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너의 사랑은?

by 정루시아




카카오 스토리를 살펴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줄리언 반스) 속 한 구절을 발견했다. 2012년 가을 메모다. 8년 전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고 그 시절 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패턴 관련 교재를 집필 중이었다. 힘들었다. 좋은 글귀이니 적었겠지만 어느 페이지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줄리언 반스


유독 이 문장이 그 시절 왜 가슴에 들어왔는지 기억을 소환했다. 왜 그랬는지. 그건 어떤 삶을 살던, 어떤 사랑을 하던 주인공 같은 사람은(꼰대) 되지 않아야 할 터인데, 한 개인이 기억하는 자신은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증거들로 인해 확신에 찬 사람(꼰대)이 될 확률이 커서 두고두고 경계를 하지 않으면, 어찌어찌 살다 그런 사람(꼰대)으로 인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주인공은 요즘 말로 하면 꼰대다. 자신이 기억하는 자기 존재와 전부인이 말하는 자기 모습은 메꿀 수 없는 간극이 있고, 자신의 엄마와 사랑에 빠졌던 자신의 친구에 대한 기억도 모두 불충분한, 부정확한 기억으로 남아있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지만, 자신은 그래도 썩 나쁘지 않은 괜찮은 존재라 자부하는 사람(꼰대)이었다.


나라고 직장생활, 사회생활, 결혼 생활하면서 꼰대를 못 만나 봤겠는가? 무수한 꼰대를 만났지만 줄리언 반스처럼 꼰대로 통칭되는 인간의 특성을 명료하게 알지 못하던 때에 '아, 인간이 이렇게 자신을 왜곡하고, 그 왜곡된 기억들로 자신을 왜곡하는 존재'임을 그의 소설을 통해 깨달았다. 여하간 나이 듦과 함께 나도 꼰대의 반열에 오르고 있겠지만 줄리언 반스는 사랑이란 사탕 알맹이에 꼰대 가루를 가득 묻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꼰대 주의보를 날리고, 그 꼰대를 잘 벗겨내야 알맹이(사랑)를 알아낼 수 있음을 일찌감치 선포했던 것이다.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남편에게 소설을 건넸다. 독후감은 짧지만 강했다. "참 탁월한 소설이네"라며 경탄을 하며, 지나간 우리의 추억을 소환하니, 깊이도, 감정도, 시각도, 상황인식도 달라 함께 웃었다. "우리도 망각과 왜곡의 존재야" 했다. 자기 합리화와 왜곡된 기억과 불충분한 감정의 증거로 소환된 우리의 추억은 정말 달랐다. "대단한데, 줄리언 반스, 바로 증명되네." 남편은 상기된 볼로 말을 삼켰다.


그러나 정작 내가 줄리언 반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그 모든 유치한 인간의 꼰대적 특성을 기술하면서도 그 핵심으로 '사랑'을, '가식 없는 사랑'을 말하고 있는 점이다. '불륜이라 욕하는 속된 사랑'을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랑', 탄식이 절로 나오는 '용기 있는 사랑'으로 전개한 점이다.

KakaoTalk_20200221_114803117_01.jpg 책꽂이에 줄리언 반스의 사랑이야기들이 함께 있다


그 책을 읽고 사랑을 생각했다. 몇 년 동안 줄리언 반스가 던진 기억과 왜곡, 사랑과 망각을 생각했다. 그리곤 오래된 기억으로, 망각의 영역으로 질문을 보내버렸다,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2019년 9월 '연애의 기억'을 책상 위에 놓고 12월까지 손에 잡지 않으며, 서재 테이블을 스치며, 곁눈질로 그 책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책이 이번엔 몇 년 치의 고민을 줄까?


줄리언 반스를 조금 알게 되어서일까? 껍질을 벗기고 사탕을 먹듯 연애의 기억을 읽고 편견을 깼다. 사랑에 대한 좁은 시각을, 정상적 사랑이라 구분 짓는 생각을, 옳고 그른 사랑이라 판별하는 것을 말이다. 사랑에 옳고 그름이 있을 수 없음을, 사랑에 나이도, 성도, 출신 배경도, 사회적 제도도, 결혼의 유무도 상관없다는 사실을. 그게 좋았다. 사랑에 대한 편견을 나 스스로 놓게 돼서 좋았다. 이런 사랑은 예쁘고, 저런 사랑은 지저분하다는, 있어 보이고 지식 인체 하는 모든 허세와 꾸밈을 버릴 수 있어 좋았다.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당신은 그게 진짜 질문이 아니라고 지적할지도-정확한 지적이다-모르겠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질문이 성립하겠지.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질문이 되지도 않는다. 얼마나 사랑할지, 제어가 가능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제어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대신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사랑만은 아니다. 연애의 기억 p13--줄리언 반스



개인의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증거들과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삶을 살지라도, 제어할 수 없는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선택지가 없는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는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은가! 줄리언 반스가 2012년으로부터 묻는 듯하다. 너의 사랑은? 그러하니?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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