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새벽 5시 즈음 방에 와서 날 내려다봐요!

딸 같은 며느리 11

by 정루시아


2016년 대학 본부에서 일을 하던 때였다. 회의를 하던 중 남편이 전화를 했다. "엄마가 산책 중 발을 헛디뎌 왼발목이 부러졌데, 수술 받아야 한다니 지금 올라가 보려고, 가서 전화할게." 했다. 남편은 급히 천안 병원으로 향했고 다음날 "수술이 잘 되었다."며 수염 자란 얼굴로 내려왔다. 어머님은 "수술한 병원에서 며칠 있다 집 근처 병원으로 옮겨 이주일 계시겠다." 했다.


주말에 뼈에 좋다는 각종 밑반찬을 만들어 얘들과 병원에 갔다. 아버님은 매일 아침 병원에 들러 어머님을 보시곤 가까운 산을 타고 오후 어머님을 챙기고 집에 가신다 하고, 시댁 옆에 사는 시누이는 퇴근 후 병원을 찾아온다 했다. 맘이 좋지 않았다. 4명이 함께 쓰는 병실에 노인분들이 계셨고 어머니만 정신이 온전했다.


팀장과 회의자료를 만들고 있던 중 어머님 퇴원수속을 위해 천안에 간 남편이 전화를 했다. 남편은 "엄마가 우리 집에 오고 싶다네?" 했다. 나는 "아버님과 집에 계시지 않고? 그럼 아버님은?" 했다. "아버지는 그냥 천안에 있으시겠다 하고, 우리가 엄마를 돌봤으면 좋겠다 하시네~." 나는 보직교수여서 아침부터 퇴근까지 회의며 강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전화기 속 남편 목소리는 비 맞은 노란 새끼 병아리 같았다. 나는 산처럼 밀려올 일을 생각하며 "그래 그럼, 그렇게 해요. 조심히 내려오고요~" 했다. 남편은 어머니를 모셔왔다. 함께 내려온 시아버지는 "네가 고생이다." 한마디 하시곤 부리나케 천안으로 올라가셨고 어머니는 피곤함과 안도감이 버무려진 표정이었다.


어머님이 내려오신 날, 저녁 식사를 하고 바로 발목에 비닐을 묶고는 목욕을 시켜드렸다. 아프면 사람이 빛깔을 쉽게 잃는다. 젊으나 늙으나 사람이 추레해진다. 그나마 목욕을 하면 피부의 빛깔도, 생기도 살아나니 물을 달라 외치는 시든 화초 같다. 결혼해서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목욕탕에 가자 했다. 그 뒤로 봄, 가을, 겨울 시부모님과 함께 이름난 대중목욕탕(도고 온천, 지금은 없어진 마곡사 근처 유황온천, 유성온천 등)에서 아이들과 목욕을 했다. 목욕탕에서 마주친 많은 옆자리 노인들이 모두 딸이냐고 어머니께 물었다. 시원스레 어머니 등을 미는 모습이 며느리라 예상치 못하게 했던 것 같다. "딸 같죠? 우리 며느리예요." 했다. 어머니는 늘 "딸 같죠?" 하며 환하게 웃고는 "딸 같은 며느리!"라 했다. 시원하게 목욕을 하신 어머니는 미지근한 물을 드시곤 "참 시원하고 개운하다." 하시며 "병원 간병인은 부산스럽기만 하고 목욕을 해도 개운치 않았는데 네가 시켜주니 정말 좋다." 하시며 얼굴이 환해졌다.


어머님이 오신 후 아침밥을 먹고 도우미 아줌마(어머니가 오신다 하여 수소문하여 도우미 아주머니를 급하게 모셨다.)께 거동이 불편한 어머님 점심을 챙겨달라 부탁하곤 아들을 데리고 출근했다. 아들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할머니는 며칠 계실 거예요? 왜 저한테는 미리 알려주지 않았어요?" 하며 입을 내밀었다. 내가 아들 눈을 바라보며 "엄마가 아파서 나중에 네 집에 갔을 때, 네 아들이 그리 입을 내밀고 말하면 너는 어찌할래?" 했더니 아들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안하다 아들~ 네게 미리 알려주고, 너도 맘의 준비를 하게 했어야 하는데, 사실 아빠가 할머니 퇴원수속하며 바로 결정된 사항이라 엄마도 통보받다 싶은 거였어. 할머니가 너를 얼마나 귀하게 키웠는지 너는 모르지만 엄마는 알거든, 할머니가 아프시니 잘 계시게 해야지. 너를 가볍게 여겨 말을 안 한 게 아니니 서운해하지 말고, 너무 불편해하지도 말고. 알았지?" 했다. 아들은 내밀었던 입을 들여 넣었다. 막 사춘기를 벗어난 아들이니 감정이 칼날처럼 서 있었다. 덩치는 아빠만 했지만 아들은 새순처럼, 꽃잎처럼 예민했다. 감정이.


