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치명 Mar 26. 2021

성스럽지 못한

性7

 얼마 전  동성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를 제외한 그들은 동성애가 성적 취향이라고 했다. 나는 성적 취향일 수도 있지만 성적 취향으로 일반화 시키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타고나는 속성이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동성애는 단순하게 선택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엄청나게 까였다. 아니,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바꿀 수 있나, 성적 지향 정체성이란 것이.


 나는 V에게 참 미안한 일이 있었다. V가 이야기했다. "저 무성애자예요." 나는 V한테  시답잖은 위로를 건넸다. "아직 좋은 사람을 못 만나서 그래." 나는 무성애자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무성애자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면서 V에게 엄청난 폭력을 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성애자에게 가장 금기시되는 말이 아직 좋은 사람을 못 만나서 그래, 라는 것이었다.


 무성애자 역시 어릴 때부터, 아니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나는 성적 지향 정체성이었다. 유성애자들은 무성애자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참 많았다. 무성애자 범주도 워낙 다양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V를 위해 열심히 공부 중이다. 무지가 휘두른 경솔한 행동을 반성하면서.


 내 남사친 H의 휴대폰 배경 화면은 외국 남자 모델이다. H는 길에서 멋진 남자가 지나가면 설레한다. 나는 H,  내가 한국어를 가르쳐 주던 미국인 B와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H가 화장실에 가자 B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H는 자기가 게이인 거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나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본인이 알아서 잘 깨닫겠지, 그리고 게이이면 어떠랴.


 아,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여사친 R이 말했다. "나 여자랑 키스해보고 싶어." 나는 그날 밤 R네 집에서 자다가 깜짝 놀랐다. R이 내 팔을 베고 나를 껴안다시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심스레 R을 밀어냈다. 너도 이성애자인 나를 존중해줘야지.


 내 주변에는 양성애자들이 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A도 있고 부지런히 사랑 중인 S도 있다. 나는 나나 너나 행복하면 됐지, 주의자라서 A와 S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몇 년 전에 동화 계간지에 발표한 LOVE LOVE라는 작품은 한 여중생이 전학 온 다른 여중생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내용이다. 나는 심리 묘사가 좋다는 소수의 평가와 주인공들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다수의 평가를 받았다. 사실 다수의 평가는 표현을 순화한 것이지 극단적인 비난이었다. LOVE LOVE에 담아낸 이야기는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온 내가 경험하고 목격했던 일이다. 나와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지극히 정상인적으로 잘 살고 있는데 왜 함부로 판단하는 것일까.


 나는 성에 대한 스펙트럼이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이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니까. 내가 뭐라고, 당신이 뭐라고.

이전 06화 성스럽지 못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