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마음

by Soopsum숲섬


이웃에 사는 친구 B가 분이 뽀얗게 난 잘 익은 박을 안고 왔다. 박이 어찌나 컸던지 자기 혼자 먹을 부분을 잘라 두고 나머지를 준 것인데도 며칠 동안 먹기에 충분했다. 도톰한 초록 껍질 속 살이 꽉 찬 흰 호박처럼, 갓 딴 싱싱한 참외처럼, 수분이 많고 단단한 박은 달지 않은 특유의 향이 있었다. 칼로 크게 네 등분해 자르고 숟가락으로 노르스름한 씨가 박힌 속을 파냈다. 그중 하나를 반으로 잘라 요리했다. 고민이 많았다. 세상에는 나 모르는 수많은 방식의 박 요리법이 존재했다.

박은 무와 비슷한 방식으로 조리하면 된다. 무보다 순하고, 수분이 많고, 맹숭맹숭하다. 표고버섯과 납작납작 썬 박을 넣고 박국을 끓였다. 참기름을 둘러 버섯과 박을 볶다가 멸치육수를 붓고 바글바글 끓을 때 마늘과 홍고추 몇 점, 국간장, 대파를 넣었다. 나머지 절반은 굵게 채 썰어 찜기에 올려 살짝 찐 다음 된장과 들기름, 다진 마늘과 효소를 넣고 무쳤다. 맛있다 맛있다 하며 새로운 맛의 한 끼를 먹었다.

오후엔 새로 이사했다는 N의 친구 S님의 집에 들렀다. 다른 집 귤밭 구석에 뿌리를 둔 호박이 우리 집 뒤뜰로 넘어와 늙은 호박이 잔뜩 열렸는데 그 넝쿨에서 딴 어린 호박잎과 늙은 호박 두 개, 4분의 1로 자른 박 한 덩이, 시장에서 산 복숭아를 싣고 갔다. 주소만 가지고 찾아갔는데 가다 보니 예전 친구가 살던 집이 있는 골목으로 접어든다. 신기하게도 N의 친구 분은 우리들 친구가 살던 바로 그 파란 대문 집으로 이사를 했던 것이다. 아궁이로 불을 때던 옛집을 살 만하게 고친 집이다. 해가 많이 들고, 난방은 안되지만 뜰이 넓고 한라산이 보이는 잠 잘 오는 편안한 집. N은 여기 거실 안쪽 문과 주방의 일부를 자기가 샌딩 했다고 예전 공사하던 이야길 꺼낸다. S는 이 무슨 신기한 인연이냐며 계속 말씀하신다. 봉봉이도 옛 이모집에 놀러 왔던 기억이 나는지 여기저기 냄새를 맡다가 어느새 우리 곁에 자리 잡고 얌전히 앉았다.

저녁에 산책하며 B는 박으로 북엇국을 끓여먹었는데 맛있더란 이야길 한다. 박으로 김치도, 생선조림도, 나물도 다 할 수 있더라 얘기 나누다가 그 박의 이름이 '동아박'인 걸 알았다. 텃밭에 저 혼자 나서 잘 자랐다고, 올해 농사지은 것들 중에 젤 실한 것 같아 내년에도 박을 심겠다고 한다. 올해 초부터 농사를 제대로 시작한 30대 농부 B는 콜라비 씨앗을 뿌렸는데 꿩이 와서 절반도 넘게 쪼아 먹었다며 미얀이나 봉봉이를 보초로 세울까 농담을 했다. 어제오늘 박이 무언지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손으로 만져보고 해체하고 냄새 맡고 맛보면서. 박은 소박하나 몸과 마음에 뿌듯함을 주는 양식이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 인간이 가진 많은 감각 중 제일은 역시 새로운 경험을 나누고 함께 느껴보는 나눔의 감각 같다.