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부가 얘만큼 하겠니?

딸 같은 며느리 2

by 정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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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낳고 3주 지났을 때 시아버님이 위암 초기로 개복 수술을 받았다. 두 분 다 교편을 잡고 계실 때라 2월 봄방학에 수술을 하셨다. 조치원 친정에서 산후조리 한 달을 끝내고 토요일 오후 짐을 싸들고 시댁엘 갔다. 시아버지는 수술 후 집에서 회복 중이셨고 기운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걱정이 가득했다. 새 학기에 출근을 해야 하는데 어찌할까 하셨다.


친정아버지는 짐을 싸는 내게 나직이 말씀하셨다. "위암 수술이 가벼운 것은 아니니 올라가 병간호를 잘 하렴." 했다. 엄마는 옆에 있다 "힘들겠지만 아프시니 네가 잘해라." 했다. 수술로 애를 낳아보니 수술이란 게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한 달 극진한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니 젊은 나는 건강을 찾은 듯했다. "그래야지 엄마, 애가 보채지 않으니까 잘해야지." 했다. 남편은 짐을 싸면서도 말을 아꼈다. 한 달 산후조리 한 내가 병간호를 해드리는 것이 좋은지, 조금 더 쉬는 게 좋은지 판단이 서지 않는 듯했다.


시어머니는 "딸 같은 며느리"가 오니 "맘이 든든하시다."며, 자리에 앉자마자 "몇 주 정도 있을 수 있겠냐?" 물었다. 친정부모님이 "한 달 정도는 병간호를 해드려라. 힘들어도!"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엄마가 한 달은 산후조리를 해주었으니 그 말도 일리는 있는 듯했다. 내가 잠시 뜸을 들이다 "일단 2주 해볼게요, 어머니." 했다. 애 낳기 전 난 정말 건강했었기에, 산후조리할 때도 하루가 다르게 건강을 회복했기에, 겁 없이 2주라 했다. 속으론 엄마가 '한 달은 해라.' 했지만 남편도 없이 한 달은 너무 힘들것 같아 2주로 타협한 것이었다. 일요일에 남편과 나는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청소도 간단히 하고, 아기 용품을 시댁 남편 방에 펼쳐놨다. 남편은 월요일 새벽같이 출근 했고, 나는 딸을 돌보며 시아버지 병간호를 시작했다. 남편은 "토요일 오전 진료를 마치고 올게." 했다.


생전 처음 죽을 끓였다. 친정엄마가 알려준 데로 쌀을 불려 끼니마다(5번) 죽을 끓였다. 엄마는 짐을 쌀 때 밥으로 하는 죽과 쌀을 불리어 하는 죽은 "정성도 맛도 다르다."며 "꼭 쌀을 불려 참기름에 볶다 죽을 끓이라." 했다. 야채죽, 소고기죽, 버섯죽, 흑임자 죽, 새우죽 등등. 청소를 하고, 딸 젖을 물리고, 젖병을 삶고, 기저귀를 빨고, 저녁상을 차렸다. 화요일이 되자 죽을 끓일 때마다 발 뒤꿈치가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다. 수요일엔 쌀을 볶고 야채를 썰때 손목이 얼음물에 담가놓은 듯 시렸다. 목요일, 시아버지 점심을 챙겨드리곤 졸음이 몰려와 참을 수 없었다. 모유수유를 하던 때라 젖을 물리면 몸이 불탄 종이처럼 바삭거리는 듯했다. 일어날 때마다 이를 앙다물었다. 금요일엔 기저귀를 빨다(엄마와 시어머니는 손빨래가 좋다 하셨다. 차이라면 엄마는 직접 빨아줬고, 시어머니는 빨래하는 나를 지켜보셨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코피가 터졌다. 어지럽고 힘들었다. 죽을 끓이고, 식탁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모유수유를 하고, 젖병을 삶고, 기저귀를 빨고, 너무도 작은 일들이 쉴사이 없이 이어졌다. 금요일 저녁, '남편이 내일이면 오겠구나.' 했다. 남편이 너무 보고 싶었다. 시어머니는 출근해서 바쁘고 집에 오면 마음만 바빴다. 남편이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도우미 아주머니의 손으로 살림하던 시어머니였다. 어떻게 일주일이 갔는지 토요일 아침이 오니 숨이 쉬어졌다.


공중보건의였던 남편이 오후 2시경 왔다. 시어머니는 집에 들어선 아들을 보며 "밥 먹었냐?" 하곤, 밥차릴 준비를 하란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남편을 보고 활짝 웃었다. 얼굴은 웃었으되 마음은 울었던 것 같다. 너무 반갑고 너무 힘들어서. 남편은 나를 보자마자 내 손을 잡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했다. 남편은 깜짝 놀라 눈이 왕사탕 만해져 있었다. "얼굴이 왜 그래? 시체 같잖아?", 내가 "아니 좀 힘들어서." 했다. 남편은 "그냥 누워 있어. 그냥." 남편은 화를 냈다.


