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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싶은] 하루빨리 회복되고 싶어요

세 번째 되고 싶은 것

by 정말로 Jung told

짝사랑의 열병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던 짝사랑으로 인해 올해 여름은 나 스스로에게, 내 자아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다. 친한 친구들 앞에서 몇 번을 울었고 울먹였다. 돌아보면 이것은 짝사랑 실패라는 결과보다, 강한 척, 센척하며 살아온 내게 더욱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나는 무엇이든 확실히 알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가지고 밤낮 고민하고, 매일을 쥐고 놓지 못하는 체질인데, 짝사랑에서도 그랬다. 대충 눈치채고 ‘그러려니’하고 넘어가질 못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이성적으로 어필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했다.


그렇게 나는 그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된 이후, 2024년의 여름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짝사랑을 향했던 나의 시간이, 방법이, 그리고 노력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누구보다 함께 즐거워했던 그 사람의 목소리와 그의 말들이 함께 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쉽게 정리되지는 않았다.


인생에서 누군가를 향해 내가 이토록 노력한 적이 있었나? 아무리 떠올려봐도 나는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를 향해 이토록 노력한 적이 없었다. 이만큼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했고, 평소 ‘노력주의자’라고 자부하는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잘 풀리지 않은 이 짝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살아가며 한 번도 내 외모에 대해 불만을 가진 적이 없었다. 물론 예뻐서, 잘나서가 아니었다. 수려하게 예쁜 외모는 아니더라도 나는 내가 친해지고 싶은 친구를 사귀고, 적당한 호감을 주어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었고,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었으니 적당히 살아갈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큰 키에 훤칠하고 스타일이 좋은 여자가 이상형이라는 그의 말에 나는 그 실패의 원인을 내 외모로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짝사랑의 첫 번째 실패 원인을 나의 자그마한 키와 훤칠하지 못한 몸매,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던 외모, 수수한 스타일로 돌렸다.


나는 부유하지는 않지만 부족함 없이 자라 왔기에 내 가족과 나의 형편에 불만을 가진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빠의 빈자리는 있었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삶과 자녀들의 인생을 위해 최선을 다해 아빠의 빈자리조차 느끼지 못하게 밝게 나를 키워주신 엄마를 존경해 왔다. 그리고 나도 그 엄마의 끈기와 책임감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성인이 된 후 내 삶을 최선을 다해 꾸려나가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우연히 알게 되어 짝사랑하게 된 그 남자의 넘치는 부유함으로 인해, 나는 그의 부유함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이 짝사랑의 두 번째 실패 원인을 어쩌면 이러한 나의 부족함들을 들켜버렸던 것은 아닌지, 그와 나의 삶의 차이를 실감하며 나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느라 내가 더 콧대 높고 당당해지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내게 주어진 환경을 비하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 여름의 시간으로 인해 ‘나’라는 사람이 가졌던 나 자신에 대한 무한한 긍정을 잃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서의 라일리가 ‘불안이’로 인해 자아가 무너져 내린 것처럼 나는 ‘짝사랑’으로 인해 내 긍정적인 자아가 무너져 내려버렸다.


친구에게 내 짝사랑의 결론을 이야기하며, “결국 나는 그리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나 봐. 나 외모가 별론가?”라고 이야기하자, 어떤 친구는 “그렇게 생각하지 마. 너 진짜 괜찮아.”라고 얘기해 주었다. 또 다른 친구는 함께 울어주었다. “네가 가진 것을 그 이상한 사람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게 너무 속상하다.”라고 말하면서... 친구의 말에 나도 눈물이 펑펑 흘렀다.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빨리 회복되어야 한다.

이 감정, 이 생각, 이 태도를 오래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정신 차리고 내 삶을 살아가기로 결정한 이후 매일 거울 앞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있다. “치, 나 괜찮네. 예쁘네!”, “이 나이에 이 정도면 됐지 뭐.”, “오늘 화장이 잘 된 것 같아. 스타일도 괜찮은 걸?!”


