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여름 국화를 사러 금산까지 간 적이 있다. 한 여름인 8월이니 단골 화원엔 국화가 없었다. 일정을 찾아보니 2018년 8월 20일이었다. 2시간이 넘게 차를 운전하여 남편과 도착한 국화농장은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농장주는 국화묘목과 다양한 가을꽃 묘목을 대단위 비닐하우스에 기르고 있었다. 찌는 듯한 여름날에 농장을 찾은 우리에게 농장주는 친절하고 반갑게 국화를 보여줬고 국화를 보는 눈과 목소리에 사랑이 차고 넘쳤다. 그렇게 다양한 국화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농장주 아내는 땀을 흘리며 납품할 메리골드를 준비하고 있었고, 시원한 차를 드려야겠다며 냉녹차를 건네주던 농장주는 마음도, 자세도, 눈도 선했다. 의자에 앉아 시원한 냉녹차를 마시려니 농장주는 카탈로그를 건네주었다. 카탈로그 속 국화를 보고 농장주의 자신감이 어디서 연유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너무 예뻤다. 꽃들이. 농장주는 없는 국화를 알려주고 맘에 드는 국화를 고르라 했다. 모양도, 색상도 다른 수많은 국화가 카탈로그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남편은 함께 카탈로그를 보다 쓸 적 내게 선택을 맡기곤 비닐하우스 장비에 관심을 보였고 농장주는 이때다 싶게 자동설비시스템을 설명해 주었다. 자랑할 만한 시스템이었다. 스위치 하나면 물을 주고, 가리 막이 거치고, 조명을 비추는 장치들, IT 기술이 국화농장에서 국화와 함께 살고 있었다.
말을 주고받다 보니 농장주 나이는 우리보다 젊었지만 생각한 것보다 나이가 있었다. 식물과 함께 있어 젊어 보이는 것인지, 늘 새로운 국화를 연구하여 젊은것인지, 참 젊어 보였다. 농장주는 지나가는 말로 "아시죠? 국화가 향도 좋고, 꽃도 오래가고 참 좋은 꽃인데, 이게 수익은 그래요." 했다. 내가 "왜요? 가을이면 국화를 엄청 팔던데~ 수익이 없으면 그리 많이 팔겠어요?" 하니 농장주는 말끔하게 웃으며 "사모님, 그건 외래종 국화죠. 월동이 잘 되지 않는 국화요. 팔 때는 "심으면 내년에도 난다!" 그러죠? 잘 안돼요. 그러니 새해에는 결국 새 국화를 사야 되고요. 그러니 그건 수익이 되죠. 토종은 잘 자라고, 잘 번지니, 수익 얻긴 어렵죠." 했다. "아 그런 거군요. 저희는 토종 외래종 잘 모르고 인터넷에서 국화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을 찾아온 거라서. 일단 잘 찾아왔네요." 하니 농장주는 "그럼요. 잘 키우시고 판매만 하시지 마시고 주변분들에게 나눠주셔요. 잘 번지고 관리도 쉬워요" 했다.
빨강, 노랑, 흰색, 진분홍, 연분홍 국화를 샀다. 화분이 트렁크에 자리를 잡으니 차 안은 국화향으로 가득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대둔산 산자락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고자 식당에 들어가니 주인이 "이리 뜨거운 한낮에 산을 가시려고요?" 물었다. 산이 아니라 국화 사러 금산에 왔다 점심 먹으러 왔다 하니 주인아주머니가 그렇게 토종 국화를 찾아도 찾기 어려웠다며 농장주 전화번호를 달라했다. 아주머니는 "토종 국화잎은 그저 손으로 쓸어주기만 해도 향이 좋은데 외래종에선 그만한 향이 나지 않아요." 했다.
그렇게 우리 집 마당에 들어온 국화는 마당 이곳저곳에 심겼고 늦여름에서 초겨울까지 국화꽃을 가득 피웠다. 토종 국화를 집에 심은 후 외래종 국화도 가까운 화원에서 사서 현관 앞 화분에 심었다. 가을이면 국화 천지니 마당은 국화 향으로 가득했고 다양한 색에 길을 가던 이웃주민들이 한동안 향을 맡고 꽃을 구경하다 지나갔다. 그렇게 2년을 잘 보냈는데 작년에 외래종이 꽃몽우리가 잘 올랐다 싶었는데 피는 둥 마는 둥 하다 꽃몽우리가 갈변을 하며 말라버렸다. 병인지 하여 약을 쳤지만 하나는 멀쩡한데 하나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3년 된 국화는 올해도 쑤욱쑤욱 성장을 했으나 50일이 넘는 장마에 토종 국화는 살았지만 외래종 국화는 상황이 달랐다. 현관 옆을 차지한 국화는 꽃봉오리만 잔뜩 올리더니 둘 다 바짝 말라죽어버렸다. 상심이 컸다. 봄부터 정성 들여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약을 쳐주었건만 외래종 국화는 힘없이 죽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래도 토종 국화는 꽃망울을 올리곤 심지어 몇몇 송이는 꽃을 피웠다. 기특한 꽃이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긴 장마를 견디어 꽃을 피워냈으니 말이다.
