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

너는 어느 근처에 머무니?

by 정루시아

박민규의 근처는 2009년(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부터 나의 근처에 머물고 있다. 그 책을 대전의 어느 서점에서 구입했는지, 무슨 마음으로 그 책을 집어 든지도 모르겠다. 무슨 수상집이라고 불리는 책으로는 주로 이상 문학 수상집을 집어 드는 내가, 표지도 익숙하지 않았던 그 책을 집어 들고, 집에 들어와, 작가들의 얼굴을 연필로 설렁설렁 소묘해 놓은 것을 바라보고, 픽 웃었던 기억이 난다. '수상 작가들의 얼굴을 굳이' 하던 생각이 지금도 떠오른다.


근처를 읽고 가슴이 아팠다. 그 태연한 문장들로 인해서, 평범하다 못해 흔한 사물들이 근처에 있어서, 어디에도 있을 것 같은 주인공이 있어서, 어디에도 있을 듯한 주인공 친구들이 있어서, 너무 소소한 우리들의 일상이, 삶이, 죽음이 근처에 있어서 슬펐다. 와락 쏟아지는 눈물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픔도, 무릎이 쳐질 것 같은 동의도 아닌, 그저 내가 그 모든 것의 근처에 머무르는 것 같아서, 그리 근처에 머무를 것 같아서 슬펐다.


박민규의 다른 작품들을, 위트와 유머와 지고지순함이 넘치는 작품들을, 몇 년에 걸쳐 띄엄띄엄 읽었지만 지금도 서점에 가면 제일 먼저 박민규의 새로운 작품은 어디 있나 찾으며 나와 그의 근처를 서성인다. 오늘 책장을 서성이다 박민규의 근처를 보곤 책을 뽑았다. 책 뒤표지의 얼룩이 들어와 피식 웃었다.


대전 아파트에 살던 때, 라면을 끓였고, 냄비받침이 필요하던 시점이었다. 서랍에 넣어진 냄비받침을 커내기도 귀찮았던 때, 배고픔이 내 근처가 아닌 내 위와 뇌를 지배하던 때, 두툼한 연갈색의 이 책은 식탁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그 누런 표지 빛깔로 걱정 없이 덥석 알루미늄 냄비를 책 뒤면에 올렸었다. 근처가 등짝을 내주었던 순간이 생생히 떠올라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그렇게 박민규의 근처는 내 근처를 맴돌았구나. 좀처럼 식탁에 책을 올려두지 않는 내 일상 속에서 근처는 근처를 맴돌며 있었구나!


근처를 엉겁결에 다시 만난 것은 군산에서 출장을 가던 도로 한가운데였다. 책을 낭독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너무도 익숙하며 가슴 싸한 글귀가 낭독되었을 때, 두 글자를 입으로 내뱉었었다. '근처구나. 근처가 다시 왔네' 했다. 박민규 소설 속 글들과 유머와 고민이 솜뭉치 같이 다가와선 그 솜뭉치를 어딘가에 던져놓아야 할 것 같은 맘이 들었다. 출장 후 동료 교수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혹시 '근처'를 아시나요? 박민규요. 교수님은 어느 '근처'에 있으세요?" 눈을 동그랗게 떴던 그 교수님께 박민규의 근처를 말하니, 그제야 웃으시며 "전 늘 외로움의 근처에 살지요" 했다. 유머인지, 진심인지 그 교수님은 오늘도 외로움의 근처를 배회하는지 한다.


수많은 근처를 맴도는 나는 식탁을 차리며, 청소를 하며, 물건을 옮기며 무엇이 무엇의 근처에 있는지 물으며, 손에 잡히고 명료한 사물을 이동하며 내게 묻는다. '너는 어느 근처에 있니?'


약속 장소를 잡으며 남편이, 딸이, 아들이, 학생이, 동료 교수가 어느 근처라고 묻는 질문에 나는 다시 묻는다. '너는 어느 근처에 있니?'


복숭아 뼈가 골절되어 깁스를 했다. 왼발목에 깁스를 하곤 남편에게 물건을 갖다 달라하면 남편은 내가 찾는 물건의 근처를 배회하다 늘 묻는다. "그게 어디 있어?" 내가 설명을 하면 그는 그곳 근처에 가선 다시 묻는다. "안 보이는데?" 나는 물건의 근처를 머리속에서 배회하다, 근처를 설명하곤, 남편의 손이 근처를 지나 물건을 잡게 한다. 일상 속 근처를 서성이며, 내 근처를 맴돌고 있는 남편을 보며, 나의 근처를 본다. '정말, 너는 어느 근처에 있니?'

책장에 얌전히 꽂혀 있던 박민규의 책들! 오늘은 내 근처로 잠시 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섯째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