남편은 거실로 나가 시어머니와 들리지 않는 대화를 했다. 젖을 물리고 한동안 잤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러 나가니 시어머니가 "좀 쉬었니." 하며 "더 쉬지 그러니?" 하셨다. "아니요. 잘 쉬었어요. 저녁 차릴게요." 했다. 밥을 먹고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실 때 남편이 작심한 듯 말했다. "내일 오전에 짐 싸서 내려갈게요. 산후조리 이제 막 해서 간신히 몸 추슬렀는데, 안 되겠어요." 했다. 시어머니는 당황하여 "아니 그럼 네 아버지는 어떻게 하냐? 하루에 다섯 끼를 죽으로 드셔야 하는데." 했다. 남편은 "그건 엄마가 알아서 하세요. 애를 낳아 몇 개월 지난 것도 아니고 딱 한 달 지났는데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남편은 화를 참으며 꾹꾹 눌러 얘기했고, 시어머니는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럼 더 있어보죠." 했더니, 남편은 "엄마, 파출부를 부르면 되죠. 몸도 성치 않은데 말이 돼요?" 했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가 암으로 수술을 하여 맘이 급한데 나를 놓기 싫어 한마디 하셨다. "파출부가 얘만큼 하겠니? 죽도 늘 새로 끓이고, 청소도 깨끗이 하고." 시어머니는 별생각 없이 말을 하곤 나와 남편을 보곤 말을 접었다. 그날 남편은 나를 품에 안고 미안해 했다." 너무 미안해. 엄마 말은 가슴에 담지 말아, 생각 없이 한 말이야." 했다. 일요일 점심을 먹고 짐을 싸서 천안집을 나섰고, 친정인 조치원집에 들렸다. 친정아버지는 보자마자 "한 달을 하지. 그걸 못 참고 내려왔니."하고 한소리를 했다. 남편은 핀잔받는 나를 대신해 내 부모에게, "장인어른, 결혼했으면 자기 배우자는 자기가 챙겨야지요. 도움이 아주머니를 부르시겠죠. 이건 아니더라고요. 장모님이 잘 챙겨주셨는데 죄송합니다." 했다. 나는 엄마, 아버지께 죄송했다. 한 달을 못 참는 딸이어서 말이다.


딸이 4살 때, 시누이가 애를 낳았다. 시어머니가 시누이 산후조리원을 들락이고 있을 때, 조카를 보러 조리원에 갔다. 그날따라 시어머니는 날 반갑게 맞았다. "얘, 너는 애 낳고 어떻게 네 시아버지 병간호를 했니? 산후조리 지켜보니 보통일 아니던데. 회복도 더디고, 너는 수술로 애 낳서 더 힘들었을 텐데. 몇 달 안지나 시아버지 병간호하느라 힘들었지?" 하셨다. 내가 웃으며 "어머니, 몇 달이 아니라 한 달 지나 조치원에서 올라간 거였는데요." 했다. "그러니? 한 달? 그랬구나." 하며, 눈에 가득 당황함이 찼다."네가 참 고맙다. 참 고생했다. 고맙다." 하며 내 손을 잡았다. 시아버지 병간호를 일주일만 하고 짐을 싸서 나서는 내게 시어머니는 불편한 얼굴로 "고생했다." 한 기억이 났다. 고마움보다는 원망에 가까운 "고생했다."를 들으며 내가 '불효를 하는구나.' 했던 생각이 들었었다. 그 생각과 함께 너무 힘들어 속으로 울던 맘이 떠올랐다. 3년이 지난 후 시누이가 아이를 낳아서야 나는 진심 어린 "고생했다."란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시누이가 있어서. 시누이가 애를 낳아서 말이다. 당시 시아버지 병간호 때 시누이는 아가씨라 불리며 한 집에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시누이는 그 병간호의 시간동안 내 기억에 없었다. 딸은 있어으되 딸 같은 며느리만 일을 했고, 파출부를 부를 수 있어으되 '파출부는 딸 같은 며느리 만큼 일할 수 없다.' 여겨졌다.


그날 천안에서 내려오며 남편에게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어머님이 딸이 산후조리하며 힘들어하는 것을 보곤 내 생각이 나셨나 보네. 참 힘들어 인생, 겪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 이제라도 고생했다 하시니 다행이네. 여보." 남편은 운전대에 손을 얹고 말했다. "난 당신 얼굴을 잊을 수 없어. 정말 시체 같았어. 근데, 그게 엄마 눈에 안 보인다는 사실이 화가 났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일 수 있는지 말이야. 몸도 성치 않은 애 낳은 지 30일밖에 안된 며느리를 눈앞에 보고 있으면서 말이야.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어." 내가 웃으며 얘기했다. "그게 바로 며느리라서 그런 거야. 파출부보다 못한." 남편은 도로를 바라보며, "고마워.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난 늘 당신 편이야. 잊지 마." 했다. 남편의 말에 "걱정 마, 언젠가는 내가 그 고마움을 받아 쓸 테니 말이야. 몇 배로 쓰게 할게." 했다.


말의 선언으로 며느리가 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한다는 말로 단박에 사랑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달콤하고 멋있는 말로 세상이 마법처럼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린 알지 않는가? 세상은 마법의 세계, 동화의 세계가 아님을.


난 말이 아닌 행동을 믿는다. "딸 하나 얻었다 생각해요"라는 말은 일찌감치 내 인생에서 버렸다. 남편이던, 부모던, 자식이던, 서로 간의 사랑은, 존중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표할때만 진정한 의미가 있음을 겪어알고 있다. 사랑은, 사랑하는 관계는, 사랑하는 관계로부터 형성된 가족은 행동이 축적된 시간 속에서만 탄생됨을. 우린 너무 쉽게 사랑을 선언하고 행동을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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