저녁 산책 후 남편이 국화를 보며 한마디 한다. "국화는 다년생이라도 꺾꽂이를 해서 길러야 더 싱싱하고 잘 자란다고 하네." 우린 그냥 그 자리서 계속 자라게 했는데 정성 들여 새롭게 자라게 해 주면 더 좋다고 말이다. 남편 말에 불쑥 '그럼 잘 자라던 국화에서 가지를 잘라 심어 새롭게 뿌리를 내면 그건 3년생인가? 일 년생인가?' 그냥 스치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새로운 가지에서 자란 국화는 '그건 일 년생이겠구나?' 싶었다. 3년 된 것의 가지였다 해도 자신이 뿌리를 내리고 불철주야 고생하며 노력하니 당연히 일 년생이구나 싶었다.
국화 생각을 하다 문득 사람 나이가 생각났다. '국화도 몇 년 된 뿌리에서 자란 가지라도 잘리어 꺾꽂이 후 다시 뿌리를 내리면 일 년생이 되듯 사람도 몇 살의 나이를 먹든 자신이 선택한 나이로 살겠다 작심하고 뿌리내리면 자신이 선택한 나이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2019년 현관앞 노란 외래종 국화와 무럭무럭 자라 난 토종 국화들 그런 생각이 머무르던 차에 몇몇 교수님과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환갑이 되어가는 교수님이 최근 기술사 공부를 하신다며 씩씩하게 말씀하셨다. 대기업 상무로 계시다 학교에 오신 후 7년 동안 쉼 없이 연구와 교육 열정을 불태우던 교수님이었는데 최근 새로운 도전 목표를 세우고 정진한다 했다. 내가 "교수님은 정말 20대로 사시는군요. 늘 멈춤 없이 도전하시고, 참 좋습니다." 했다. 그 교수님께서는 "제 아내보다는 조금 더 써주시는군요. 제 아내는 저를 17살이라 해요. 아직도 꿈을 꾸며 사는 열일곱 살 사춘기 소년이라고요."라며 크게 웃으셨다. 함께 담소를 나누던 모든 교수님이 웃었다.
내가 "교수님, 제가 요즘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나이로 산다는 생각을 했는데 교수님을 뵈니 그런 것 같아요. 자신이 늙어다 생각하면 늙게 살고(꼰대가 되고), 자신이 아직도 한창 꿈을 만들고 이룰 것이라 생각하면 20대로 살고 말이죠. 그런 것 같죠?" 하니 그 교수님께서는 허허 웃으며 "그렇죠. 저는 아직 젊게 살고 있어요." 했다.
퇴근길 운전을 하며 '나는 과연 몇 살로 살고 있을까?' 했다. 50살을 넘기며 그리 시간이 아깝다 생각한 지가 이미 4년 흘렀는데, 정작 아깝다 생각한 만큼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것인지 했다. 남편과 늦은 밤 생강차를 마시며 낮에 뵈었던 교수님 얘기를 하니 남편은 "우리도 젊게 사는 거야. 우리 나이에 여름마다 줄넘기하는 부부도 흔치 않아. 학교 다닐 때도 잘 안 하던 줄넘기를 하잖아. 자 오늘 몇 개 할까? 천 개? 이천 개?" 한다. 우린 그냥 웃었다. 줄넘기를 하며 통통 뛴다고 젊게 사는 게 아닌 줄 우린 알지만 그냥 웃었다.
살아온 시간은 나를 말함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만은 내가 선택한 나이로 살 수 있음을 마당 국화를 보며 깨닫는다. 국화가 우리 집에 와서 향과 아름다운 꽃으로 즐거움을 주며 새롭게 살아가는 의미를 주다니. 고맙다 가을 국화야!
2020년 9월의 오늘! 마당 입구를 꽃으로 여는 국화. 잘 살아줘서 고맙다.
왼쪽은 작년에 들여심은 아스타 국화, 오른쪽은 3년된 금산에서 들여온 국화 저녁 마당을 거닐 때 국화가 묻는다. "너는 몇 살로 살고 있니? 네가 선택한 나이는 몇 살이니?" 하고 말이다. 여러분은 몇 살로 살고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