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풍경이 되기까지

by Soopsum숲섬


초등학교 6학년 때 잠깐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서너 달쯤 미술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미술 선생님은 별말 없이 스케치하고 수채화 그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지평선이 있고, 한가운데로 곧게 뻗어나가며 좁아지는 길이 있고 양쪽으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하늘이 맑은 풍경화를 매일 한 장씩 수십 번은 그린 것 같다. 옅은 노랑이 섞인 연두로 나무의 잎 부분 전체를 칠하고 초록색으로 나뭇잎의 생생함을 더하고 얇은 붓을 들어 가장 짙은 초록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나무의 두꺼운 가지와 땅, 하늘과 그림자도 마찬가지였다. 서너 가지 농도의 물감을 만들어 빛의 세기를 표현해 주었다. 물감도 물통도 이젤도 팔레트도 앞치마도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의 모습도 신기했기에 매번 첫날인 듯 낯선 기분으로 학원에 가던 기억이 난다.


운 좋게 군에서 진행하는 그림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앉은자리에서 보이는 근사한 산과 벽돌집과 멀리 떨어진 건물 한 채의 풍경을 그리려고 연필로 스케치를 시작한 나에게 학교 선생님이 다가와 말했다. 너 뭐 그리려고? 매번 연습하던 거, 그거 그려. 그리하여 툴툴거리며 매번 그리던 수채화를 그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대회를 위한 속성반으로 학원을 다녔던 것도 같다. 아무튼 더는 그림 그리기가 재미있지 않았다.


지금도 눈감고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그 풍경을, 삼십 대 중반 여행 중이던 쨍쨍한 여름 오후에, 우연히 뒤를 돌아보다가 발견했다. 주변의 소리가 잦아들고 홀로 어린 시절 내가 그린 그림 속으로 들어와 있는 이상한 기분. 길은 먼 소실점을 향해 뻗어있고 옅은 바탕색 위에 본래의 가지 색, 잎사귀 색, 하늘색, 구름의 색, 땅의 색이 펼쳐졌다. 짙은 그림자가, 그 위에 가장 짙은 그림자가 내가 그리던 것 이상으로 섬세하게 수천 가지 농도와 빛깔로 펼쳐져 반짝이고 있었다. 가로수들은 그림보다 키가 크고 늘씬했지만, 그때야 내가 배운 그림이 누군가의 현실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아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풍경을 처음 보고 그린 사람에겐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을 만큼의 감동이 있었을 텐데, 그걸 억지로 따라 배운 내겐 전혀 전해지지 않은 무엇,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하고 잃어버린 그 무엇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기억에 남을 만한 기쁨, 고통, 슬픔과 서사를 기록한 모든 결과물이, 우리가 보는 글과 그림, 영화, 다큐멘터리, 음악, 사진, 미술, 무용 등의 형식을 가진 예술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살아가는 우리의 하루하루가 좀 더 특별하게 기념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의식적인 모든 행위가 다름 아닌 예술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문학의 세계에서 어떤 위대한 작가들의 이름은 그 자체가 깊이 있고 향이 있고 그림자마저 갖는 위대한 대명사로 느껴진다. 이제는 좋아하는 책에 인용된 문장 한 줄을 이해하고 싶어 기꺼이 작가의 눈과 마음이 오래 응시했을 책을 찾아보게 된다. 한 단락이 몇 개의 개별적인 사건의 나열만이 아니라, 그렇게 쓰기까지 영향을 주고 화학 작용을 일으킨 작가의 시선, 사건, 시대적 배경과 인물들을 깊이 알고 싶은 마음으로까지 자연스레 이어진다. 책 속의 문장들이 지금 촬영하고 있는 영화처럼, 아니 눈앞의 현실로 살아나고 북적이고 이어질 때 나도 부피를 갖고 살아 숨 쉬고 세계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생명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같다. 책장에 시간이 지나도 읽지 못한 여전히 낯선 책들이 있다. 그들이 읽히길 오래 기다려온 것처럼 나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무척 오랫동안 그들을 만나게 되길 기다려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