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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치명 Mar 15. 2021

성스럽지 못한

노동3

 오빠의 직업은 용접공이다. 이직 전까지 XX 건설에서 일을 했다. 나는 막연하게 불꽃과의 사투만 생각했다. 용접은 뜨거운 시간을 지휘하는 일. 그런데 하루는 오빠가 사진을 보냈다.


 

 무섭다.


 나는 이 세 글자에 담긴 오빠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 야야, 오늘도, 내일도 어제처럼 별일 없겠지. 하지만 건설 현장은 살기 위해 죽을 각오를 해야하는 곳이었다.


 오빠는 나에게 부쩍 카톡을 자주 보내기 시작했다.


 생명 보험 들었어, 나 언제 죽을지 몰라.


 알고 보니 XX 건설에서 지급되는 안전벨트는 2만 원 남짓하는 가격의 제품으로 생명을 담보로 하기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추락하면 이 따위 안전벨트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오빠는 진작 깨달았던 것이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고층에 매달린 오빠를 죽음의 세계에 쉽게 내동댕이칠 수 있었다. 용접공들은 위태로운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튼튼한 안전벨트를 따로 구입해서 쓴다고 했다.



 오빠에게 어김없이 톡이 왔다. 한창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인데...


같이 일을 하던 사람이 죽었어. 그래서 오늘 일찍 철수했어. 고용노동부에서 나오긴한 것 같은데 너무 조용해. 덮으려는 건가.


 그는 안전 벨트 불량으로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9미터의 높이. 불과 몇 초.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의 목숨은 산산조각 났다. 나는 오빠에게 조심하라는 부질없는 충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죽음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뉴스에서는 아주 짧게 다뤄졌을 뿐이다. 하지만 XX건설은 여전히  대기업답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중이다. 산재사고에 대한 대책없이. 변화에 대한 의지도 없이. 추락방지망 설치와 와이어 점검이 그리도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나는 고용노동부의 무능력함을 새삼 알게 되었다.


 오빠는 또 다른 곳에서 오늘도 불꽃과 사투를 벌인다, 아니 죽음과 사투를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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