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하고 싶은 것
나는 아직도 무엇이 옳은 건지 모르겠다. 하나의 분야를 집요하게 파헤쳐서 오래, 그리고 끈질기게 그 분야의 장인이 되는 것이 옳은 걸까? 이것저것 다방면으로 관심을 가지고 적당히 잘 해내며 다양한 영역에서 재능을 보이는 만능재주꾼이 되는 것이 옳은 걸까?
자연스럽게 한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던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회사 내규로 정해져 있는 65세 정년까지 꽉꽉 채워 그 분야에서 정통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미덕이라 여기며 살았다.
그러나 내가 근무했던 분야는 분명 명확한 자격을 가지고 나름의 전문성을 가지고 일해야 했지만, 그 전문성을 발휘하여 일할 때는 엄청난 융통성과 다양한 분야의 능력이 요구되기도 했다. 그래서 전공의 실천뿐만 아니라 적당히 상담도 잘했어야 했고, 회사 업무에 필요한 회계 업무도 적당히 할 줄 알았어야 했으며, 다양한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엑셀이며, 파워포인트 등의 컴퓨터 능력은 물론이고 회계프로그램, 간단한 포스터 정도는 만들 수 있고 다양한 상황에 맞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창의적이고 계획적인 능력도 요구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고, 이것도 저것도 모두 잘 해내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담을 잘하기 위해서 상담을 더 공부해보고 싶었고, 상담을 하다 보니 사람의 기본적인 마음과 생각을 알고 싶어 구체적으로는 임상심리학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간단한 포스터를 만들면서 사소한 재미를 느꼈더니 포토샵을 배우게 되면 좀 더 깔끔하고 다양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포토샵이나 인디자인을 배워서 좀 더 훌륭한 작업들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맡게 되면서는 엑셀을 잘하고 싶었던 것은 물론이고, 숫자를 계산하며 딱딱 떨어지는 일의 재미를 느끼게 되면서 이왕 이런 일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으니 전산회계 자격증이나 따볼까? 하며 다방면에서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적당히 해낼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배우고 싶고, 좀 더 잘해보고 싶었던 나는 인생에 큰 변곡점을 맞게 되었고, 결국 이도저도 아닌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삶을 원하고 살아내고 싶었던 걸까?
새로이 선택한 전공은 상담도 아니었고, 임상심리도 아니었으며, 포토샵을 배우거나 전산회계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과정이 아니었다. 제3의 길. 내 친구들에게도 뒤늦게 이 사실을 알렸을 때는 하나같이 다 비슷한 반응이었다.
“네가? 갑자기? 왜 잘하다가, 그쪽으로 가게 된 거야?”
그렇다. 잘해왔던 것을 갑자기 그만둔 것도 맞다. 내 속에 있었던 자그마한 열망들을 모두 끄집여 내보이지 않았으니,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 나는 10년 동안 잘해오던 것을 무모하게 그만두고 새로운 길로 들어선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내가 다시 선택한 분야는 이전의 직업보다도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그런 분야에 뛰어들기 위해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대학원 수업과 병행하여 학부 수업도 듣고 3학기 동안 길고 긴 실습과정을 거쳤으며,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이제는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학위 논문도 한 권 완성하여 제출했다. 그리고 얼마 전 그 긴 과정에서 드디어 졸업했다.
졸업 전, 마지막 실습 과정에서 내가 속한 실습 그룹에 임상미팅을 담당해 주셨던 교수님은 학생들 모두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이 과정을 모두 마치고 자격까지 취득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이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다음 주까지 생각해서 우리 마지막 시간에 함께 나누어 봐요.”
그렇게 과제를 받았고, 나는 일주일 동안 이 분야에서 어떤 사람으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싶은지 골똘히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고민되었다. 나는 장인이 되고 싶은가? 만능재주꾼이 되고 싶은가?
