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만큼이나 혐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혐오가 사랑의 일부이기 때문이지요. (…) 우리가 사랑-혐오해야 하는 이 이상하고 상호 배치되는 관계를 이해하려면 개가 필요합니다. (…) 개의 위협은 그 끔찍한 사랑입니다. 대부분은 사랑으로 똘똘 뭉쳐 있지요. 이 무한하고 완전하고 끝없이 베푸는 사랑이 인간에게는 버겁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그 반대의 것이 섞인 혼합물입니다. 포는 이 점에 관하여 <검은 고양이>를 썼습니다. 고양이의 사랑이 너무 무한해서 화자가 고양이를 미워하게 되는 거지요.개를 만나면 여러분은 불현듯 사랑의 심연을 보게 됩니다. 그처럼 무한한 사랑은 우리의 질서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그처럼 솔직한 관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90-91.p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엘렌 식수, 신해경 옮김, 밤의책.
지난주 오랜만에 만난 N의 친구 S가 세 살짜리 개를 데려왔다. 지금은 근처에서 지내며 매일 오후와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낸다. 데려온 회색 푸들의 이름은 깜찍하게도 '기타'다. 얼마나 영리한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애교 많은 기타가 떠나고 나면 무척 보고 싶을 것 같다.
S는 5년 전 기타와 음악을 사랑하는 연인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떠나보냈다. 장례 과정에서 재산에만 관심 있는 연인 가족들의 횡포에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것 같다. 그 무렵 N과도 오해가 생겨 누구도 만나지 않고 (어쩌면) 죽기만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그를 살려낸 게 바로 저 자그마한 강아지 기타다. 무녀리로 태어나 원숭이 닮았다는 얘길 들었을 정도로 참 못생겼다던 강아지, 그 강아지 한 마리가 온몸으로 사랑을 원하고, 요구하고, 사랑에 반응하고, 사람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다시 사랑으로 가득 차게 해 준 모습을 보며 놀랄 수밖에 없다. 지금도 밤늦게 술을 마시고 있으면 처음엔 제법 의젓하게 기다려주다가, 밤이 깊어지면 코끝으로 등이나 팔을 콕콕 두드린단다. 그럼 돌아보며 기꺼이 술상을 치울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난 개나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할 일이 많아진다, 끝까지 책임질 수 없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만 9년을 같이 살다 보니, 이 녀석들이 주는 사랑의 크기가 내가 제공하는 잠자리나 먹거리에 비할 수 없이 무한하고, 거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직 현재에만 살고, 엄마(혹은 집사)를 언제나 기다리고, 어떤 일에도 무한 신뢰하고, 서운하게 하거나 좀 부족해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오직 사랑만을 주는 존재들. 어떤 인간에게서도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을 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개와 고양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겐, 실재하지만 교류가 없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존재, 나에게 기대는 유일한 생명,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인용글의 마지막 세 문장을 발견하고, 개와 고양이를 혐오하고 학대하는 사건과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건 타인을 생명으로 존중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심지어 없애야 할 세력으로 규정하고 혐오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에 역시 세상 모든 사건의 근원에는 '사랑'이 존재하거나 혹은 부재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단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