이른 아침부터 TV 소리가 집안을 돌아다녔다. 어머니는 노래를 좋아했고, 노래를 잘 부르셨고, 피아노를 치며 노래 부르는 재주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귀가 약해져 TV 볼륨은 점점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하루 종일 TV 속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다. 성악에서 뽕짝, 발라드까지 그 노래의 넘나듦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의 위로 덕분인지 딸방(아들 옆방, 딸은 외지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 딸이 그린 그림만 사방 벽에 매달려 있었다.)에 자리 잡은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찾았고 오신지 3주가 되니 목발을 짚고 살살 움직였다.


남편이 근무하는 날엔 도우미 아주머니가 어머니와 함께 있고, 저녁식사 후에는 아들이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아파트 오솔길을 살살 산책했다. 입은 내밀었지만 아들은 할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미약하게나마 돌려드렸다. 어머님은 아들과 꼭 닮은 어린 손주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아파트 산책을 하고 나선, 세상 다 가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님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내가 이태리에 유학 간 일 년 동안 정성을 듬뿍 들여 키웠던 손자가 아들처럼 장성하여 할머니와 산책을 하니 얼마나 가슴이 따스했겠나! 아들은 할머니가 갑자기 내려왔다며, 골을 내듯 입을 내밀고 툴툴댄 적이 있나 싶게, 할머니께 살가운 눈빛과 고운 태도로 할머니 잔 신부름을 했다. 아들 마음씀이 고와 좋았다.


내가 부산 1박 2일 출장을 앞둔 아침식사 때 어머니는 "아욱 철인데, 아욱국이 먹고 싶다." 하셨다. "어머니, 오늘 저 부산 출장을 가서 내일 저녁에나 집에 와서요. 아욱국 잘하는 식당에 가서 드시면 어떨까요?" 했더니 "뭘 번거롭게, 네가 내일 와서 끓이면 되지." 하셔 나는 힘없이 웃었다. "네. 그럴게요. 내일 저녁 7시 즈음 도착할 텐데. 그래요 어머니!" 했다. 듣고 있던 남편은 내 눈치를 봤다. 출장에서 돌아오며(6시 50분에 군산에 도착) 야채가게를 간다 하니 함께 출장을 다녀오던 직원들이 "아욱국으로 유명한 식당에 가서 사가라." 아우성이었다. "내가 끓여준 걸 드시겠다, 기다리겠다는데, 그걸 못해? 그냥 끓이고 말지!" 직원들은 혀를 찼다. 그날 저녁 아욱국을 끓였고 어머니는 맛나게 드셨다.


