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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치명 Feb 10. 2021

성스럽지 못한

노동1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아빠는 간만에 나와 마주 앉아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아빠 힘들어. 대학원 등록금까지만 책임질 거야. 아빠 통장에서 자동이체 시켰던 휴대폰 요금이랑 보험료를 가져가.”

 아빠는 무척 단호했다. 언니는 대학 졸업 후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군대를 막 제대한 오빠는 복학을 기다렸고. 그러니까 삼 남매 중 나만 유일하게 경제적 독립을 당한 상태였다. 섭섭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착한 딸 코스프레를 해야 하니까 얌전히 받아들였다.

 

 다행히 일반 대학원이라 수업이 평일 낮에 있었다. 나는 막연하게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그때 선배가 학원 강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나는 학원 강사 구인 사이트에 이력서를 업로드했다. 얼마 후 개포동에 위치한 논술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원장은 내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리고 비율제 월급에 대해서 설명했다. 나는 수강생이 몇 명 정도 되는지 물었다. 원장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한 반에 네다섯 명은 되지.”

 나는 돈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글 쓸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

 “우와, 저 세 반 정도만 맡아도 될 것 같아요!”

 두 반이나 세 반 정도만 맡아도 백만 원이 훌쩍 넘었다. 나는 그거면 충분했다! 는, 개뿔. 막상 학원에 나가니 수강생은 전부 네 명이었다. 나는 주 이틀 강의를 하고 월급을 24만 원 받았다. 아무리 아껴 쓴다고 해도 생활하기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나는 원장한테 학원을 그만 두겠다고 말을 했다. 원장은 선심 쓰듯 주 이틀 의에 5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국제중 입시까지 준비를 해주면서 50만 원을 받았다. 수업도 중간중간 더 개설되었는데 말이다. 나는 학원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집과 멀지 않은, 광흥창역 부근에 있는 학원을 구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국어를 가르쳤다. 그런데 첫 월급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나는 싫은 소리를 잘못해서 일단 기다렸다. 하지만 월급 날짜가 2주 넘게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나는 부원장에게 문자를 했다. 부원장은 그제야 나한테 정말 미안해하면서 월급을 줬다. 봉투에 현금을 넣어서. 나는 정말 괜찮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해서는 더럽게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했다.

 “아, 이번 달은 월급 두 번 받아서 좋죠, 뭐.”

 하지만 내 예상대로 될 리가 없었다. 월급은 점점 더 밀렸고 기어코 한 달을 돌았다.


 나는 화가 났다. 배고픔 참아 가면서 목이 터져라 수업을 하는데 대가를 못 받다니. 게다가 내가 가르치고 있는 원장의 큰딸은 보란 듯이 쌍꺼풀 수술을 하고 나타났다. 더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인터넷으로 밀린 월급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검색했다. 그리고 다른 강사들 두 명과 함께 노동청에 체불 진정서 접수를 했다.  

 원장이 노동청에서 우편물을 받았다면서 나를 불렀다.

 “애들한테 노동청 신고하자고 네가 나섰지? 한심해.”

 나는 다음 날부터 학원에 나가지 않았다. (새꺄, 내 돈 내놓으라고!) 노동청 직원이 원장의 상습 임금 체불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민사 소송을 해서 임금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별 성과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원장은 진정인과 피진정인 대면 조사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민사 소송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금액이 크지 않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장은 이미 밀린 월급을 주는 것보다 벌금을 내는 편이 더 이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냥 운이 나빴다고,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다시 학원 강사 구직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두 달 동안 논술 특강 제안이 왔다. 월급은 백만 원이었다. 하지만 학원이 있는 지역이 양주였다. 거리 빼고는 괜찮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양주에 있는 학원으로 출근했다. 원장은 사관학교 출신으로 전역하고 몇 군데 학원에 투자 중이라고 했다. 나는 출근 시간에 맞춰 학원 근처 지하철역에서 원장을 만났다. 말이 학원 근처 지하철역이지 학원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꽤 오래 이동을 해야 됐다. 그래서 원장의 BMW를 얻어 타고 학원에 갔다.

 

 원장은 첫 달 월급을 정확한 날짜에 지급했다. 그리고 월세를 지원해 줄 테니 학원 근처 아파트로 이사 오라고 했다. 원장은 나에게 무척 호의적이었다. 물론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지만. 얼마 후 원장은 K-POP에 푹 빠져서 한국에 왔다는 원어민 강사도 추가 채용했다. (20대 초반의 영국인으로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학원 강사 수도 꽤 되었고 나는 이 학원만큼은 믿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논술 특강이 끝나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날짜가 지났는데도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 원장한테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나는 유일하게 연락처를 알고 있었던 동료 강사한테 연락을 했다.

“선생님, 선생님 마지막 수업한 다음 날, 원장이 폐원해버렸어요.”

 이런 ㅈ 같은 경우가.

 “아무도 월급 못 받았어요. 아이들 학원비 환불도 안 됐고요.”

 나는 그제야 회식 때 원장이 넌지시 했던 말을 기억했다.

 “내 기대만큼 이 학원이 안 되네…….”

 아무래도 수익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발을 뺀 것 같았다. 쓰바시키.

 원장의 카카오 스토리를 보니 최근에 발리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모양이었다. 그놈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인터넷에서 엄청난 검색을 했다. 나는 BMW 카페에서 원장의 흔적을 찾았다.

 -우리 회원님들, 청담동 에스테틱에 제 이름 대시면 마사지 할인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원장의 카카오 스토리에 글을 남겼다.

- 강사들 월급 안 주고 그 돈으로 놀러 갔나봐요. 무척 즐거워 보입니다만.

 원장은 바로 카카오 스토리를 비공개 계정으로 돌려 버렸다.


 나는 양주 관할 노동청에 임금 체불 진정서를 접수했다. 그리고 진정인과 피진정인 대면을 위해 노동청으로 갔다. 조사관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하죠. 피진정인이 주소 불명으로 나와서요.”

 나는 역시 포기가 빨랐다.

 “그럼 월급 못 받겠네요.”

 당황한 조사관이 말을 더듬었다.

 “그게, 아, 저.”

 나는 양주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거야,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노동청에 신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목동에서 일했던 학원에서도 100만 원, 대치동에서 일했던 학원에서도 월급 일부를 받지 못했다. 원장의 인간성을 따지기 전에 망해가는 학원에 간 내 잘못이 컸다. 아, 망해가는 학원에 걸린 내 잘못이 컸다(?) 학원뿐만 아니라 최악의 인터뷰를 하고 쓴 잡지 원고료를 받지 못한 적도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원고료를 달라고 하지 않았으니 내 잘못…….) 내가 그들을 위해 몸 바쳐 일해 줄 이유는 없었지만...


 나는 오늘 가난의 이유가 나에게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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