그 두 가지 기로에서 답을 찾지 못했더니, 더 세부적인 답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나는 도대체, 왜, 하나의 과정에서 내 모습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그 과정만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일까? 왜 나는 이것저것 다 잘 해내고 싶은 걸까? 욕심이 많아서인지, 자신이 없어서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뚜렷한 답을, 그럴싸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임상미팅에 참여했다. 교수님은 마지막 수업을 진행하며 여지없이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질문했다. “이 분야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차례차례 진행된 그 질문에 대한 각자의 대답이 오갔다. 사실 함께 임상미팅에 참여한 그룹원들의 대답도 그리 매력적이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도 그냥 대충 대답하고 넘어가야겠다 싶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뾰족하게 생각나지 않은 나의 그 목표와 꿈에 대해 동글동글하게 풀어 이야기하였다. 그러다 불쑥, “교수님, 그런데 저는 사실 나중에 임상심리사 자격도 갖고 싶어요. 지금 이 분야에서 조금 자리 잡고 나면, 임상심리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 다시 심리학 대학원에 가서 공부해볼까 싶어요.”라고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가 새어 나와버렸다. 나는 또 괜한 이야기를 해버린 내 입을 탓하며 급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교수님은 다른 어느 때보다 눈빛을 반짝이며 기쁘게 웃어 보이셨다.
“우와, 진짜 좋은 생각이네요. 저도 이 분야에서 여러분보다 먼저 현장에서 일해오면서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쳤지만,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건 진짜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임상심리사 자격을 취득하는 게 어려운 과정이라는 거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자격까지 얻게 되면 진짜 이 분야에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대상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 말에 힘을 얻어 나는 내가 그동안 깊이 고민했던 말을 꺼내놓아 보았다.
“그런데요. 교수님, 사실 제가 학부를 졸업하고 10년간 일했던 전공을 바꿔서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는 게, 그리 전문가 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많아요. 그런데 또 제가 이 일을 하다가 임상심리사 자격을 위해서 공부를 한다는 게 이 분야에서 마저도 전문성을 쌓는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비칠까 봐 망설여지더라고요. 차라리 이 분야에 대해서 박사학위를 받거나 하는 게 좀 더 전문가로 보이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학부를 졸업하고 10년간 해왔던 일이 지금의 분야와 다르긴 하지만, 분명 앞으로 현장에 나가서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한 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어떤 일에 대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것도 분명 필요한 일이죠. 그리고 특히 앞으로 임상심리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다는 접근은 우리처럼 사람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고 이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분명 도움이 되고 필요한 공부인 것 같아요. 그 공부를 한다고 해서 전문성이 부정되기보다는 어떤 방법으로 이 일을 마주하고 싶은지 오히려 분명해 보이는 걸요.”
교수님의 피드백을 통해 왜 내가 이것저것 다 잘 해내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이유는 여전히 찾지는 못했다. 욕심이 많아서인지, 자신이 없어서인지. 그렇지만 그것이 틀리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은 발견한 것 같다. 나는 아마도 내 커리어가 완벽하게 끝이 나는 어느 날까지 그 무엇에도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을 것만 같다.
내가 늘 장인이 되기보다는 만능재주꾼이 되겠다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것의 이유는 여전히 모를 일이다. 또한 그것이 옳았던 건지, 옳지 않았을지 역시도 알 수 없다. 그것은 아마 그 커리어가 끝나는 어느 날이 되어서야 나는 담담히 그 결과에 대해 판단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욕심과 자신 없음으로 인해 나 자신을 괴롭히며 살았다 할 수도, 커다란 성취를 얻게 되었다고 고백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확실한 믿음은 내가 내 삶의 어느 순간에도 부지런하고 꾸준하게 무언가를 해내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생의 모든 선택의 순간과 실행의 순간에서 나는 늘 장인이 될지, 만능 재주꾼이 될지의 기로에서 고민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길이든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섯 번째 버킷리스트
□ 만능재주꾼으로 제대로 살아남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