며칠 지나고 아들이 출근길에 내게 머뭇거리며 물었다. "할머니 언제 가셔요?" "왜? 가실 때가 되면 가시겠지!" 아들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게 바짝 붙어 "아니 엄마, 요즘 할머니가 새벽 5시 즈음 방에 와서 날 내려다봐요. 놀랐어요." 소곤거리듯 말하며 눈에 당황을 가득 채웠다. 나는 웃음이 나와 참을 수 없었다. "아들! 너 발가벗겨 씻기며 돌본 할머니야. 네가 이리 잘 자랐으니 얼마나 예쁘겠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하실 거야. 너를 실컷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니! 할머니야. 그러니~ 그냥 모른 척 자." 했다. 아들은 "엄마도 노크 없이 안 들어오는데, 너무한 것 아니에요?" 하기에 내가 "아들~ 정말 너무한걸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지." 했다. 아들은 내 미소를 보고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바짝 다가와 내 말을 기다리는 아들에게 "할머니는 아빠가 너무 귀해, 엄마랑 아빠랑 신혼 때 자는 것도 창문 너머로 보시더라. 좀 채로 잘 깨지 않는 엄마가 이상한 기운에 눈을 떠보니 할머니가 창문에서 고개를 들이밀고 자고 있는 우리를 보고 있잖니? 엄마랑 눈이 딱 마주쳤지. 그래서 엄마가 왜 그러세요? 했다니까? 할머니가 그때 뭐라 하셨냐면 "바람이 찬 것 같아서 창문을 닫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그런다고. 차기는 뭐가 차니? 여름이었는데. 사랑하는 아들이 궁금했겠지. 너무 사랑하니까 자는 모습을 보고 싶었겠지. 아마 아빠를 키우며 오랫동안 자는 아빠를 살피고 챙기고 했을 거야. 습관처럼 말야. 그러다 할머니도 모르게 엄마랑 딱 눈이 마주친 거고. 그래서 엄마가 아빠에게 천안에서 자거나 우리 집에 어머님 오시면 긴 바지 입고 자라 했어. 그러니까 그러려니 해!"하고 말했다. 아들은 "엄마는 안 그러잖아요? 저 잘 때 와서 안보잖아요?" 했다. 내가 웃으며 "너희들 중학교 1학년 이후로는 엄마가 노크 없이 너희들 방에 들어가지 않았지? 계속 들여다보다 결혼해서까지 들여다보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거든!" 하니, 아들은 내 말을 듣고 눈이 왕사탕만해지더니 고개를 잠시 흔들고 맘을 비우는 것 같았다.


젊은 엄마, 아빠가 자고 있는 신혼방을 들여다보는 할머니라니? 사춘기 아들에겐 놀랄 노자였겠지만 그런 추억으로 엮인 가족임을, 그런 다름을 포용하며 지내온 가족임을, 하나하나 알게 돼가니 이 또한 배움이지 않겠나? 싶다.


시아버지는 토요일이면 잠시 오셨다 어머니께 간다 소리도 없이 올라가셨다. 걱정은 되나 살가운 애정은 없었다. 한 달이 다 되어가니 남편이 저녁 시간에 말을 꺼냈다. "엄마, 이제 목발 짚고 살살 움직이시니 올라가셔야죠. 아버지도 어찌 지내는지 하고요." 어머니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난 아직도 다리가 아프고 거동이 불편한데, 그냥 여기 조금 더 있으면 안 되겠니?" 했다. 사춘기 아들은 얼굴이 굳었고, 남편은 당황을 한입 물었고, 나는 상황이 어찌 전개될지 궁금했다. 남편은 작심한 듯 "가셔야죠. 한 달 정도 있으시겠다 했잖아요. 한 달이 되면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했다. 어머니는 난감하게 웃고는 "그래 알았다." 하셨다.


한 달이 지난 후 남편이 어머니를 모시고 천안에 갔다. 아들은 얼굴이 폈고, 남편은 맘을 놓았으며, 나는 소리가 사라진 거실에서 책을 읽었다. 참 어렵다.


어머님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평생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며 아들을 사랑했고, 자랑스러워했고, 든든해했다.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님은 눈에 사랑이 차고, 입가는 미소가, 좁았던 가슴은 펴지며 한가득 행복이 차는 것을 옆에서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어머님의 눈은 늘 아들로 향했고, 반대로 불편한 심기와 거친 말은 시아버지에게 향했다. 나는 그분들의 젊은 시절을 잘 알지 못한다. 내 부모님이 다정하게 지내시던 모습 속에서 자란 나는 늘 그 불편함이 불편했다.


어머님의 아들에게만 향하는 사랑을 보며, 나는 '자식이 내 사랑을 독차지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다. 시어머니 등이, 시아버지 등이 각자 외로웠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등이, 어찌하여 관계의 외로움이란 봇짐으로 채워졌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가지는 시부모님은 우리 부부가 그런 봇짐을 지고, 만들고, 힘들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생, 부부의 인생 참 어렵다. 당신들이 살아온 삶을 후회하며 자식의 삶은 행복으로만 가득하길 바라니 말이다.


사연의 봇짐을, 관계의 봇짐을, 스스로 지게 되든, 남에 의해 지게 되든, 결국 그 봇짐을 벗을 수 있는 당사자는 나 자신밖에 없음을 ...나의 아이들이 알기를 바라며 가르침을 주신 시부모님께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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