농에 숨어 엄마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는 것이고 이야기가 시작될 때마다 아이는 엄마의 핸드폰에 숨겨진 진실의 조각을 계속 남겨놨다는 것이다.
고구마 먹은 것 처럼 답답한 아이라 치더라도
아이는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엄마만큼 끝없이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성장은 아이만 하는 것이 아닌 부모와 아이가 늘 함께 한다는 사실을,
부모의 엄청난 사랑은 단지 일방향으로 흐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자녀를 통해 부모 자신도 진정한 부모로 성장된다는 사실을,
인간은 마음과 사랑으로 발딛고 있는 존재이며
상호간의 관계를 통해서만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감독이 묻고 있는 듯했다. 너는 신인류가 될 수 있는 인간인가?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