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직장생활하며 중요한 것 놓치면 무슨 소용있냐?

딸 같은 며느리 3

by 정루시아


딸이 아장아장 걷고 한참 재롱을 부리던 두 살, 시아버님 생신으로 주말에 시댁을 갔다. 레지던트 과정 중이던 남편도 오래간만에 시간을 내어 함께 갔다. 짐을 풀고 음식 냄새 가득 요리를 하고 식사를 했다. 토요일 저녁 즐겁게 식사를 하며 교감 선생님이시던 시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잘 차려줘서 고맙다."라고 운을 떼곤, 당신 아들인 남편을 보고 "힘들지만 그 분야의 최고 소리를 듣는 의사가 돼라."는 말씀을 하셨다. 남편은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주억거렸고, 나는 딸에게 생선살을 발라주었다. 딸은 교자상에 차려진 밥상에 손을 짚고 서서는 엉덩이 춤을 추며 밥을 먹었다. 수저를 들지 않은 시아버지 말씀으로 딸만 즐겁게 먹고 있었다. 불고기며, 맛난 잡채며, 고등어 살을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먹으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남편에게 당부의 말을 하신 후 시집 안 간 시누이로 차례가 넘어갔다. "현대사회는 여자도 자기 역할을 하며 사는 시대니, 꾸물거리지 말고 네 역할을 분명히 찾아라."며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바꿀 방법을 모색하라." 주문했다. 시누이는 졸업 후 바로 천안시청에 취업했고 연차는 그 당시 7년이 넘은 때였다. 시누이에게 당부를 마치고는 시어머니에게 "당신은 건강 잘 챙기고." 하신 후, 나를 보며 "고생 많은 며느리 고맙고, 애 건강하게 잘 키우렴." 했다. 아버님의 말씀이 끝나고 모두 즐겁게 식사를 했다.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껐다. 단출하지만 식구가 모여 먹고 수다를 떨다 잠을 잤다.


새벽에 일어나 미역국을 끓였다. 토요일 저녁 시어머니는 밥상 치우기 무섭게 "내일 아침은 뭘 먹냐?" 하시며 "생신인데 미역국은 먹어야지." 했다. 결혼 후 3년이 지나니 참 익숙해진다. 시댁 생활의 패턴이. 미역국을 끓여 아침을 먹고 시어머니와 함께 딸을 데리고 성당에 다녀왔다. 국수를 좋아하는 시아버지를 생각해 점심은 칼국수를 끓여 먹고 사과를 깎아 후식을 먹을 때였다. 그때는 연세가 많다 여겨졌지만, 지금 생각하면 한 창 때인 시아버지(60대 초반)는 한 번 더 자식들에게 당부의 말을 하셨다.


시아버님은 먼저 남편을 보곤 "유능한 의사가 되려면 네가 갖추어야 할 게 여간 많지 않을 것이고, 그러려면 늘 노력해야 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천안의 유능하다는 어떤 내과 의원을 언급하며 의사의 친절함과 그 학식의 깊이가 남달라 찾는 이가 끊이지 않는다 하셨다. 한 10분은 당부의 말을 하셨다. 딸이 얇게 저민 사과를 앙증맞게 물어 먹다 할아버지 말이 끝나지 않으니 시아버지 입에 사과를 넣을 정도였다. 시아버지의 당부에 시어머니는 추임새를 넣듯 남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의 꼬리를 잡았다. 얌전히 앉아있던 시누이는 몸의 방향을 틀어 거실 창밖을 보기 시작했고, 나는 딸이 재롱을 떨 때마다 이걸 받아줘야 하는지 조용히 하라며 말려야 하는지 대략 난감이었다.


아들에 대한 당부가 끝나자 당부의 대상이 시누이에게 향했다. 요즘은 일하는 여자가 대세다. 누가 너를 먹여 살려 주겠니? 스스로 당당한 커리어 우먼이 되는 게 중요한 시대다. 그냥 대충 직장 생활하다 결혼하면 그만인 세상이 아니다. 그러단 큰일 난다. 인생 거저 되는 게 없고 다른 사람에게 의탁하여 살다 간 큰 낭패가 옮을, 그러니 정신 차리고 살아야지 어영부영 계약직으로 그냥 살다 결혼하려는 생각이란 말아야 된다고 일렀다. 시아버지는 확인을 하듯 "알았냐?" 하며 시누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시어머니는 말씀 중간에 "그럼, 그럼, 네 아빠 말 명심해라. 세상 남자들이 얼마나 약아빠졌는데, 뭘 다시 배우던지 해라." 하며 시부모님은 딸 걱정을 풀어놨다.


