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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싶은] 단순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두 번째 되고 싶은 것

by 정말로 Jung told

엄마는 내가 태어나서부터 그렇게나 많이 울었다고 한다. 여섯 살이 되어 유치원을 보낼 나이가 되었을 때까지도 잠시도 엄마의 곁에서 떨어지지 못했고, 잠시 엄마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돌아왔을 때는, 나는 늘 집안이 떠나가도록 울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어릴 적 왜 그리도 울었을까?


엄마는 늘 날더러 예민하다 했다. 뭐가 그리 맘에 들지 않았냐고. 마흔을 앞둔 나는 그 어릴 적 내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어린 나를 조금이나마 이해해 보려 노력해 보았다.


“생각이 너무 많았나 보다.”

“뭐가 그리도 불안했을까?”


태어나자마자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했을 어린 나는, 예나 지금이나 생각이 너무 많았을 테고 어딘가 모르게 불안했으리라. 그래서 힘껏 울어보았고 쉽게 짜증을 내보았겠지. 해결되지 않는 불안과 계속해서 피어나는 생각은 어린 나를 계속 괴롭혔을 것이다.


생각은 거듭될 때마다 복잡해진다. 생각을 멈추고자 노력하는 것은 다리 하나로 온몸을 지탱하며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보다 힘들다. 그걸 모르는 어린 나는 생각을 멈추려고 노력하지도, 자꾸만 피어나는 생각들을 긍정적으로 다듬기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지금에서야 그때의 나를 헤아려 이해해 본다.

뭐가 그토록 불안했을까?

내가 뜨끈한 열기를 잊고 잠깐 잠들었던 여름날, 엄마는 이웃들과 아랫집에 모여 신나게 고스톱 한 판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사이 잠에서 깬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졸지에 엄마가 사라졌다.


‘엄마가 없다’, ‘엄마는 어디로 갔지?’, ‘엄마가 어디에 나가서 무슨 일이 있으면 어쩌지’, ‘영영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그렇다면 나는 이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건가’...

미숙했던 내게서 피어나는 생각들은 아름답지 못했다. 어두컴컴했고 무척이나 외로웠고 괴로웠다. 나를 어린 나의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곳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나는 여지 없이 그 생각 가장 무서운 골짜기 어딘가로 끌려가는 바람에 금방 눈물이 났고 금세 서러워졌다.

잠이 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었다. 잔잔했던 울음바다는 점점 커지더니 커다란 폭풍이 되어 엄마가 머물던 아랫집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서둘러 돌아온 엄마는 따뜻하게 나를 폭 안아 다독여줬다. “괜찮다. 괜찮아. 엄마 여기 있잖아.” 그 세 마디 말에 폭풍은 잠잠하게 잦아들었다.


그래, 사실 괜찮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눈물 많은 내게 엄마는 꾸준히 이 세상이 괜찮다는 걸 알려줬지만 나는 그 사실을 쉽게 믿지 못했다.


왜 그토록 믿지 못했고, 왜 세상은 그리도 두려운 일만 가득하게 보였던 걸까?


나 스스로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게 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은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막연히 찾아오는 불안한 감정들, 답답한 마음들에 대해 어찌할 줄 몰라서 생각의 생각에 꼬리를 물다가 밤잠을 이루지 못하던 날들이 많았고 자주 예민해졌다.


중학교 시절까지도 친구와 벌어진 크고 작은 문제들, 학교생활을 하며 기대보다 잘 해내지 못하는 상황들, 남들처럼 사춘기가 찾아오고서는 이유도 모를 그 막연한 불안감까지도 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내 마음속 깊은 이야기는 내 안에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야 밖으로 꺼내놓는 습성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막연함 불안감이 사춘기 시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도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로 고등학교에 입학해 친구 한 명을 만났다. 예쁜 얼굴에 밝은 미소가 예쁜 친구였다. 정말 티 하나 없이 맑은 느낌의 첫인상이 아직도 잊히지 않은 고운 친구였는데, 어떤 이유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정말 한 순간에 금세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금방 나에게 자신이 겪어온 가장 슬픈 이야기들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나에게도 비슷한 슬픈 이야기가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감추기 급급했을 뿐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지내왔는데 그 친구의 자기 고백으로 인해, 나는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들을 공유하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내 인생 최초의 슬픈 삶의 고백이 되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말한 이후부터 나는 내 마음속 깊은 곳의 불안의 원인을 알게 된 것 같았다. 꽁꽁 숨겨두고 혼자 전전긍긍하던 것을 세상 밖으로 꺼내놓은 다음부터 그리 불안하지 않았다.


우리는 학교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웃고 떠들고 즐거웠다. 그 친구는 여전히 정말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둘이 있을 때는 각자의 슬픈 이야기를 공유했다. 17살의 봄, 그리고 초여름까지 나와 그 친구는 단둘이서 정말 많이 울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었고, 내 이야기를 하며 울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울고, 그 친구의 방에 마주 앉아서도 울었다. 서로에 대해 정말 많이 공감해 주었고 또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했다. 그러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1학년 2학기가 시작될 무렵 또 다른 문제로 새로이 생겨난 슬픈 사연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전학을 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를 때까지, 내가 전학을 오기도, 친구들이 전학을 가기도 했지만,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이유로 그렇게나 슬프게 오래도록 펑펑 울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4개월 정도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이고, 지금은 연락조차 되지 않지만 내 기억 속에 그 친구가 이리도 오래 남아 있는 것은, 그 친구로 인해 나는 내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내 상처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그 고등학교 시절의 미숙한 나이를 한참 지나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하며 또다시 드러낼 것은 드러내야 하고, 감춰야 할 것은 또 철저히 감추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온전히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고 속 시원히 울어 보이기보다는 단단해져 스스로 감당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17살부터 시작되어 약 20년가량 쌓여있는 내 안의 어떤 응어리들이 다시 자리 잡기 시작한 것 같다. 때로는 답답한 구석 한편에 원인 아는 것들과 원인 모를 것들이 뒤엉켜 자리를 잡아버린 듯하다. 원인을 아는 것은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나 스스로 깎아내고 견뎌내고 해결해 내면 되겠지만, 원인 모를 것은 또 어떤 한순간 내가 만나야 하는 사람과 겪어야 하는 상황들을 통해 어느 순간 쓸려내려 갈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런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 말고 좀 더 단순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좋으면 좋은 것으로, 싫으면 싫은 것으로, 어떤 상황과 관계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둘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답답함의 이유는 뭘까? 내 마음속을 복잡하게 어지럽혀 놓고 사라진 그 사람 때문일까? 그 사람이 나에게 왜 그랬는지 알게 된다면 속이 시원해질까?

삼십 대 후반에도 여전히 어지럽고 자리 잡아 두지 못한 내 삶 때문일까? 시간이 지나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제대로 하게 된다면 이 답답함이 사라질까?

아니면 진짜 이도저도 아닌 원인 모를 이유들 때문일까?


모든 것에 이유를 알고 싶어 하지 않고, 무던하게 지나가는 것은 지나가는 데로,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는 데로, 그냥 내버려 두고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떻게 하면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다섯 번째 버킷리스트

□ 단순하고 즐겁게 사는 사람들을 통해서 배우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태도를,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다루는 방법을 찾아내보자. 오늘부터 ‘노홍철’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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