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사다리를 이용하여, 그 계단을 타고, 기간, 시기, 시대, 세世 같은 순간을 오르내릴 것입니다. 저를 부르는 것, 자석처럼 꼼짝달싹 못 하도록 저를 끌어당기는 것, 제가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을 향해서요"
-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엘렌 식수, 신해경 옮김. 밤의책 17.p
사다리에 대한 은유를 읽자니, 어린 시절의 몇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예닐곱 즈음 살던 집은 언덕 위에 나란히 놓인 십여 채의 주택 중 한 집이었다. 하루는 저녁을 먹고 전깃불을 끄고 창문을 열어두었는데, 푸드덕거리며 박쥐 한 마리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가 빗자루를 들고 쫓아내셨는데, 보고 싶었으나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박쥐라는 존재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다음날 두근대는 가슴으로 집 근처를 샅샅이 둘러보며 박쥐를 찾다가 높은 지붕 아래의 창문에 검은 얼룩이 붙어 있는 걸 보게 되었다. 박쥐는 혹은 박쥐 가족은 분명 거기에 살 거라고 그때부터 굳게 믿었다.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 바로 위에는 드넓은 다락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높은 다락의 벽면에 덩그러니 출입문이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사다리가 없었기에 올라갈 수 없었고, 갈 수 없는 곳이었기에 꼭 들어가 보고 싶었다.
삼사 년이 지난 다음, 어머니가 시장에 가실 때마다 동생과 나는 다락에서 놀았다. 지금은 쓰지 않는 오만가지 신기한 물건들이 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심 있던 공중의 출입문 아래쪽에 얼마 전에 산 커다란 냉장고 박스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 박스를 밟고서 올라가 문을 열고 다락 위의 다락으로 처음 올라간 것은 동생이었다. 나는 올라가느라 한참 애를 먹었다. 동생이 다시 내려와 엉덩이를 밀어 나를 올려주었다. 가까스로 올라간 그곳은 잡동사니 가득한 시끄러운 다락과는 다르게 참으로 고요한 곳이었다. 지붕이 ㅅ자로 갈라지는 바로 아래였고, 커다란 간유리 창이 있었고, 거기로 들어오는 빛이 떠다니는 먼지를 비추고 있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과 벽, 마감되지 않은 짓다만 집 같은 날 것의 느낌, 그곳엔 대여섯 장의 얇은 스티로폼이 침대처럼 포개져 놓여있었다. ㅅ으로 갈라지는 부분 바로 아래는 당시 어린이였던 우리가 겨우 서 있을 정도의 높이였고, 다른 곳은 신경 써서 고개를, 몸을 숙여야 천장에 닿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 창문에 붙어 있던 것이 박쥐가 아니라 어두운 페인트 자국인 걸 확인하고 나는 실망했다. 그러나 하루종일 일에 지친 소공녀 세라가 들어와 금방 잠들었을 것 같은 방, 파트라슈와 네로가 서로를 위하며 살 것 같은 다락방. 어떤 이야기가, 사건이 막 펼쳐질 것 같은 그 공간이 좋아서, 동생과 나는 자주 그곳을 들락거렸다. 스티로폼 침대에 누워있으면 등과 다리가 금세 따스해졌다. 거기서 아무도 모르게 살고 싶었다.
아빠 엄마의 옷을 꺼내 입으며 패션쇼 놀이를 하다가 주머니에 동전이 있는 걸 발견하고, 발 빠른 동생이 뛰어가 평소엔 허락되지 않는 불량식품을 사 온 적이 있다. 아폴로라는 노랗고 빨간 5-6센티미터쯤 되는 가느다란 대롱에 들어있던 불량식품, 학교에서 아이들이 난로에 구워 먹기도 하던 쫀드기, 2개에 10원이던 사각 비닐에 포장되어있던 딸기맛 젤리 같은 것들. 다락방에서 몰래 불량식품을 먹으며 창문으로 저 멀리 엄마가 버스에서 내리는지 아닌지 지켜보았다. 보고 싶은 엄마를 기다리면서, 그러나 엄마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엄마가 조금 더 천천히 오길 바라면서.
우리는 점점 자랐고, 우리가 밟고 올라서던 냉장고 박스는 점점 찌그러지며 낮아지다 결국 납작해졌다. 어느 날부터 출입문 손잡이에 팔이 닿지 않아 그곳에 올라갈 수 없게 되었고, 서서히 다락방을 잊게 되었다. 이사하기 직전 내가 훨씬 커졌을 때 사다리를 끌어다 놓고 마지막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다(지금도 처음 그곳을 올라갔을 때의 충격과 마지막 날의 기억이 동시에 떠오른다). 바닥에는 어린 우리가 먹다 버린 불량식품 껍질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동생과 나눈 말들이 고스란히 남아 조잘대는 것 같았다. 엄마를 기다리다 후다닥 내려갔을 마지막 날로부터 시간이 멈춘 것 같던 그 장면이 이상한 울림을 주며 마음에 오래 남았다. 다락방, 이란 단어가 주는 낭만이나 비밀스러움은 여전히 나에게 소중하다.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을 읽으며 이 사다리를 타고 어떤 '기간, 시대, 세상', 기억과 마주치고 재회하게 될는지 궁금해진다. 혹은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방식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려나. 저자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거의 읽어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책 읽는 동안 열심히 저자가 소개하는 세 개의 강연에 참여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