그리고 나의 엄마, 나의 동생에게도 매일 미안하다 속으로 되뇐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며, 사랑과 정성을 쏟아준 사람들에게 몇 달간 내가 마음속으로 큰 잘 못을 했던 것 같아 미안해’, ‘결국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사람들인데, 비교하고 부족함을 느껴서 미안해’


그렇게 하루하루 나에게 다시 긍정을 채워두고 부정을 덜어내는 말과 생각들을 스스로에게 해준다. 완벽하게 회복된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조금씩 나아지겠지. 돌아가겠지.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하며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어보는 중이다.


그러다 며칠 전 한때 교회를 함께 다니며 서로의 일상과 신앙을 나누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몇 년 만에 만나도 변함없는 내 모습을 보고 이구동성으로 “어쩜 이리도 안 늙었니?”, “여전히 날씬하게 자기 관리를 잘하고 있구나!”, “분명 예전에 너 좋아하는 남자애들 정말 많았을 거야.”라고 말하며 칭찬을 늘어 놓아주었다. 분명 형식적인 칭찬일 수도, 기분 좋게 해주려고 하는 빈말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순간 알게 되었다. 내 주변에는 이렇게 나의 사소한 장점들을 아주 예쁘게 해석해 주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이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사소한 장점을 더욱 빛나게 느끼게 하는 사람. 나를 초라하지 않게 만들어주고 빛나게 해주는 그런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그 모임에서 점심식사를 함께하고 커피를 한 잔 하며, 진지하게 그동안의 근황을 나누다 보니 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언니, 지선이 알죠? 걔가 얼마 전에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교회 다니면서 가장 좋은 영향을 받고 많이 배운 리더가 바로 언니래요.” 평소에 자주 언급되지 않았던 이름이 나타나자 순간 그 아이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교회를 다니며 그리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던 아이였는데, 그런 아이가 지금은 그 교회에 나타나지도 않는 나를 떠올리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그 말을 곱씹고 또 곱씹어보았다. 내가 교회에서 리더라는 역할을 맡고 보내왔던 시간들도 오랜만에 추억하게 되었다. 신앙심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애써왔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나라는 사람에게 어떠한 의미를 끼쳤는지 계산해오지 않았던 시간이었는데, 문득 나의 자아가 흔들린 이 타이밍에 우연히 들려온 그 이야기는 나의 자아를 다시 세워두기에 적당한 거름이 되어주었다.


그래,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비참하게 여길 필요도 없겠다. 그 한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써왔던 시간들로 인해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것을 잊고 있었다. 나를 좋은 사람이라 여겨주는 사람들, 내가 여러 가지 이유로 좋아하는 사람들, 나의 긍정적인 면들을 발견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 나는 그런 좋은 사람들을 아주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다시 에너지 넘치고 긍정적인 나로 돌아가야 한다.

더 늦지 않게, 그렇지만 천천히 제 속도로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면서 이 시간을 통해 더 단단해져야겠다.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도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보면 아직 멀었나 보다. 그러나 회복하겠다는 조급한 마음보다는 천천히 더 신중하게 이 시간을 보내봐야겠다. 어쩌면 내가 이전에 알고 있었던 ‘긍정적인 나’의 모습보다 더 세밀하게 나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며 더욱 분명하게 나의 모습을 알게 되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떤 어려운 일에도 무조건적인 긍정이라는 이름의 메시지를 더하여 가끔은 억지스러운 파이팅을 해가며 살아왔던 나도, 이 기회에 새로운 페이지를 맞이해야 할 것 같다. 받아들이기. 나의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지금의 나에게 진정한 회복이 찾아오고 또 진정한 의미의 긍정적인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일곱 번째 버킷리스트

□ 연약한 나의 모습을 마주하고 나 스스로 쓰다듬어주자. 결코 강하지만은 않은 나를 인정하고 더 강해져야 한다는 마음보다는 스스로를 위로해 주자. 온 마음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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