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하고 싶은 것
얼마 전 나는 이 글을 통해 ‘회복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 마음은 여전하고, 그 상태도 비슷하지만 회복되고 싶다는 나의 열망은 더 커졌고 확실해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 회복되고 싶어 발버둥 치는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조금씩, 여유롭게 회복되고 싶다고 하면서도 나의 다급한 성격은 이런 것조차도 기다려줄 줄을 모른다.
이 모든 시기가 지나가고 또 행복에 겨워할 시간이 올 것이라는 좋은 생각을 하고 싶다. 내가 가진 작고 사소한 것들이 언젠가는 아름답게 반짝이는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는 좋은 생각을 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들도 언젠가는 모두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라는 좋은 생각을 하고 싶다. 정치, 경제, 사회 뉴스의 어느 면에도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그래도 희망을 발견하고 꿈을 꿀 수 있는 좋은 생각을 하고 싶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분열 속에서 비관하기보다는 평안과 평화를 꿈꾸며 언젠가는 또다시 그런 날 오리라 기대하는 좋은 생각을 하고 싶다.
매일 아침 성경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한다. 제대로 읽히지도 않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읽는다. 자기 전에는 인생의 모범답안을 이야기하는 유튜브 콘텐츠 몇 편을 꼭 본다. 걷는다. 수영을 한다. 잘 먹는다.
뭐 이쯤 되어 돌아보니 몸에 좋은 것, 정신건강에 좋은 것들을 스스로 아주 잘 챙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 마음에 쏙 들게 회복되었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매일매일 인생의 선배들이, 나보다 훨씬 성공한 사람들이, 위대한 철학자가, 건강에 대해 연구하는 의사들이 하라는 것들을 잘 챙겨서 하고 있는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얼마 전 환갑잔치를 했다는 백지연 아나운서의 유튜브 콘텐츠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인생에 정답을 찾고자 유튜브를 이리저리 떠돌다 보니 나의 알고리즘이 백지연 아나운서에게로 이끌려진 모양이다.
그 콘텐츠의 썸네일에는 [남자 잘못 만나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 망한 여자는 없다]라는 아주 자극적인 문구가 적혀있었고, 지금의 나에게는 강렬하게 시선을 끄는 문구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썸네일에 이끌려 들어가 보게 된 영상은 생각보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백지연 아나운서가 읽었던 책을 추천해 주는 영상이었는데, 이 글귀가 쓰인 책은 이옥선 작가의 「즐거운 어른」이라는 책이라고 했다. 썸네일의 자극적인 문구에 이끌려 들어온 콘텐츠였으나, 막상 이 영상을 보면서 설명을 곁들여 제대로 알게 된 이 문장에는 그리 감동받지 못했다.
오히려 백지연 아나운서가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해, 왜 좋은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회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나에게 꼭 필요한 어떤 것들이 숨어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
“내 신체 건강은 지난 5년 동안 내가 만난 사람의 결과예요. 그리고 내 정신적 건강은 지난 5년간 내가 만난 사람의 결과거든요. 누구랑 대화하는지가 중요해요. 물론 늘 좋은 사람과 좋은 대화를 할 수 없으니까 저는 책을 읽어요. 좋은 책과도 대화할 수 있어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내가 해왔던 회복을 위한 여러 가지 루틴들 속에서 빠진 부분들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나는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다. 그 친구들은 나에게 늘 좋은 대화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최근 나는 좋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둘 이상의 관계에서 나누어질 수 있는 대화에서 그 대화의 실패는 온전히 나의 탓이었다.
좋은 대화에는 진솔하고 우아한 내용이, 내용에 어울리는 적절한 소리가, 서로를 향하는 따스한 시선과 몸짓이, 그리고 그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는 귀 기울임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 친구들의 그 따스한 말들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내가 간절히 회복을 원하던 시기에 친구들은, 나에게 따뜻한 염려를, 차가운 조언을, 뜨거운 격려를 보내주고 있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이 나 혼자만의 세계에 푹 빠져버렸고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나를 아끼는 이들의 그 신호를 귀 기울여 마음속에 잘 담아두어, 그것을 나의 회복을 위한 밑거름으로 만들어 두었어야 했다. 좋은 대화를 했어야 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나는 늘 책을 읽고 있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필요한 책을 읽고 있지 않았다. 심연 깊숙한 곳에서 복잡한 생각만 해오던 사람이 뭔가 대단한 것을 깨달아 보겠다고 더 복잡한 책을 들고 앉아있었던 것이다. 복잡할수록 쉽고 단순한 이야기가 마음에 잘 전달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덮었다. 책 하나를 시작하면 어쨌든 책장의 마지막까지 읽어야 직성이 풀려, 완독을 한 후에야 다음 책으로 넘어가야만 한다는 체질의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잠시 멈춰보기로 했다. 쉽고 간단한 문장으로 나에게 ‘정신 차려라.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야 할 시간이 왔다’라고 말해주는 책을 만나보기로 했다.
나는 사실 “이렇게 살아야 해요. 이게 정답입니다.”라고 말해주는 자기개발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작가가 은연중에 던져놓은 문장들 속에서 내가 직접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읽었던 그런 자기개발서가 뭐가 있었는지 기억이 까마득하다. 그러나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책을 출간하고도 인세를 전혀 받지 않고 글을 배포하고 있는 ‘세이노’ 작가에 대해 이제서야 알게 되고 궁금증이 생겨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기 시작했다.
니체도 분명 나에게 그동안 글로써 귀감이 되는 좋은 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내 세계 속에서 그 글들은 전혀 소화가 되지 않았는 데, 세이노의 가르침은 회초리처럼 다가왔다. 따가웠고 매서웠다. 성공한 누군가의 그 잔소리가 듣기 싫어 자기개발서를 멀리해 온 나에게, 그래도 사람들이 왜 자기개발서를 읽는지, 그런 책들은 왜 계속 출판이 되어오고 있는지, 조금은 수긍이 되는 말들이 가득했다. 지금의 나에게 ‘세이노의 가르침’은 백지연 아나운서가 말했듯 좋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적절한 근거가 되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 자신과 좋은 대화를 하지 못했다. 이 대화가 어쩌면 가장 중요한 대화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들을 적어 내려가면서 나는 나와 대화를 시작하려 한다. 가장 고요하게 보내어야 마땅한 시기를 혼란으로, 눈물로, 제2의 사춘기로 보냈던 나와 가장 솔직하게, 그리고 가장 깊이 있기 대화를 시작해 봐야겠다.
그렇게 나는 나의 좋은 친구들과, 나의 삶에 영감을 주는 책과, 그리고 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결국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생각이 뭘까 싶기도 하지만, 결국 그 좋은 생각들이 5년 뒤의 나를, 10년 뒤의 나를, 그리고 먼 훗날 더 나이를 먹어 내 인생을 더 넓게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동안 내 삶에 좋은 친구들, 좋은 책, 그리고 매 순간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격려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었노라’ 기쁘게 고백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길 기대해 본다.
□ 여덟 번째 버킷리스트
하루에 하나씩 좋은 생각을 해보자. 좋은 생각은 감사하는 마음에서부터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하나씩 내 일상에서 감사할 것들을 찾아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