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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치명 Feb 18. 2021

성스럽지 못한

노동2

 2년 남짓 여의도 D빌딩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불편함과 마주했다. 성격이 지랄 같은 팀장과 나란히 점심을 먹는 기분은 정말 비할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일을 했던 빌딩 D빌딩 임대료는 무척 비쌌다.  D빌딩은 주식회사 D로 운영되었다. 건물주 아들은 매번 다른 여자들을 데리고 와 건물을 구경시키는 게 일이었다. 차가  D빌딩 입구에 도착하면 아버지 같은 경비원이 달려가 뒷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주식회사 D의 노동자들을 보면서 이 거지 같은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에게 쌍욕을 퍼붓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슬프게도 아무 것도 아니었다.


 여자 화장실은 용변을 볼 수 있는 곳이 딱 두 칸이었다. 꽤 비좁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오전 내내 그 비좁은 공간은 면적이 더 줄었다. 각 층을 담당하는 어머님들이 화장실 관리 차 용변을 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문을 살짝 열어 두고서. 그 틈은 5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가 소변을 보든, 대변을 보든, 코를 풀고 가든, 상사를 까든 꼼짝  할 수 없었다. 그래, 그들은 갇혀 있었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내가 다니던 사무실은 7층에 있었다. 7층 청소를 담당하는 어머니는 0자 다리였다. 어색한 걸음걸이로 봐서는 관절염을 앓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어머니께  자주 커피 믹스를 드렸고 어머니는 화장실에서 커피를 타 드셨다.


 점심 즈음이 되면 어머니는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오후에 다시 화장실을 지켰다. 가끔 신문을 읽었고 간식을 먹는 듯 했다. 나는 화장실에 갔다가 그 틈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을 했다. 그 틈으로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면 중요한 일을 깜빡했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어머니께 달마다 오만 원씩 드리곤 했다. 나는 어느새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뭐, 일방적인 하소연이기는 했지만... 소장이 밥 해먹는 걸 싫어해, 다리가 너무 아파... 하지만 나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너무 속이 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무실에 들어 온 귤 박스 중 하나를 몰래 가져다 주는 정도였다.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새로 온 어머니께 물었다.

 "이전 어머니는 그만 두신 거예요?"

 "다리가 너무 아프대요."

 아... 마지막이라고 이야기 좀 해주시지. 그렇게 좋아하셨던 커피 믹스라도 사드렸을 텐데... 그러고 보니 나는 어머니의 이름도 몰랐다. 그를 어머니라고 부를 자격이 없는 나였는데. 인간의 가장 마지막 행위, 배설. 우리 모두 오래 머물기를 꺼리는 그곳에서 가장 성스러운 노동을 했지만 성스럽지 못한 대우를 받았던 어머니가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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