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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싶은] 인색하지'는'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네 번째 되고 싶은 것

by 정말로 Jung told

주변 사람에게 따뜻하고 여유롭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곳에 선전포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베풀겠다’라는 다짐은 너무나 거창한 것 같고 또 어찌 보면 지킬 수 없는 약속처럼 허황된 느낌이 들어 제목을 정하는데 나름 고민하였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저, 인색하지‘는’ 않고 싶다.


열아홉 살의 가을, 운이 좋게 대학교 수시모집에 한 방에 합격했다. 내가 지원한 대학은 수능시험에 대한 최저등급 기준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한 달 정도 이르게 먼저 수험생 신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나는 그 다음날 바로 아르바이트를 알아봤고 얼마 뒤 내 용돈 벌이는 내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이후로는 늘 내가 사용해야 하는 돈은 내가 벌어서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 말인즉슨 그날 이후 늘 아르바이트든 직장이든 벌이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2024년, 올해는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밥벌이를 하지 않는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물론 이것 역시도 나의 인생계획에 의해, 내가 내년부터 새로이 시작해야 할 과정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2년 전부터 각오하고 준비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날을 위해 차근히 계획도 세우고 조금씩 저금도 해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10년 이상 따박따박 내 통장에 들어오던 월급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현실은 생각보다 혼란스럽고 막막하다. 아무리 이 날을 위해 저금을 해뒀다지만 마이너스 밖에 없는 통장 내역에 깜짝 놀라기도, 가끔 충격적이기도 하다. 가끔 예상 밖의 커다란 지출은 더더욱 불안하게 한다. 12개월 정도를 버티고자 계획한 돈이 어쩌면 모자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여유 없이 누군가에게 쫓기는 기분이 든다.


긴축 재정이라고 하지만 사고 싶은 게 생긴다. 갑작스럽게 아파 쓸데없는 병원비가 지출된다. 생각지도 못한 학비, 수업료를 내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 친구가 결혼을 한다. 친구들이 여행을 가자고 한다. 스스로도 내 인생의 탈출구인 여행이 너무나 가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나에게 돈이 들어올 구멍은 보이지 않는데, 돈이 나갈 구멍은 한 두 개가 아니다. 그 구멍은 막을 수도 없다. 한 구멍을 겨우 막아보면 또 다른 구멍이 툭하고 터져 생겨버린다. 이러니 어느 순간부터 나라는 사람이 팍팍해지는 게 느껴진다.


늘 돈을 벌던 때는 지인들에게 “아, 오늘은 내가 밥살게.”라는 말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다. 늘 식사를 다 마치고 당당하게 계산대 앞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쭈뼛거리며 속도가 느려지는 내가 느껴진다. 친구가 계산하면 카카오페이에 딱 엔 분의 일을 하여 보내주는 게 마음이 편안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인색한 사람보다는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돌아보니 오히려 철없던 어린 시절에 나는, 경제관념이 없나 싶으리만큼 여유를 부려왔으나 꽤나 나이를 먹은 지금은 지갑을 닫고 여유 부릴 틈이 없다.


이런 2024년의 나는 여러모로 어색하고 씁쓸하다. 내가 원하던 모습의 나는 아닌 게 분명하다. 정말이지 인색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사람들에게 인색해 보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상관없이 나보다 한 살이라도 어린 동생, 후배들과 밥을 먹게 되면 지갑을 열던 그 헤픈 시절의 나로도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 중요한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나의 것을 기쁘게 아낌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생일을 챙기고, 그 사람의 크고 작은 기념일을 축하하고,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날은 가장 빨리 달려가 힘껏 위로해 주는 사람이고 싶다. 가득 기쁘게, 마음껏 여유롭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다.


아무 일도 없는 요즘, 나는 나 스스로에게 어쩌면 가장 인색한지도 모르겠다. 금전적으로는 늘 근검절약을 다짐하며 살아가고 있고, 1분 1초를 아껴야 내년에 내 삶이 조금은 더 나아져있으리라 생각하며 시간적으로도 누구보다 타이트하게 살아가고 있다. 11월 말로 다가와 있는 국시를 준비하고, 글을 쓰거나, 미래를 대비하여 이것저것 배우고 준비하며 나 스스로를 다그친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각박해져 있는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가 누구에게 여유를 베풀며 누구에게 인색하지 않길 기대하겠나 싶기도 하다.

나는 결국 믿을 구석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에게, 그리고 내 삶 속에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고, 합격하리라 믿고 있는 시험을 합격하고 나면 지금과 같지는 않겠지만, 그것 역시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니 막연히 믿고 맘 편히 있을 수도 없다. 아무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은 내 삶은, 다시 개척해 나가야 하는 내 삶에서 나는 허우적거리고 있느라 지금의 상황에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인색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결국 인색하지‘는’ 않은 사람이 되려면, 나 자신에 대한 자그마한 확신부터 가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분명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나에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달라질 것이다. 나아질 것이다. 잘할 수 있고, 또 잘하고 있다.”






나 자신의 마음 깊숙이 여유롭고 안정되어 있다면, 내가 노력하지 않더라도 인색하지‘는’ 않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보니 내가 노력한다 하더라도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는 순간들이 올 수 있고, 내 뜻과 다른 방향을 만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늘 품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지금하고 있는 최선에 대해 확신할 수가 없었다. 불안감 속에서 여유의 꽃은 피어나지 못한다. 여유의 꽃이 피어나지 않는 마음에는 인색함의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난다. 믿음의 제초제를 뿌려줄 필요가 있겠다.

“2025년의 나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나아질 것이다. 잘할 수 있고, 또 잘하고 있다.”


□ 아홉 번째 버킷리스트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예쁜 말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근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데 한참을 고민해 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말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내 머릿속을 아무리 뒤적여도 그런 말을 찾아내기 어려웠다. 예쁜 말을 하는 사람이 되자. 예쁜 말을 마음속에 많이 저장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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