난 속으로 '그래 이분들이 배운 분들(두분 모두 교편을 잡고 계셨다.)이라서 다르군. 시대가 바뀌었지, 여자가 결혼하여 애만 낳고 키우는 걸로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하고 생각하던 차였다. 시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내~ 우리 예쁜 며느리에게 당부의 말이 있다. 네가 뭐든 열심히 하려고 하는 걸 잘 아는데, 여자가 직장 생활하며 중요한 걸 놓치면 무슨 소용이 있냐? 애도 어린데, 또 하나만 낳아서 쓰겠냐? 둘은 있어야지. 큰돈 버는 것도 아닌데 가정이 먼저지, 어떻게 네 욕심이 먼저겠니. 가정을 더 크게 생각하면 좋겠구나!" 했다. 시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다 "그럼, 가정이 먼저지." 하며 말을 거들었고, 남편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네 덕에 생일 잘 보냈다. 조심히 내려가고 도착하면 전화하렴." 하는 시부모님 말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내가 아무 말도 없으니 남편이 내 눈치를 살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남편이 내게 그리 말한 것도 아니지만 자신이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 맘에 거슬렸지 싶다. 지금이나 그때나 생각해보면, 남편은 정말 착하다. 그리고 효자다. 좀채로 부모의 말을 자르지 않는다. 생각이 달라도 표현하지 않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냥 듣고 잊어버린단다. 논리를 따지다 보면 꼬이고 그러다 보면 시어머니가 맘에 병을 얻으니 말이다. 나쁘지 않은 전략이다. 이젠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난 그 집에서 자라지 않았으니 이런 종류의 상황엔 면역이 필요한데 그런 면역이 없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그날 내려오는 길에 내가 말없이 운전하다 한마디 했다. "여보 참 신기해, 앉은 자리서 손을 그냥 확 뒤집어서 뭐가 진실인지 했다니까? 어떤 말이 논리적으로 맞는 말인지 말이야." 남편은 기운 빠진 목소리로 "그냥 우산장수, 짚신장수 아들 얘기로 생각해." 했다. "무슨 우산장수, 짚신장수야. 그건 둘 다 자기 아들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고, 난 며느리니까 너를 버리고 그냥 서비스하며 살라는 거잖아. 당신도 이상하네, 이상한 논리를 갖고 말을 하네. 지금 그게 맞는 말이야? 한 입 갖고 두말한 거잖아!" 내가 화가 나서 속도를 내니 남편은 "아니 내가 미쳤나 봐. 머리가 이상해졌나 봐. 하도 이상한 얘기를 들었더니, 내가 왜 이러나? 정말 내가 미쳤나 봐. 그지? 여보." 그러곤 남편은 자기 손으로 입을 찰싹찰싹 때렸다.


둘이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남편도 자신의 부모가 한 자리서 그리 말하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웠기에 내게 무슨 말을 할까 궁색하게 머리를 쓰다 딱 걸린 게다. 남편이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명랑하게 말했다. "여보 나 믿지? 난 그런 사람 아니야, 믿어봐. 정말." 했다. 내가 환하게 웃으며 "그래 내가 믿을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지도 모르지만 내 믿지." 했다.


난 남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의 행동만을 믿었을 뿐이다. 내가 첫 직장을 잡을 때 운전을 해주고, 기다려주고, 포트폴리오 제작을 도와주고, 업체를 찾아주고, 면접을 볼 때 딸아이를 돌봐주는 그 수많은 행동을 믿었을 뿐이다. 한자리에서 내게 말씀했던 "여자가 직장 생활하며 중요한 걸 놓치면 무슨 소용이 있냐?"와 시누이에게 말씀했던 "당당한 커리어 우먼이 되는 게 중요한 시대"이고 "인생 거저 되는 게 없고 다른 사람에게 의탁하여 살다 간 큰 낭패가 온다"는 논리는 그 적용이 모두 보편성과 특수성을 갖고 있겠지만 그 시절 내게 시댁이란 공간은 시부모님이 보이지 않는 선을 내게 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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