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N이 봉숭아 물을 들였다. 잠들기 전 봉숭아를 찧어 손톱에 올리고 곱게 싸매고 잤는데 아침이 되니 짠, 진하고 곱게 물들어 있는 손톱이 보기 좋았다. 어렸을 때 하고 처음 하는 놀이라 꽤 즐거웠다. 손가락 가에 든 붉은 물이 다 빠지고 예쁜 손톱의 붉은 색만 남은 걸 보니 나도 할 걸 그랬나 싶고 자꾸만 눈이 갔다. 결국 어제 산책길에 봉숭아꽃과 잎을 따왔다. 나이가 이렇게 들었어도 열 손가락을 싸매고 있으니 내일이 빨리 오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산책길에 만난 친구 B도 합세해 양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두 개 씩을 물들이기로 했는데 꽃잎을 빻으며 N이 어릴 적 얘길 해준다. 나 애기 때 언니들이 봉숭아 물이 첫눈 올 때까지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 하더라, 그래서 첫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기다렸어, 애기인데도, 라고. 기억난다, 나도 어릴 때 들어본 적 있다. 지금 아이들도 그런 얘길 들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믿을까?
너무 설렜는지 새벽 3시에 잠이 깼다. 손가락은 둥둥 싸매져 있고 조금만 움직여도 바삭 바사삭 비닐 소리가 나서 살짝 주방으로 나왔다. 왜 이리 아침이 멀지, 생각하는 건 오랜만이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아침을. 아니 첫눈을.
8시가 넘어서 감싸맨 비닐조각들을 풀고 손을 씻었다. 그런데 이게 뭐지? 손톱이 왜 이리 옅은 색이지? 손톱 가장자리는 제법 붉었으나 가운데는 약간 붉은 기만 돌다 만다. 맞아! 원래 이랬던 것 같아. 그래서 꼭 두 번씩 물들였었지. 실망은 잊고 다시 기다린다. 오늘 밤 한 번 더 봉숭아꽃을 따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