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팥떡에 붙은 짓이겨진 팥고물처럼 속 좁은 며느리!

딸 같은 며느리 4

by 정루시아




딸이 돌이 됐다! 돌상을 차려 양가 가족과 식사를 했다. 신혼집에 시댁 식구와 친정식구가 모이니 시끌했다. 수수팥떡, 백설기, 술떡, 팥고물 떡, 무지개떡, 꿀떡, 온갖 떡을 주문해 상을 차렸다. 축하할 일이니 과일도 좋은 것을 골라 탑 쌓기를 하듯 상에 올렸다. 두 언니들은 일이라면 나보다 한수 위라 상차림이며 요리며 막힘 없이 도와줬다. 일의 내공이 달라 언니들의 손을 보고 일을 배웠다. 돌상을 차리고, 딸을 앉히고, 사진을 찍고, 돌잡이를 했다. 축하를 함께하니 행복했고 재밌었다. 예쁜 노란 드레스를 입은 딸은 축하을 받았고 어른들은 약주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이종 조카 다섯 명이 딸과 함께 토끼 마냥 뛰어다녔다. 아이들은 뛰어놀다 물과 과일과 떡을 찾았다. 붕어들처럼 맛난 음식을 오물거리며 먹었다. 집에 활기가 가득했다. 그날. 시어머니가 나의 이종 조카들을 보다 한마디 했다. "애들은 열 살까지 수수팥떡을 올려 생일상을 해줘야 복 받는다는데." 나는 엄마 옆에서 떡을 먹다 "그래요? 그런 게 있어요?" 했다. 친정아버지가 "옛날엔 먹고살기도 어렵고, 자식을 봐도 일찍 죽는 애들이 많아, 손이 귀한 집과 좀 있다 하는 집에서는 그리 했지요." 하고 말을 받았다. 설거지를 하며 큰 언니는 "야 너 잘못하면 10년 딸 생일상 차리겠다. 요즘 누가 그러니?" 했고, 둘째 언니가 웃으며 "너 처신 잘해라, 안 그럼 10년 고생이다." 했다. 내가 "10년?" 하니, 큰언니는 "하지 마. 생일상 안차려도 다 잘 살아." 했다.


딸의 두 돌 전 시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생일에 갈 테니 그리 알고, 수수팥떡은 내가 해줄 테니 떡집에 좀 맞춰놔라." 했다. 내가 "네? 수수팥떡요? 돌도 지났는데, 왜요?" 하니 시어머니는 태연하게 "10년은 수수팥떡을 해줘야 복을 받는다 하잖니!" 하셨다. 내가 "저희가 알아서 사 먹을게요." 했으나 시부모님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오셨다. 그렇게 아이들 생일상차림이 시작됐다. 내 의견 같은 건 중요치 않았다. 물론 나도 아이들에게 복이 온다니 내 고생으로 애들 복을 산다면 하는 생각도 있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 언니들은 내 전화를 받고, "의사 아들이라 유세하시는 거야. 참." 하며 혀를 찼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단호하게 "못해요. 안 차려요. 싫어요."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땐 내가 젊었다. 겁도 없이 젊을 때였다. 딸의 생일이 돌아오면, 시어머니는 늘 일주일 전에 전화를 걸어 수수팥떡을 주문시켰다. 시부모님은 가실 때 딱 수수팥떡 값을 내게 주셨다. 주시지 않아도 된다는데, 주셨다. 얼마 하지도 않는 그 돈을. 떡에, 케이크에,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에, 부모님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상에 채웠다. 늘 상이 붐볐다.


둘째를 낳고 아들 돌잔치를 했다. 양쪽 집의 식구들이 다시 모였다. 남편이 번거롭게 집에서 하지 말고 유성의 호텔을 빌려하자 하여 나는 음식을 하는 대신 그 작은 아들 옷과 딸 드레스를 만들었다. 꼬물거리는 아들에게 앙증맞게 만든 나비넥타이를 매고 귀여운 아기 양복을 입히니 마음이 너무 좋았다. 딸이 여섯때 아들을 낳았으니 딸을 기준으로 사 년을 더해야 열 살 생일상이 끝나고 아들 기준으로 앞으로 9년을 생일상을 차려야, 수수팥떡이 내 인생에서 사라질 일이었다. 아들 돌잔치가 끝나고 남편은 "쓸데없이 바쁘고 힘든데 이제 애들 생일상은 그만해요."라고 시부모님께 말씀드리니, 시어머니는 눈을 크게 뜨곤 "애들이 좋다는데 뭐 힘들어서 그러냐!" 했다. 남편은 "엄마는 내 생일상 차려 시부모님 모시지도 않았잖아요." 하니, 시어머니는 "난 몸도 약하고 직장 생활하느라 힘들어서 그랬지." 하며 말을 꺾었다.


딱 15년 애들 생일상을 차렸다. 15년 동안 수수팥떡을 맞추고 찾아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어른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상을 차렸다. 아들이 열 살 되던 날, 친정부모도 초대했다. 친정부모는 돌 때만 오시고 아이들 생일상을 함께 하지 않는 터였다. 내가 생일상을 차려놓고 양가 부모님을 모시곤 "오늘이 애들이 복 받는다는 열 살 생일상이 끝나는 날이에요. 많이 드세요." 했다. 말을 하며 기쁨과 함께 '그 긴 시간이 지나 결국은 끝이 나는구나.' 하며 속으로 울컥했다. 시아버지는 "준비하느라 고생했다." 하시고 친정아버지는 시부모님을 바라보곤 "먼저 드시죠." 했다.


그날은 정말 기뻤다. 15년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애들 수수팥떡이 올라간 생일상을 해주었다니. 정말 징글징글 하지만 행복했다. 남편과 서로 수수팥떡을 입에 넣어주며 서로를 쓰다듬었다. 문제는 그다음 해였다. 시어머니가 아이들 생일 일주일 전 이번 생일은 어떻게 할 거냐 하셨다. 내가 "생일 안 해요 어머니. 열 살까지 수수팥떡 했으면 됐죠." 했다. 시어머니는 말을 얼버무리다 전화를 끊었다. 15년을 함께 손녀, 손자 생일을 함께 하였으니 그분들이 서운한 것이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나의 타임 스케줄은 15년으로 세팅이 되었기에 야박하다 싶게 말씀드렸다. 시어머님은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톤 높은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남편 귀에 붙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왜 함께 생일을 안 하냐. 뭐 하는 게 어려워서 그러냐." 등등 서운함과 함께 언짢음을 토로하셨다. 남편이 "엄마, 엄마는 직장 생활하면서 우리들 생일상 차려서 몇 번이나 시아버지, 시어머니 모셔봤어요. 안 하셨잖아요. 상 차리는 것 힘들어요. 하는 일 없는 것 같은 저도 힘들어요. 그만하세요. 애들 엄마도 계속 직장생활에 공부에 바빴어요. 엄마는 약하고 힘들어서 못했으면서, 우리가 15년이나 했으면 됐지. 됐어요. 이제 우리끼리 편하게 할게요. 엄마, 아빠 생신상만 차릴게요. 서운해하지 마세요." 했다.


남편은 길게 말하지 않는 사람이다. 늘 예, 아니요. 별일 없어요. 괜찮아요. 만 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15년의 위력으로 말이 줄줄 나오는 걸 보고 내가 눈을 크게 떴다. 말을 짧게 하던 사람이 길게 하려니 말의 톤이 바뀌고 감정이 섞이고 한숨이 토해져서 전화를 끊고는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자기감정을 누르느라 큰 숨을 쉬었다. 내가 웃으며 "15년 동안 애들 생일상은 당신 혼자 차린 줄 알겠네, 그렇게 말하면 어머님이 더 서운해하실 텐데." 했다. 남편은 "서운해도 할 수 없지, 10년 생일상을 입에 꺼내셨고, 그리 우겨서 15년 생일상 함께 먹었으면 됐지. 괜찮을 거야. 엄마 그리 오래 꽁하실 분은 아냐. 걱정 마." 했다. 시어머니는 내게 '콩' 하시지는 않았지만 아이들 생일 때가 되면 서운해하셨다. 몇 년 동안 서운해하셨다.


결혼해서 애들 생일상만 차렸겠나! 시아버지 생신, 시어머니 생신, 남편 생일, 아이 생일, 시댁에 가서,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셔서 수많은 이유로 상을 차렸다. 직장을 다니던, 배가 부르던, 박사과정 중이던 상관없었다. 그분들은 행복한 모임이라 생각하지만 딸 같은 며느리의 노동이란 인식은 없었다. 있다면 혼자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던 내게, 박사과정과 시간강사로 숨이 턱까지 차던 내게 "뭐가 힘드니, 집에서 간단하게 밥 한 끼 먹는 게." 할까 싶다. 당신들의 "고생했다"는 말과 '발바닥에 땀나는 나의 노동'을 등가로 만들었다. 참 쉽다. 시월드의 등가교환이 말이다.


남편은 어떤 생일상이던 그 상차림이 지나면 내게 미안해했다. "여보, 엄마는 상 차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 다섯째 며느리로, 교사 며느리로, 시부모 봉양을 큰집의 일로 알아서 말이야. 당신이 뚝딱하니까. 그냥 생각 없이 말씀하시고 요구하시는 거야." 했다. 내가 "뚝딱이라니. 뭘 뚝딱해. 일을 빨리하려면 에너지 소비가 얼마나 큰지 몰라? 사람들은 뭐든 빨리하면 쉬운지 알지, 그건 경험, 노력, 집중이 시간 속에서 농축된 거야. 힘들어, 정말 힘들어. 뚝딱이라니!" 남편은 당황하여 말했다. "여보, 난 바보야. 때려! 날 때려. 기분이 풀릴 때까지 때려. 어디를 때릴래!" 하곤 입술을 내밀었다.


지난 일은 가능하면 미화시키고 싶다. 또 가능하면 품위 있는 말만 하고 싶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그런데, 난, 생각해보니 속이 좁다. 속 좁은 티를 내지 않고 15년을 버틴 것을 우아하게 포장하여 근사한 며느리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왜? 딸이 배울 것 같아서다. 혹 딸이 이런 인내, 참을성을 배워 풀리지 않는 매듭을 위장 안에 꾸역꾸역 밀어 넣듯 살기를 바라지 않아서이다. 할 수 있다면 속 좁은 티를 뻥튀기 기계에 넣어 백배로 뻥이라도 치고 싶다. 뻥으로라도, 요란하게 떠들어 지금의 딸들과 미래의 딸들이 이런 종류의 소동에 가당치도 않게 휘말리지 않게 하고 싶다. 이런 이유라면, 15년 아이들 생일상을 차렸지만, 내가 속 좀 좁아도 되지 않나? 수수팥떡에 짓이겨진 팥고물처럼 속 좁은 며느리 될만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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